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 얻어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대통령이었던 1804년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탐험대를 조직해 서부를 탐험한다. 후발 개척회사들이 서부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175년이 흐른 1979년에는 서부시대에는 없었던 새로운 개척의 개념을 도입해 우주를 탐험한다. 뉴호라이즌이나 그 전신인 보이저의 탐사 개념은 ‘플라이 바이(flyby, 근접 통과)’다. 인간이 탐사선에 승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탐사선이 행성에 착륙을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탐사선이 행성에 최대한 근접 비행하며 관측자료를 수집한 후에 멀어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뉴호라이즌은 명왕성에 접근했고, 눈 앞에서 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선명한 사진을 보내왔다. 그것을 본 우리는 인간이 명왕성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새로운 우주개척의 개념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이 뉴호라이즌 미션의 본질이다. 50여 년에 걸친 새로운 개념의 우주개척 역사의 시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의 손에서 시작한다. 1964년 칼텍(캘리포니아 공대) 학생이었던 게리 플란드로는 가까운 곳에 있던 JPL(제트 추진 연구소)의 여름 인턴 연구원이 됐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행성의 운행궤도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주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75년에 한 번씩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이 정렬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 네 행성이 정렬된 것은 우연히도 서부 개척이 시작된 1804년이었다. 그리고 다음 기회는 15년 후인 1979년이었다. 만일 탐사선을 1977년에 발사할 수 있다면 각 행성까지 날아간 탐사선이 그 중력을 이용하여 다음 행성으로 비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된다. 이 탐사가 실현될 수 있다면 목성부터 해왕성까지 근접 탐사가 가능하다. 플란드로는 또 2006년에 탐사선을 발사한다면 목성에서 건너뛰기를 해서 2015년 경 태양에 가장 근접하는 명왕성까지 탐사할 수 있다는 보고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목성·토성·천왕성 그리고 해왕성을 탐험한 보이저 1호와 2호로 현실화된다. NASA(항공우주국)는 보이저를 보내기 전에 사전 탐사선인 파이오니어 10호를 먼저 보낸다. 목성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져 있는 소행성을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했고, 목성의 자기권으로부터 탐사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사선 효과를 관측해야 했다. 목성의 자기권은 지구에 비해 1만 배 정도 강했다. 그 당시 설계되던 관측장비는 탐사선이 목성에 도착한 순간 모두 작동이 정지될 것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모든 장비를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 했다. 탐사선 제작진의 입술이 말라갔다. 이번을 놓치면 2150년에야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들은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약속한 1977년 보이저 1호와 2호를 발사한다.
보이저 1호는 토성의 궤도까지만 근접 비행을 하고 여기서 얻은 추진력을 이용, 행성 궤도면을 이탈해 천구의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태양계의 끝으로 날아간다. 보이저 2호는 토성에서 출발해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모두 탐사를 마친다. 보이저 2호의 해왕성 탐사가 끝난 이후 궤도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 해왕성 너머에 있는 명왕성을 탐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해왕성을 끝으로 보이저 1호처럼 행성 궤도면을 이탈해 이번에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태양계의 끝으로 날아간다. 이렇게 명왕성을 남겨 두고 미션을 종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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