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고대 수메르 문자 해독, 성서학자들 당혹

淸山에 2009. 9. 3. 13:23
 

 

 
 

 

 

수메르 [Sumer]

바빌로니아 남부에 위치하며 세계 최고()의 문명이 발상한 지역 민족, 또는 그 문명의 명칭.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경부터 농경민이 정주하여 BC 3000년경에는 오리엔트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하였다. 이들은 두 강의 중·상류 지역 또는 엘람지방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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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의 12제국 중에서 수밀이국이 있었다.
 
그들이 서방에 문명을 세웠으니
 
현재의 수메르 문명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중 가장 그 기원이 오래된 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로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웠고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설형문자들을 발견하고 판독해 가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메르인들의 기록과 연대는 아브라함 시대 보다 수세기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인간 세상에는 이미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들의 문명은 기원전 3000년 전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성서고고학이 독점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중요한 종교 도시인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다고 전하는데 본래 우르 사람이었던 그가 수메르 문명아래서 60여년을 살다가 가나안땅으로 가서 살적에 어느 나라의 말을 사용했고 그가 썼던 문자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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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판독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야훼의 창조이야기, 에덴동산설화, 노아홍수 이야기, 욥기,아가서,바벨탑사건 등 수많은 내용들이 수메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밝혀지자 성서학자들은 충격과 참담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이며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보다도 무려 1천년 전의 문명이라는데에 고고학자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직조기술의 사용으로 옷을 물들여 입고 다닐 당시 히브리인은 문자도 없었으며 동물가죽을 벗겨입고 다녔었다.

 

 성서학자들은 인류최초의 문명 발상지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여겼고, 에덴동산도 그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오던 터에 수메르유적(지금의 이라크에 위치함)의 발견은 그야말로 전세계 크리스트교의 본질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수메르에는 이미 에덴동산 설화가 있었고 에덴동산과 남자 여자가 등장하며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까지 성서와 너무나 흡사한 설화가 있었고,노아의 홍수와 흡사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아라는 이름은 지아슈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는 성서가 수메르 문자의 판독으로 이제 한낮 휴지 조각에 처해지게 된 것에 성서학자들은 참담함을 감출수 없는 것이다.

 

 또한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수메르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의 발견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설형문자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지금으로부터 4300여년 전
초대 단군 때 중국에서 9년 홍수가 일어났다.
 
단군조선은 오행치수법으로 홍수를 이겨냈지만,
중국은 수많은 창생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순의 제후 우 임금이 도산에서
금간옥첩을 전수 받고 홍수를 이겨낸다.
 
그 공덕으로 우 임금은 마침내
하나라를 세우게 된다.
 
 
http://hanfuture.com
 
 
 

 

서양문명의 뿌리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

요즘 들어서 재미 있는 글들과 좋은 자료들이 많이 올라 오고 있어서 공유 차원에서 글을 보내 드립니다.

 

동방에서 온 수메르 문명

환국은 광명사상속에서 탄생한 동서양 인류의 원고향이다 . 중앙아시아 동쪽에서 태동한 환국문명은 사방으로 뻗어 동서 4대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BCE 3300년경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수메르 문명이 태동되었다. 수메르 문명은 현 서양문명의 뿌리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계승되었다. 130년에 걸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문자,법률,학교,의회제도 등 수메르 문명을 창조한 고대 수메르 민족은 메소포타미아의 원주민이 아닌 동방에서 온 이주민이었으며 우리 한민족과 혈통이나 언어,문화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수메리인들의 창세신화를 보면 자신들이 머리 뒷 부분이 평평한 검은머리의 인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수메르어는 우리말 ‘은,는,이,가' 처럼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이며 모음조화현상과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 등 동일한 문법체계를 가졌다. 또한 옆의 도표에서 보는것처럼 기본단어들까지도 유사하다 .

수메르인들이 남긴 점토판의 설형문자(쐐기문자)는 서양의 최초 문자로 알려져 있다. 고든박사는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하기 전에 이미 그들의 고유한 문자인 설형문자를 가지고 왔다“고 햇으며 일본학자 우에노 등은 수메르가 사용했던 설형문자는 복희씨가 창제했다는 팔괘부호와 흡사하다고 지적하였다.


History begins at sumer 원본과 국내번역책

또한 수메르인들은60진법(중국과 우리나라의 60갑자 역시 60진법이다)과 태음력을 사용햇으며 결혼 전에 함을 지는 풍습까지도 우리와 비슷하다.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왔다’는 크래머의 주장과 중앙아시아에서 왔다고 한 번즈의 주장은 수메르의 원고향이 환국의 천산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수메르인들은 동방의 종주국을 ‘하늘나라’로 말하고 자기들의 하늘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 중략 ....)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들이 동방의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을 아버지라 불렀고 선생은 제자를 아들이라고 했다.

이는 3부에서 살펴볼 동방 신교의 삼신문화에 뿌리를 둔 군사부일체,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똑같이 받드는 문화의식의 표출로서 서양의 도덕주의나 윤리의식에서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사상이다. (.... 하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