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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의 고발詩, <우리 모두는 굶어죽었다>①

淸山에 2015. 2. 13. 05:01

 




탈북 여성의 고발詩, <우리 모두는 굶어죽었다>①

산을 넋없이 바라만 보다/들판에다 그들을 묻었다/산이 아니어서/차마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평지처럼 묻어버렸다

김수진(자유기고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편집자 注>조갑제닷컴은 최근 脫北한 북한 여성(김수진·가명·46세)이 쓴 40여 편의 詩를 입수했다. 함경북도에 살았던 김 씨는 1996~1997년의 大饑饉(대기근) 당시 자신의 눈 앞에서 북한주민들이 굶어죽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았고, 2009년 화폐개혁 이후 하루아침에 재산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린 주민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지켜보았다고 했다.
   김씨는 2013년 한국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도 北에서 보았던 참상을 잊지 못하고 있다. “밥주걱으로 하얀 흰 쌀밥을 풀 때면 꽃제비들, 죽으면 떠나갈 앞산만을 바라보는 숱한 배고픈 노인네들…배고픔에 시들어가는 내 고향 사람들에게 밥주걱을 먼저 돌린다”고도 했다.
   김 씨는 지난해 이석기 의원 등의 親北 행각이 보도됐을 때 너무 놀랐다고 한다.
   “북한은 지금도 인민이 굶어죽어 나가는데 이 행복한 세상에서 살면서 그런 지옥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내가 북한의 참상을 글로 써야겠구나 하고 결심하고 한 보름 만에 열다섯 편을 써내려 갔습니다.”
   조갑제닷컴은 김 씨의 詩를 매일 한 편씩 소개한다. 일부 낯선 북한용어는 괄호 속에 해설을 달았다.
 
  
 
 
  1장<우리 모두는 굶어죽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내 집 옆에 주인 없는 屍身(시신)들의 집결소가 있었다. 하루는 누군가 바래는 시체 행렬을 세다가 끝내 못 세었다고 한다. 그렇게 묻히기를 매일이다시피 했다. 가냘픈 擔架(담가: 들것) 대들도 산으로 오르다 끝내 오르지 못하고 길다란 큰 밭에다 전부 묻어버렸다. 그것도 묘지라는 흔적도 없이 평판(봉분을 쓰지 않고 平葬함)해 버렸다. 그 많은 시신들을 누가 산으로 날라 오르랴? 그 사람들도 며칠 후면 산으로 오를 신세의 형편인데…
 
 
 
  (산까지 올라 못간 시신들아)
 
  사람이 죽으면
  산에 묻는다고 하지
  들판에 심는다고
  하지 않는다
 
  숱한 주검을 담가에 싣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아
  거밋발 같은 힘으로
  끝내 산까지 오르지 못해,
 
  산을 넋없이 바라만 보다
  들판에다 그들을 묻었다
  산이 아니어서
  차마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평지처럼 묻어버렸다
 
  힘이 없었다
  굶음은 마찬가지
  몇시간 더 살아있을 뿐
  가다가 죽을지
  오다가 죽을지
  그들의 목숨 또한 경각의 시간들
 
  먼저 간 그들이
  욕할지언정
  갓난 아기 걸음마 타듯
  중도에서 쓰러져버린 담가대
 
  그래도
  그들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삽날을 박았다
  시신들을 안장시켰다
  이렇게 시신들은 되풀이되었다
 
  무심타 산천아
  산까지 올라 못간 시신들아
  죽은 사람들을 위해
  산사람들의 의리조차
  다할 수 없었던 비애의 순간들이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