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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浪生活을 즐겼던 시인 정수동 (鄭壽銅)
有感 - 정수동 (鄭壽銅)
最玲瓏處性靈存
최영롱처성영존
不下深功不易言
부하심공부이언
入妙應經探虎穴
입묘응경탐호혈
出奇何減鑿龍門
출기하감착용문
金塘融日花無質
김당융일화무질
玉殿淸霄月有魂 雨+肖=하늘소
옥전청소월유혼
幽徑只堪時獨往
유경지감시독왕
勸君莫寄大家藩
권군막기대가번
가장 영롱한 곳에 영감이 서렸어도
커나 큰 공력 들이지 않고서야 표현치 못하네.
묘(妙)에 들려면 응당 범굴에 들어야 하고
기(奇)로 빼나려면 용문감(龍門龕) 뚫는 일에 어찌 덜하랴
금당에 화창한 날 꽃은 피어 임자 없고
옥루 맑은 밤에 달도 유정하여라
그윽한 오솔길을 때로 혼자 거닐지나
큰 집 울타리엘랑 기대지 말지니라.
실제(失題 2) - 정수동 (鄭壽銅)
疎狂見矣謹嚴休
소광견의근엄휴
只合藏名死酒樓
지합장명사주루
兒生便哭君知否
아생변곡군지부
一落人間萬種愁
일락인간만종수
체통 벗어두고 점잔도 팽개치니
이름 없이 떠돌다 주막에서 죽기 십상이다
그대는 아는가 갓 나자 터지는 애기 첫울음을
한번 인간에 떨어짐은 만 가지 시름일레.
정수동 (鄭壽銅 1808∼1858(순조 8∼철종 9)
조선 후기 시인. 자는 경안(景顔), 호는 하원(夏園). 본명은 지윤(芝潤), 수동(壽銅)은 별호. 본관은 동래(東萊). 왜어역관(倭語譯官)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나, 생업을 돌보지 않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서 방랑생활을 즐겨 늘 가난하였다. 사회적 모순에 불만을 느껴 광인(狂人)처럼 행동하였고, 권력이나 금력에 대해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로 저항한 많은 일화가 전하여지며, 기발한 익살꾼으로 유명하였다. 그의 시는 번거로운 문장이나 허황한 형식을 배격하고, 간결한 가운데 격조 높은 시였다. 당대의 명사인 김정희(金正喜)·김흥근(金興根)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그들이 그의 재주를 아껴 도우려 했으나 거절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과음으로 죽었다고 한다. 시집으로 하원시초(夏園詩抄, 2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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