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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王昌齡隱居(숙왕창령은거) - 상건(常建)

淸山에 2020. 8. 21. 17:05

宿王昌齡隱居(숙왕창령은거) - 상건(常建)

왕창령이 은거하던 곳에 머물다

 

淸溪深不測(청계심불측),

隱居唯孤雲(은거유고운).

맑은 시내 아득하여 헤아릴 수 없는데

그대 은거하던 이곳엔 외로운 구름만

 

松際微月(송제로미월),

淸光猶爲君(청광유위군).

소나무 끝에 초승달 드러나니

맑은 빛은 여전히 그대 위해 비추는 듯

 

茅亭宿花影(모정숙화영),

藥院滋苔紋(약원자태문).

띠를 인 정자에 꽃 그림자 잠자고

약초 심은 뜰에는 이끼가 불어났네

 

余亦謝時去(여역사시거),

西山鸞鶴群(서산란학군).

나 역시 시속과 이별하고서

서산의 난학과 함께 살고 싶구나

 

[通釋] 맑은 시내는 저 위로 멀리 뻗어 있어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없는데, 그대가 은거했던 이곳에는 외로운 구름 한 조각만 있을 뿐이다. 오늘 저녁, 소나무 사이에 초승달이 떠오르니, 이 맑은 달빛은 그대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대를 위해 빛나고 있는 듯하다. 띠로 이은 정자에는 주인이 없으니 꽃 그림자만이 자고 있고, 약초를 심은 뜰에는 푸른 이끼가 무성하다. 나도 시속(時俗)을 떠나 서산으로 와서, 청란()과 백학(白鶴)을 타고 노니는 신선과 짝하고 싶구나!

 

[解題] 상건(常建)의 이 시는 산수은일시(山水隱逸詩)로서, 성당(盛唐) 시절에 이미 명편(名篇)으로 이름이 났다. 청대(淸代)에 와서 다시 신운파(神韻派)의 추숭을 받았으며, 題破山寺後禪院(제파산사후선원)〉과 함께 상건의 대표작이 되었다.

 

상건과 왕창령(王昌齡)은 개원(開元) 15(727)에 함께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한 환우(宦友)이자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출사(出仕) 이후의 행적은 서로 매우 달랐다. 상건은 우이위(眙尉)를 지냈을 뿐 그 후에는 곧 벼슬에서 물러나 무창(武昌) 번산(樊山)에 귀은(歸隱)하였으니, 여기가 곧 서산(西山)이다. 왕창령은 벼슬길이 험난하기는 했지만 물러나 은거하지는 않았다. 宿王昌齡隱居(숙왕창령은거)〉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왕창령이 출사(出仕)하기 이전에 은거했던 곳을 가리키며, 또한 이 시를 지을 당시에는 왕창령이 그곳에 없었음을 말한다.

 

왕창령이 과거에 급제한 때는 그의 나이 37세 즈음이었다. 그 전에 그는 일찍이 石門山 은거하였다. 이 산은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함산현(含山縣) 경내에 있는데, 바로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淸溪(청계)’가 있는 곳이다. 상건이 직임을 맡았던 우이()는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우이인데, 석문산과는 회하(淮河)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건은 벼슬을 사직하고 무창 번산으로 돌아갈 때 아마도 회하를 건너 멀지 않은 길로 우회하였을 것이다. 도중에 그는 근처 석문산에 들러 유람을 하고, 왕창령이 은거했던 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이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淸溪(청계)孤雲(고운)()淸光(청광) 등은 왕창령이 은자(隱者)의 고결함을 지녔음을 암시한다. ‘松際露微月(송제로미월) 淸光猶爲君(청광유위군)’ , 왕유(王維)의 〈竹里館(죽리관)〉시 가운데숲 깊어 아는 이 없으니, 밝은 달만이 와서 비추네.[深人 明月來相照]’와 의경(意境)이 매우 비슷하다.

 

茅亭宿花影(모정숙화영) 藥院滋苔紋(약원자태문)’은 대구(對句)로 경치를 그려낸 것이니, 모정(茅亭)에 꽃그림자만이 자고 있음은 꽃을 감상할 주인이 없기 때문이며, 약원(藥院)에 이끼가 불어나 있음은 약초밭을 가꾸고 다듬어야 할 주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모두 왕창령이 오래 전에 그곳을 떠났음을 절묘하게 암시하고 있는 바, 특히宿()’()’는 이 시에서 가장 공교롭게 쓰인 글자, 즉 시안(詩眼)이라 할 수 있다.

역주1> 常建(상건) : 708~765?. 자호는 미상이다. 저서에 《常建詩集(상건시집) 3권과 《常建集(상건집) 2권이 있다.

역주2> 微月(미월) : 眉月(미월), 新月(신월)과 같다. 농력(農曆)에서 월초(月初)의 달을 가리킨다.

역주3> 謝時(사시) : 시속(時俗)과 이별하는 것이다.

역주4> 鶴群(난학군) : (청란)白鶴(백학)은 모두 신선이 타는 새로서, ‘鶴群(난학군)’은 난새ㆍ학과 더불어 짝을 짓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종신토록 은일(隱逸)하고 싶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