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관심 세상史

자료/한국의 實力

淸山에 2015. 6. 2. 14:22






자료/한국의 實力

趙甲濟  

 

 
   기독교, 대기업, 군대, 박정희


 한국의 대기업 중심 발전 전략이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을 누르고 新興(신흥) 경제권에서 단연 1등의 업적을 남기고 있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론 대기업이 성장하기 힘든 체질이었다.
 
  일본계 미국 역사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조지 메이슨 대학교수)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의 세계사 흐름을 해석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란 名著(명저)를 써 유명해졌다. 그는 이어서 1995년에 '신뢰'(Trust)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가족, 사회, 기업 등 공동체의 신뢰범위가 클수록 그런 사회는 큰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한국, 대만, 홍콩, 중국의 문화는 가족주의이기 때문에 신뢰가 미치는 범위가 血緣(혈연)집단에 머물러 있어 대기업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경제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썼다. 반면 독일 일본 미국 영국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로 사회의 성격은 다르지만 가족을 뛰어넘어 사회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공동체 윤리'가 정착되어 있다. 따라서 신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많은 대기업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신뢰가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자본'은 '자발적 사회성'(Spontaneous Sociability)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큰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윤리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조직은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기초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事前에 합의된 도덕률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상호신뢰의 기초를 마련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계약과 구성원의 관계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는 형식화된 규범이나 규제 속에서만 협력하게 된다. 이런 때는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협력을 이끌어내고 때로는 소송을 통해서 갈등을 풀어야 하니 생산성은 줄고 경비가 많이 든다.
  
  가족주의 사회는 신뢰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이탈리아는 가족회사나 중소기업 정도의 소규모 기업활동에 알맞다. 반면 독일 일본 미국 영국처럼 가족주의가 약한 대신 공동체 윤리가 확립된 곳에선 신뢰의 범위가 넓어 대기업을 만들어낸다.
  
  후쿠야마는 여기에 한국이 예외적 존재라고 했다. 그는 이 책의 한 章(장)을 할애하여 한국이 왜 가족주의 사회이면서도 세계적 대기업을 만들어내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가족주의는 일본보다 강하고 중국과 비슷하지만 중국보다도 신뢰의 범위가 좁다고 해석했다. 한국의 가족은 중국처럼 대가족이 아니고 중국의 유교는 충성을 강조했던 데 비해 한국의 유교는 효도를 강조한 점에서도 그렇다.
  
  한국은 홍콩 대만처럼 가족회사나 중소기업이 체질적으로 맞는데 왜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만들어냈는가. 그는 그 이유를 朴正熙 대통령의 성공적인 기업지도정책에서 찾았다. 朴대통령은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조건에서 기업육성에 정부가 개입하도록 하여 기업인들이 수출산업을 일으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도록 했다. 그는 또 1970년대에 들어서는 국가자원을 중화학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업을 이 쪽으로 몰아세워 1만t짜리 배도 만든 적이 없는 나라에서 26만t짜리 배를 만들어낼 정도의 거대한 공장들을 세우도록 했다.
   朴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이고 효율적이며 私心(사심)이 없는 정부주도 정책이 후천적으로 공동체의 큰 신뢰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가족주의적인 경제문화를 뛰어넘어서 대기업이 탄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朴대통령의 정책 이외에 군대와 기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꼽았다. 군대는 젊은이들에게 사회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여기서 얻은 복무기강이 경제생활로 옮겨갔기 때문에 좁은 가족주의의 신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의 기독교, 특히 신교도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기업가정신으로써 경제생활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후쿠야마는 이렇게 요약했다.


   <한국의 사례는 만약 유능하고 결의에 찬 정부가 확고한 행동을 취한다면, 소기업을 지향하는 문화적 경향을 극복하고 전략적 부문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대규모 산업체를 창출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한국경제신문 반역판, 구승회 옮김).


   그는 朴대통령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양식을 지켰다. 그는 정실적이었고 상당한 수준의 부패를 허용했으나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합리적 수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돈을 낭비하지 않았고 기업인들이 스위스의 별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데 돈을 쓰지 못하게 했다.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가졌더라면 아마도 대재앙을 초래했을 것이다.>
  
  후쿠야마가 유교적이고 가족주의적이며 영세한 한국 경제문화의 대전환을 가져온 원인으로서 지적한 세 키워드는 박정희, 군대, 신교도이다. 朴대통령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큰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 아니라 경제를 국가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군대=애국심'으로 이어지는 사고방식은 그 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期에 들어오면 실종된다. '당파성-계급적 적대감-국가분열적 선동'이 文民 대통령의 한 특징이 된 것은, 이들이 딛고 있는 정신적 기반이 공동체의 윤리나 국가주의가 아니라 前근대적인 가족혈연주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세 문민 대통령은 守舊的(수구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쌓고 이를 넓혀가는 것이 근대화인데 세 文民 대통령들은 한국사회를 군인과 文民, 左와 右,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로 분열시킴으로써 신뢰의 규모를 축소시킨 셈이다. 국민통합의 실천자여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과 國論 분열의 선동가로 뛰고 있는 이런 경향이 장기화되면 한국의 대기업도 위기에 봉착하여 다시 영세한 소기업 경제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후쿠야아의 예언적 분석이다.
  
  한국 新敎(프로테스탄트)의 主流는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장로교이고 이 장로교는 칼빈주의의 神學을 믿는다. 칼빈주의는 자본주의의 윤리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근면과 성실을 강조한다. 칼빈주의가 新敎의 주류가 된 나라는 대체로 一流국가가 되었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그런 예이다. 일본 점령기 때 천황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에 한국 기독교의 대부분이 굴복했지만 칼빈주의로 무장한 소수의 장로교 목사들이 이를 거부하여 순교하고 투옥되면서 신앙의 자유를 지켜갔다. 이들이 광복 뒤 예수교장로회 高神派(고신파)와 합동파를 만들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朴대통령에게 가장 비판적이었던 기독교 장로회 계통은 日帝 때 신사참배를 했고 朴대통령의 근대화 정책을 지지하는 편이었던 高神派와 합동파는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사람들을 神學의 주축으로 삼았다. 칼빈주의는 종교탄압을 하지 않는 정권과 법률에 대해서는 순응하지만 종교를 탄압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神學을 갖고 있다. 칼빈주의는 자본주의의 윤리뿐 아니라 法治 민주주의와도 친화적인 神學이다.
 
  국군의 역사적 역할은 이렇게 정리된다.
   <국군은 건국 과정에서 좌익들의 도전을 누르고 스탈린이 金日成 (김일성)을 조종하여 일으킨 6·25 남침전쟁에서 조국을 방위함으로써 대한민국뿐 아니라 자유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냈다. 군은 또 조국 근대화의 권력기반이 되어 정치를 안정시킴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장교단은 미국식 先進(선진) 조직경영 기법을 가장 먼저 배워와 근대화 시기에 행정조직과 기업경영에 가르쳐주었다. 국군은 또 越南(월남)파병을 통해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韓民族의 선도자가 되었다.
   1980년대의 민주화 격변기에는 金日成 집단의 도전과 공작으로부터 한국 사회를 보호하여 소란한 민주화의 과정을 관리하는 한편 정권변동기에는 자제하고 인내하여 文民(문민) 優位의 새로운 정치질서에 적응하였다. 국군은 남북통일기에는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북한에 우리의 영향력을 투입하는 기본 역량이 될 것이다. 국군은 대한민국 主導(주도)의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통일武力(무력)이 될 것이다. 통일 뒤에도 국군은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를 보장하는 안전판으로 남아 조국이 자주 독립 번영의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國權(국권)의 수호자 역할을 계속 할 것이다.>
  
  박정희, 기독교(이승만), 군대, 대기업은 富國强兵의 4大 공로자이다. 富國强兵에 성공한 나라는 거의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와 복지를 이룬다. 박정희, 기독교(이승만), 군대, 기업이야 말로 진짜 진보 세력이다. 
 





'한국 경제, 재벌 힘으로 대만 압도, '아시아의 독일'이고 不動의 금메달감.'
 
  루치 샤르마, '삼성, 현대, LG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이 주효.

대만은 일본의 하청기업에 안주, 한국은 일본을 이기려 하였다.'
 
  趙甲濟 


   
  <한국의 성공사례는 가장 강한 기업 모델(the strongest corporate model)은 ‘가족이 소유하면서도 주식은 공개되어 있고,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회사’임을 보여준다. 공개된 기업은 경리를 투명하게 할 수밖에 없다.>
 
 
  루치 샤르마(Ruchir Sharma)씨는 모건 스탠리의 Emerging Markets and Global Macro 부서 책임자이다. 그가 쓴 ‘Breakout Nations'(Norton, 2012)는 한국, 대만,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 선진 경제권에 도전하는 나라들의 장단점을 분석한 책이다. 흥미 있는 제목, ‘The Gold Medalist'가 있어 그 부분부터 읽었다. 금메달감의 나라가 어디인가 궁금해서였다. 샤르마 씨는 한국을 도전 국가群(군)의 1등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라이벌이 대만이었는데 지난 10여년 사이에 한국이 선두에 나섰다면서 極讚(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조업 重視가 계속되는 점에서 ’아시아의 독일‘이란 표현도 썼다.
  
   1. 대만과 한국은 지난 50년간 연평균 5%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한 세계의 唯二(유이)한 나라이다.
   2. 한국 경제는 1997년과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창조적인 파괴를 통하여 체질을 개선, 더욱 강해졌다. 守勢的(수세적)으로 위기를 넘기려 하였던 일본과 대조된다.
   3. 한국 경제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 重視(중시) 노선이 경제구조의 선진화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제조업 비중이 26%에서 31%로 늘었다. 제조업 비중이 25%를 넘기면 서비스 重視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반대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또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다각화되어 있다. 한국을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유이다.
  
   4. 대만은 주문생산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였지만 한국의 대기업은 무모하게 보일 정도의 모험을 통하여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삼성, 현대, LG는 한국 GDP(국내총생산)의 16%를 차지한다. 이에 힘입어 수출이 汎지구적으로 확대되었다. 2003년에 한국 수출액의 3분의 2는 先進경제권에 판 것인데, 2011년엔 3분의 2가 중국 등 개발도상국으로 나갔다. 한국의 수출액은 GDP의 53%이고, 무역액은 GDP와 거의 맞먹어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구조이다.
   5. 이런 성공의 중심엔 재벌 기업이 있다. 한국의 재벌 기업은 장기적, 모험적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는 오너가 결정권을 가진 덕분이다. 현대 자동차가 세계 제5위의 판매량을 기록한 데는 鄭周永 회장의 미국 시장 진출 결단(1986년), 鄭夢九 회장이 결정한 新車 판매에 대한 10년 보증 및 알라바마 현지 공장 건설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런 모험은 재벌 출신 경영자이니까 가능하였다.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가 退潮(퇴조)하는 마당에 어떻게 미국에서 자동차 공장을 짓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 현대의 알라바마 공장이 미국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다.
  
   6. 한국의 성공사례는 가장 강한 기업 모델(the strongest corporate model)은 ‘가족이 소유하면서도 주식은 공개되어 있고,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회사’임을 보여준다. 공개된 기업은 경리를 투명하게 할 수밖에 없다. 매킨리의 조사에 의하면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는 2008년의 금융위기를, 非가족 회사보다 더 성공적으로 극복하였다. 가족 회사는 이 기간에 빚을 줄였고 기술 개발 투자는 늘렸다.
   7. 대만은 한국보다 쉬운 길을 가다가 뒤처졌다. 가장 큰 敗因(패인)은 삼성, 현대, LG와 같은 독자적인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 점이다. 대만은 일본의 하청업체로 안주하려 하였지만 한국의 대기업은 일본을 이기려 하였다. 대만 기업은 중국, 인도 등에 주로 투자하여 매달 20억 달러씩 해외로 빠져나갔다. 대기업이 기술개발에 집중한 한국은 특허 出願(출원) 건수에서 세계 5위 안에 드는데, 대만은 20등 안에도 들지 못한다. 대만은 부품을 자체 개발하기보다는 일본으로부터 사들이는 방식을 選好(선호)하다가 2011년 쓰나미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으나 한국은 끄떡없었다.
  
   8. 세계의 금융인들은 서울의 KOSPI를 세계 경제 동향의 중요 변수로 여기는데, 대만 주식시장엔 관심이 적다. KOSPI에 등록된 회사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는 한국 제조업의 다각화를 반영한다.
   9. 한국 기업은 해외의 다른 회사를 매입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회사에 투자하거나 공장을 새로 짓는 쪽을 選好한다. 2010년 한국 기업은 해외에서 1400억 달러를 투자하였다.
   10. 한국 제조업은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많이 쓰는 축에 들고 省力化(성력화)로 대만보다 생산성이 높다.
  
   11. 한국은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이고 중산층이 강하여 富의 분배 문제에 민감하다. 한국의 富者들은 조심하는 사람들이다. 우선 10억 달러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부자가 적
   다. 러시아는 100명인데 한국은 16명이다. 대만은 25명, 터키는 38명이다. 한국의 10억 불 이상 부자 16명이 소유한 富의 총액은 국내총생산의 4%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29.2%, 인도는 17%, 말레이시아는 20%, 대만은 14.6%인데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같은 수준으로 가장 낮다. 부자들이 정치적 연줄을 이용, 치부하고 호화판 생활을 하는 나라에선 정치 불안이 생기는데 한국의 부자들은 사생활에 신경을 쓴다.
   12. 한국 재벌 기업의 2, 3세들은 대체로 좋은 자질을 가졌다. 워렌 버핏은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이 서로 싸우지만 않는다면 좋다.”
   13. 대만은 중국을 흡수 통일할 수 없지만 한국은 북한을 흡수, 지하자원과 훈련된 노동력을 얻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不動(부동)의 금메달감’이다.
  
   샤르마 씨의 분석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 재벌기업에 대한 好評(호평)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재벌 총수가 소유권을 장악, 장기적 전략의 투자와 의사결정을 하고, 기업을 공개, 투명한 經理를 하며, 전문가들이 회사를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 같은 회사가 그렇게 하고 있다. 확고한 장기 전략, 투명성, 전문적 관리가 결합되면 最强의 기업이 된다. 단기 목표 달성에 치중하는 월급장이 사장보다는 재벌 오너가 그런 기업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엔 재벌세습을 권력세습과 동일시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세습 자체가 합법적이라면 善惡 是非의 대상이 아니다. 합법성과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營利(영리)가 평가의 기준이다. 기업은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누가 주인이냐의 與否는 부차적이다. 꿩 잡는 게 매이다.
  
   한국이 제조업 전반에 걸친 세계적 경쟁체제를 구축한 것은 1973~79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건설 덕분이다. 이 시기는 유신체제와 겹친다. 朴 대통령은 낭비적 정치 투쟁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극복하여 얻은 國力을 중공업 건설에 집중 투자하였다. 이 시기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몰려와 세계적 경제위기가 휩쓸던 때였다. 위기를 오히려 好機로 이용한 것이 박정희의 선진국 進入 전략이었다. '아시아의 아이리쉬'로 통하던 한국인이 '아시아의 독일인'으로 불리게 된 것도 거대한 중화학공업의 기반이 국가의 운명과 국민성까지 바꿔놓은 덕분이다. 이런 대전환의 두 주인공은 강력한 지도자와 창의적인 기업인이었다.
  
   생전에 李秉喆 회장을 가까이서 모셨던 한 전직 언론인은, '늘 회사 일만 생각하는 분이었다. 한번도 편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늘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부자가 행복하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李健熙 회장 역시 아무리 삼성전자가 기록적인 수익을 올려도 自祝 분위기를 허용하지 않고 배전의 노력을 주문하였다. 기업은 시장경제의 무한경쟁 속에서 생존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기업인들의 밤낮 없는 수고 덕분에 많은 보통사람들은 행복을 누린다. 이런 기업인들이 민주투사들처럼 우대 받게 될 때 한국의 자본주의는 더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서울시내의 한 CJ 빌딩 안엔 故(고) 李秉喆(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렇게 요약하여 새겨놓았다.
  
   人材第一(인재제일)
   事業報國(사업보국)
   合理經營(합리경영)
  
   이 3大 원칙엔 李秉喆의 위대한 안목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말이다.
  
   1. 기업경영의 원리를 사람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人材육성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일자리는 모자라고 사람은 남아돌던 시대에 인재발탁과 교육을 중시한 偉人(위인)이다.
  
   2. 국가건설期의 한국에서 기업의 존재목적이 富國强兵(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게 기업인의 애국이다. 그는 안중근, 유관순에 못지 않은 위대한 애국자였다.
  
   3. 경제는 과학이다. 집념, 뚝심, 배짱 같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아니라 합리성이 成敗(성패)의 관건이다. 치밀한 계획과 정확한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는 뚝심은 蠻勇(만용)이다.
  
   지난 해 봄 金東吉 선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열리는 강연장으로 가면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삼성그룹 창립자 李秉喆 회장을 수십 년간 모셨던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늙은 기사는 金 박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李秉喆 회장님은 삼성보다도 나라를 더 생각하신 분입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人事 부문 간부로 일했던 이를 만났다. 그는 '李秉喆, 李健熙 회장으로 이어진 人材第一이란 정신을 말단 직원들에게까지 스며 들도록 한 것이 삼성의 성공 비결이라고 봅니다. 삼성의 성공은 人事에서 시작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삼성 人事의 원칙, 즉 인재 발탁과 교육의 원칙을 능력, 청렴,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주로 한 일이 인사에 地緣(지연)이나 學緣(학연)이 介在(개재)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뽑아 適所(적소)에 배치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한 뒤 평가를 정확하게 하고, 信賞必罰(신상필벌)하되 대우를 잘해주면 열심히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삼성은 경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끊임 없이 개혁해가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한 일본인이 삼성전자로 옮겨 경영에 참여하였다가 일본으로 귀국한 뒤 쓴 책을 읽어보니 삼성 성공의 다른 요인은 '시간'이었다. 그는 일본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꽂이구이', 삼성을 '사시미(회膾) 접시'라고 비유했다. 일본 회사는 일을 할 때 계획, 검토, 결정, 집행의 과정을 꽂이구이 식으로 순서대로 꿰어서 하는데, 삼성전자는 각 과정을 회처럼 접시에 늘어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수직적으로, 삼성은 수평적으로 한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식 수직법은 한 단계의 일이 끝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없지만 '사시미 접시' 식에선 각 단계의 작업을 독자적으로, 동시적으로 해놓았다가 나중에 통합하면 된다. 이런 동시다발식 상품 제조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소비자들이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내 만족시키는 데 유리하다.
  
   동시다발식 일처리는 임기응변에 능한 한국인의 소질에도 맞다. 전통적인 제조업 시대보다는 속도가 생명인 IT 시절에 더 적합하다. 일본식이 아나로그라면 한국식은 디지털 방식이다. 삼성은 일본의 장점과 한국의 장점을 겸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인의 정확성과 한국인의 창의성, 일본인의 고지식함과 한국인의 자유분방함을 결합, 삼성 식으로 만든 셈이다. 위대한 것은 相反(상반)되는 요소를 균형 있게 통합할 때 생긴다.
  
   한국인들을 잘 다루려면 울타리를 넓게, 높게 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재량권이나 자율권을 폭 넓게 보장하되 금지선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인들은 신바람 나게 일하면서 엄청난 생산성을 보여준다.
  
   이건희 회장을 '이병철의 아들'이라고만 보는 것은 과소평가이다.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와는 단위가 다른 회사를 만들어 세계를 상대한 '글로벌 플레이어'였다. 두 사람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사람중심의 경영, 즉 人材제일이란 핵심은 변함이 없다. 김일성은 '사람중심의 주체사상' 운운하면서 인민들을 짐승 취급했지만 이병철, 이건희 父子는 사람을 키워 돈을 벌고 국가의 富强(부강)에 기여했다. 자본주의의 재해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기분 좋은 국제 경제통계-한국은 우등생
   


   외환수지 통계에서 한국은 연간 928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 독일(2864억 달러), 중국(2138억 달러), 사우디 아라비아(1201억 달러)에 이어 세계 4위이다. 일본은 401억 달러, 싱가포르는 588억 달러이다. 
      
   나는 정기구독중인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오면 늘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는다. <경제 및 금융 지표>이다. 세계 주요 44개국의 경제통계표이다. 이 표로써 한국 경제 성적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최근호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3.7%로 예상된다. 올해 예상치는, 중국이 7.2%로 1등이고, 인도가 6.6%로 2등이다. 유럽 국가중에서 한국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없다. 아시아에선 대만(3.8%), 태국(4.2%),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각 5.5%)가 한국을 앞선다. 큰 경제 단위에서 한국의 성장률은 높은 편이다. 아베노믹스의 일본은 1.1% 성장률이 예상된다.
  
   한국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1.8%로서 안정적이다. 실업률은 3.8%인데, 그리스는 26%, 스페인은 23.4%, 유로 존 국가 평균은 11.2%이다. 일본은 3.6%이다. 한국은 실업률도 낮은 편이다.
  
   외환수지 통계에서 한국은 연간 928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 독일(2864억 달러), 중국(2138억 달러), 사우디 아라비아(1201억 달러)에 이어 세계 4위이다. 일본은 401억 달러, 싱가포르는 588억 달러이다.
  
   국가예산이 흑자로 편성되는 나라는 44개국 중 다섯 나라뿐인데 한국이 여기에 속한다. 독일, 노르웨이, 스위스, 홍콩, 한국이다.
  
   종합하면 한국은 건실한 경제대국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근로자들과 소비자들이 다 애쓴 결과이다. 
   

 




삼성전자가 한국 GDP의 약 10% 생산!
   


   '삼성전자를 나라에 비교하면 인구가 1억이 넘는 방글라데시의 국내총생산 규모이다. 이런 위대한 기업 삼성전자를 만든 李秉喆, 李健熙 두 분은 한국사 교과서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3분기(7∼9월)에 매출 59조800억 원, 영업이익 10조1600억 원을 올렸다. 사상 최고의 실적이다. 삼성전자는 2분기(4∼6월)에 이어 최고 기록을 바꾸어가면서 분기 매출 60조 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 스마트폰을 파는 IT모바일(IM) 부문은 36조5700억 원 매출에 6조7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前 분기보다 7% 늘었다.9월에 새로 내놓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노트3’가 특히 잘 팔린다. 出市(출시) 20여 일 만에 공급량 500만 대를 넘었다. ‘갤럭시탭3’ 등 태블릿PC의 판매량도 前 분기보다 20% 이상 늘었다. 보급형 휴대전화도 판매량이 1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반도체 부문도 스마트폰 시장 好調(호조)에 힘입어 매출 9조7400억 원, 영업이익 2조600억 원을 기록했다. 前 분기에 비해 매출은 12%, 영업이익은 17% 늘어났다.
  
   이런 식이면 2013년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30~240조 원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올해 GDP는 약 12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한국 GDP의 20%라고 말할 수 있나?
  
   답은 '말할 수 없다'이다. 매출액과 GDP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 매출액을 GDP 액수로 환산하는 공식은 없다. 대충 추산하면, 기업 매출액이 GDP의 약 40%라고 한다(삼성전자와 같은 고부가가치 업종은 이 비율이 높다). 즉,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액 추정액 230조원은 GDP로는 약 90~110조이다. 삼성전자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분의 1(약1000억 달러)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작년 헝가리는 GDP가 약1256억 달러, 방글라데시는 약1229억 달러였다. 삼성전자를 나라에 비교하면 인구가 1억이 넘는 방글라데시이다. 이런 위대한 기업 삼성전자를 만든 李秉喆(이병철), 李健熙(이건희) 두 분은 한국사 교과서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 2013-10-29, 16:25 ] 
  






한국의 실력
   


   1. 李明博 정부 출범 이후 껑충 뛴 한국의 경제-복지-정치 랭킹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자매 회사 EIU가 매긴 ‘민주주의 지표’ 랭킹에 따르면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은 167개국 중 31등(일본은 20등)으로서 ‘결함 민주국가’로 분류되었다. 李明博 정부 들어 랭킹이 올라 2010년부터 한국은 ‘완전 민주국가’로 분류된다. 그해 조사에서 한국은 20등으로 일본(22등)을 앞섰다. 2011년 조사에선 한국이 일본 바로 다음인 22등이었다. 2012년 조사에선 20등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삶의 질과 복지 수준을 보여주는 UNDP(유엔개발기구) 발표 ‘인간개발지수(HDI)’ 랭킹에서도 한국은 이명박 정부 이후 크게 올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에 180여 개국 중 26위, 2008년에 25위를 하다가 2010년에 12위, 2011년엔 15위였다. 2013년엔 15위.
  
   *복지, 경제, 민주 부문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제 랭킹이 오른 것은 2008년의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덕분이다. 당시 李 대통령과 姜萬洙(강만수) 장관도 위기를 잘 넘기면 국제적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적중하였다.
  
   *2013년 초 현재 외환보유고 1위 국가는 중국으로 3조 5490억 달러, 2등은 일본으로 1조 3510억 달러, 한국은 8등으로서 3192억 달러였다. 이는 미국 CIA의 2012년 통계이다.
  
   *소득 평등도 랭킹에서 한국은 136개국 중 28등이었다. 가장 평등한 나라는 스웨덴이었다.
  
   *예산 흑자율 랭킹에서 한국은 213개 나라들 중 21등. 한국보다 앞선 나라는 거의가 産油國들이다.
  
   *한국은 電力 생산량이 세계 10위이다. 중국이 1등이고 미국, 러시아, 일본, 인도, 캐나다, 독일, 프랑스 브라질, 한국, 영국, 이탈리아 순위이다.
  
   *2013년 경상수지에서 가장 많은 흑자를 본 나라는 독일, 이어서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한국 순이다. 한국은 약 80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1년도 부패인식지수 랭킹에 따르면 한국은 청렴도에서 세계 183개국 중 43등이었다. 2009년엔 39등이었다. 가장 깨끗한 나라는 뉴질랜드, 2위는 핀란드. 가장 부패한 나라는 소말리아와 북한으로 공동 꼴찌였다.
  
   *권위있는 국제통계에선 李明博 정부가 경제·복지·민주 발전을 동시에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데 국내에선 종북좌파들이 정부가 독재로 흘렀다고 비난하고 많은 국민들도 이에 동조, 대통령 지지율이 30%를 밑돌았다. 30%라는 수치는 李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분별력 점수일지 모른다.
  
  
   2. 이웃을 침략하지 않고 선진경제와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룬 유일한 ‘5000만+’ 국가는 한국
  
   2012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매력 기준 국가총생산(GDP) 랭킹에 따르면 한국은 약 1조6000억 달러로서 세계에서 12등이다. 우리보다 순위가 앞선 나라 중 인구가 우리보다 적은 나라는 없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완전한 민주국가로 분류된다. 우리보다 GDP가 많은 나라중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뿐이었다. 2012년도 랭킹에서 한국은 민주주의 순위가 20등으로서 미국(21위), 일본(23위), 프랑스(28위), 이탈리아(32위)를 앞섰다. 한국보다 GDP가 많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및 인도와 멕시코와 브라질은 ‘결함 있는 민주국가’로 분류되었다.
  
   요약하면 한국은 인구 5000만 명 이상을 가진 나라 중 선진경제와 완전한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다섯 나라 중 하나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한국이다. 이 다섯 나라 중 한국을 뺀 네 나라는 국가 발전 단계에서 식민지를 경영하였다. 미국도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나라 중 한국만이 식민지를 수탈하지 않고도, 즉 이웃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식민지가 된 경험을 딛고 선진경제와 완전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5000만 플러스’ 나라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逆轉劇(역전극)이다. 이런 위업에 가장 큰 공이 있는 사람은 나라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위에 세운 李承晩(이승만), 그리고 國力(국력)을 조직화하고 능률을 극대화하여 중화학공업을 건설, 국가 발전의 주체역량인 중산층을 만들어낸 朴正熙(박정희)이다. 이 두 사람을 主敵(주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좌편향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금성, 미래엔, 두산동아, 비상교육, 천재교육)이다.
  
   <이코노미스트> 조사에 따르면 167개국 중 가장 억압적인 나라는 167등을 한 북한이었다. 좌편향 교과서는 이런 북한을 두둔하기 위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두 건설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폄하하였다. 가히 정신병적인 記述(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허용한 대한민국 교육부는 대한민국에서 추방해야 할 조직이다.
  
   3. 53년 전 한국의 모습
  
   1961년 朴正熙 소장이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경제개발에 착수하였을 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93달러였다. 당시 경제통계 대상이었던 103개국 중 8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1위는 2926달러의 미국, 지금은 한국과 비슷해진 이스라엘은 1587달러로 6위였다. 일본은 26위(559달러), 스페인은 29위(456달러), 싱가포르는 31위(453달러)였다. 아프리카 가봉은 40위(326달러), 수리남은 42위(303달러),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보다 세 배가 많아 44위(281달러)였다.
  
   지금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는 짐바브웨도 당시엔 1인당 국민소득이 274달러로 한국의 약 3배나 잘 살았고 46위였다. 필리핀도 과거 한국인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국보다 약 3배나 많은 268달러로서 49위였다. 南美의 과테말라도 250달러로 53위, 잠비아(60위, 191달러), 콩고(61위, 187달러), 파라과이(68위, 166달러)도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다.
  
   필자의 가족은 이 무렵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기 위한 수속을 밟았는데 다행히 잘 되지 않아 모두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낫세르의 이집트도 152달러로서 70위였다. 박정희 소장 그룹의 일부는 이집트의 낫세르를 따라 배우려 했다. 아프가니스탄도 124달러로 75위, 카메룬은 116달러로 77위였다. 캄보디아도 116달러로 78위, 태국은 110달러로 80위였다. 차드 82위, 수단 83위, 한국 87위! 그 뒤 52년간 한국이 얼마나 빨리 달리고 높게 뛰었는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한국은 유신시대로 불리는 1972~1979년에 중화학공업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랭킹에서 도약한다.
  
   1972년에 한국은 323달러로 75위, 말레이시아는 459달러로 64위였다. 1979년에 가면 한국은 1734달러로 59위로 오른다. 말레이시아는 63위로 1537달러였다. 말레이시아가 못해서가 아니고 한국이 잘하여 뒤로 밀린 것이다.
  
   201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명목상 2만 2589달러로 세계 34위, 구매력 기준으론 3만 2800달러로 세계 30위이다. 삶의 질 순위로는 180여 개국 중 12등! 1961년에 한국보다 세 배나 잘 살았던 필리핀은 2611달러로 세계 124위, 이집트는 3112달러로 119위이다. 짐바브웨는 756달러로 158위.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51년간 약 10배, 한국은 약 250배가 늘었다. 한국인은 필리핀인보다 25배나 빨리 달렸다.
  
   한국은 美, 中, 日, 獨에 다음에 가는 5大 공업국, 7大 수출국, 8大 무역국, 12위의 경제大國(구매력 기준 GDP)이고, 12위의 삶의 질을 자랑한다. 재래식 군사력은 8위 정도. 울산은 세계 제1의 공업도시이다. 維新期(유신기)의 중화학공업 건설 덕분이다. 1970년대 말에 우리는 선진국으로 가는 막차를 탔던 것이다.
  
  
   4. 숫자로 풀어보는 한국의 실력
  
   (1) 울산은 세계 1위의 공업도시이다. 국민평균 IQ도 1위. 대학진학률도 1위. 정치적 선동으로 속는 데도 1등일 것이다.
   (2) 한국의 교육은 핀란드에 이어 2위로 평가된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民事재판 제도를 세계 2위로 평가했다. 자살률도 2위다.
   (3) 삼성전자는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3위의 제조업체이다.
   (5)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공업국이다.
   (7) 한국은 제7위의 수출국이다. 여성의 평균수명도 7위.
   (8) 한국은 세계 8위의 무역국이다.
   (9) 한국의 군사비 지출은 세계 9위다(兵力은 8위).
   (12) 한국의 GDP(구매력 기준) 규모는 세계 12위. '삶의 질' 순위도 세계 12위.
   (21) 한국은 예산의 건전성이 세계 21위.
   (22)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2012년 조사: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세계 167개국 중 20위로서 ‘완전 민주국가’로 분류된다. 북한은 167등으로 꼴찌.
   (30) 1인당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은 세계 30위이다.
  
  
   5. 국민교양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발전을 70년만에 해치운 한국은 그러나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北의 核미사일 위협, 國內의 從北좌파 세력, 선동언론과 이에 넘어가는 국민들, 한글專用에 의한 한국어의 파괴와 교양의 붕괴, 法治의 약화, 과잉복지에 의한 국가財政(재정)의 부실화 등이다. 무엇보다도 평화가 오래 계속되니 국민들이 尙武(상무)정신을 잃고 있다. 전쟁 뒤엔 평화가 오고, 그 평화가 오래 계속되면 전쟁을 부르게 된다는 역사의 법칙이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하려면 국민들이 각성하여야 한다. 그 답은 교양에 있다. 교양 있는 국민이라야 간첩과 사기꾼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지 않는다. 교양은 독서, 예술, 스포츠 등 人文的 교육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법을 지키는 교양인이 정의로운 시민이다.
  
   한국의 발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덕분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경쟁과 견제를 도입하였으므로 한국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엄청난 생산과 건설을 할 수 있었다. 인간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이 제도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계급투쟁론에 물든 공산주의자들과 종북좌익들이다. 이들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