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民族에 재앙을 부른 1950년 10월 중공군 개입 과정 최종적으로 渡河 명령을 내린 10월19일 毛澤東은 수면제를 먹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아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섭영진 참모총장 대리가 보고차 왔다. 毛澤東은 옷을 갈아 입고 접견실로 나왔다. 趙甲濟 한국전쟁은 두 개의 南浸 전쟁으로 구성된다. 1950년 6월25일의 김일성 남침, 그리고 1950년 10월의 중공군 침략이 그것이다. 중공군 침략은 北進통일을 좌절시키고, 흥남철수, 서울 재함락, 이산가족 등의 비극을 불렀다. 유엔 총회는 세계평화를 위협한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였다.
한반도 통일을 막은 중공군 개입은, 日帝의 식민 지배에 못지 않는 惡行이었다. 韓民族과 인류 평화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 중공군의 열병식 행사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는 모습은 국가 정체성의 훼손, 對中사대주의적 상징, 역사교육의 혼동을 초래할 것이다. 한국전쟁은 아직도 계속중인데 피해국의 국군통수권자가 敵軍의 友軍을 축하한다는 것은 公的인 가치관의 기준을 허무는 것이다. 抗日戰勝기념이라고 하지만 抗日 투쟁을 주도한 것은 모택동이 아니라 장개석이었다. 일본이 항복한 것은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이긴 덕분이지 중공군이 한 역할은 무시할 정도이다. 2003년 중국을 방문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나는 모택동과 등소평을 존경한다'는 말을 하였다가 두고 두고 비판을 받았던 前例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겠다면서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도 허용하지 않은 상태이다. 미국이 불참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엔 참여하였다.
이번 목함 지뢰 테러 직후의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도록 만든 것은 한미동맹군의 火力이었지 중국의 對北압박이 아니었다. 이 정부의 역사적, 안보적, 외교적 균형감각이 의심스럽다. 균형감각은 확고한 자기 기준이 있어야 성립된다. 한민족의 피 속에 흐르는 對中 사대주의적 기질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면 한국은 남북통일 과정을 통하여 親中化될 것이다. 親中化는 反자유, 親독재를 뜻한다.
참고로 중공군의 한국전 불법 개입 과정을 알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