문학 & 예술/화폭의 예술

에드가르 드가 (Edgar Degas 1834-1917)

淸山에 2009. 9. 15. 06:41

 

 

에드가르 드가 (Edgar Degas 1834-1917)  


재력있는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법률공부를 하다가 이내 중단하고 미술공부를 시작한다. 드가는 국립미술학교와 아틀리에 라모트에서 잠시 수학하며 앵그르의 신고전적 기법을 배운다. 그는 평생 앵그르적인 원칙을 따라 초상 작업에 전념한다.

그의 초상작품에는 당시 사회풍습, 인물의 직업이나 그가 처한 환경이 사실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그의 초상 작업의 특징 중 하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과 현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며, 그한 예가
<발렐리가족>이다.


1880년대 초반 드가 작품의 주요 테마는 세탁소의 여인, 무희, 가수 등인데, 이들은 자연주의 소설에 등장하기도 한다. 드가는 사회의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을 탐구했다. 그의 작품에서 유머와 이야기는 부각되지 않고, 인간의 형태만이 중심을 차지한다. 밤에 주로 아틀리에 작업을 하던 드가는 풍요롭고 연극적인 명암 효과를 위해 등불을 주로 사용한다. 또 그는 모델에게 연출가적 시각으로 포즈를 취하게 하고작업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다소 연극적인 느낌을 준다. 명작, 초상, 풍경, 역사, 종교, 일상생활, 말, 정물 등 온갖 소재를 유채, 크레용, 목탄, 수채, 파스텔, 판화, 조각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하여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은 경사진 시점을 가지고 그려냈던 드가는 당시 유명예술가들의 단골 카페 게르부아의 손님들과 친분을 맺게 되면서, 그들 중 인상파의 거두가될 마네를 알게된다.

드가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파전>에 참가했고, 이 전시에서 인물과 액세서리가 풍요롭게 묘사된 작품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드가는 끊임없이 선을 연구한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드가는 사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기발한 앵글, 클로즈업, 운동의 분해, 경마장의 찰나 포착, 달리는 말의 순간 동작 분해 등 사진술이 제공할 수 있었던 새로움이 작가에게 탁월한 시각을 형성하도록 한다.

1895년부터 1900년까지의 작업은 사진의 영향을 주로 받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살롱>출품을 거절해온 드가는 1889년 만국박람회 예술관의 전시도 거절한다. 그래서 드가가 두 세 작품을 그룹전에 내는 것만으로도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다. 자신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신뢰했던 드가는 자신만의 예술을 위하여, 문인, 화가, 콜렉터만으로 내밀한 수호 그룹을 만들었다. 드가의 말년 작업 경향은 조금씩 추상적으로 변해간다. 말년에 실명한 드가는 "내가 죽으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작업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가 사망하자 실제로 사후 경매에 붙여진 작품수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은 놀랐다고 한다.



 The Rehearsal, 1877


 

The Rehearsal, 1877


유화,파스텔 수채화 목탄화 등 드가는 거의 모든 테크닉에 능했던 화가이다. 드가는 이러한 천체적인 테크닉을 이용해 주로 순간적인 동작과 인물들의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크로키하듯 포착해 내곤 했다. 원근법과 화면의 중앙을 비워 두는 구도를 통해 화가가 매료되었던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인공 조명의 제한된 빛이 인물을 비쳐 주면서 음영의 대비가 강조되며 미세한 동작 하나가 그대로 노출 되었다. 사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던 드가의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어떤 인물도 똑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지 않은데 이렇듯 묘사된 인물 각각의 독특한 움직임이 그림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The Dance Class, 1873-76


 

The Dance Class, 1873-76
Oil on canvas (85 x 75 cm)
Musee d'Orsay,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