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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역사읽기'로 본 문창극 전 주필의 생각 읽기

淸山에 2015. 2. 12. 12:47




 


 




'문창극 역사읽기'로 본 문창극 전 주필의 생각 읽기
 백강녕 기자

입력 : 2015.02.12 10:54 | 수정 : 2015.02.12 11:50

 


작년 6월 친일 사관(史觀) 논란으로 총리 후보가 된 지 2주 만에 사퇴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최근 ‘문창극의 역사 읽기’(기파랑 출판사)라는 책을 썼다. 문 전 주필은 이 책에서 “지난해 여름 나는 개인적으로 시련을 겪었다”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잘못된 국가관과 역사관이 작용한 결과였다”며 “그것을 고치지 않고는 이 나라의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문 전 주필은 지난 2011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의 특별강연에서 "우리 민족은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한 게으른 민족"이라며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은 시련이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또 “남북 분단 역시 공산화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당시 파문이 일자 “강연의 특정 부분만 부각돼 전체 강연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강의는 우리 민족사에 점철된 시련과 이를 극복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창극의 역사읽기는 과거 문 전 주필의 발언에 대한 설명의 성격이 강한 책이다. 이를 위해 문 전 주필은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을 끄집어 냈다. 아래는 그가 책에 집어 넣은 구한말의 거주 환경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다.

“(광혜원을 세운 알렌은) 민비는 무당을 좋아해 임신하자 48일간 황소머리로 제사를 지냈고, 여우의 질로 목걸이를 만들어 고종이 바람을 피우지 못하도록 했다고 적었다. 그는 조선의 미국 사절단과 함께 미국으로 가면서 조선사절단의 선실에서 행태를 옷도 걸치지 않고 함부로 선실 밖으로 나다니며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적기도 했다.”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 조선 사람은 불결 등 외국인이 본 조선말 상황 인용

또 고종이 세운 신교육기관 육영공원의 교사로 온 목사 길모어가 쓴 글을 옮긴 대목도 우리 입장에선 불쾌한 이야기다.

“길모어는 서울은 길이 좁고 하수시설이 없어 불결하며 조선사람도 불결하다고 했다. 그는 조선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사람이 자신이 본 가장 더러운 사람이었다는 영국인의 말을 인용했다.”


문 전 주필은 “청일전쟁에서 1910년까지 조선에 관한 책 중 압권이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고 적었다.


“초록빛을 띤 걸쭉한 수채 도랑이 흐르는 서울의 거리를 돌아보며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고 했다. 반면 부산의 일본인 지역은 깨끗하고 상수도까지 갖추었다고 비교했다.”


문 전 주필은 이어 “그녀는 조선인이 이렇게 더럽고 가난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했는데 연해주와 간도의 조선인을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거기에 살던 조선인들이 부지런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정치에서 찾았다. 그곳은 조선같이 수탈이 없었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일을 했다. 조선 사람들이 게으르게 된 것은 빈곤이 그들에게는 빼앗기지 않는 최선의 안전책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동학은 농민 반란, 비전 없고 변화에 무지


문 전 주필은 조선말 망국 상황에서 나라를 살리고자 한 세 가지 운동을 위정척사, 동학, 개화사상이라고 했다. 그는 위정척사는 시대 상황과 맞는 않았던 것으로 봤다. “위정척사는 수구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동학도 부정적으로 봤다. 다음 구절이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 “동학이 내부적으로 봉건질서에 대한 반발로 나온 농민들의 반란이었으나 그것이 당시 상황에서 조선을 개혁할 만한 비전을 지녔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밖의 변화에 무지했다.”


그가 동학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은 이곳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안중근에 대해 쓴 부분을 보자.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양반이었던 그의 부친은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 동학군 진압에 나섰다. 안중근은 그때 16세로 아버지를 도와 동학군에 대항해 싸웠다.”


동학군과 대항해 싸운 군대를 의병이라 묘사한 셈이다. 물론 그는 동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동학이 옳고 의병이 그러다, 혹은 의병이 옳고 동학이 그르다고 할 것이 못 된다. 그것이 합쳐져서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라는 이야기였다.


문 주필의 선택은 개화사상이었다. 그는 “나의 생각으로는 개화사상이 시대에 맞는 가장 현실적인 처방을 내린 사상이었다고 본다”고 적었다. 나아가 그는 개화사상이 일본을 모델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초기엔 일본 친화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은 우리나라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 같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자체를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일본 같이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즉 롤모델을 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 친화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또 그는 조선 말기란 시대 자체를 부정적으로 봤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조선말의 상황을 들으면 어깨가 처진다. 조선말의 경우를 보면 이런 나라가 우리의 나라였다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런 조선말 상황에 대한 그의 역사 인식은 개화 사상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또 개화 사상가들의 일본에 대한 애증이 그가 일본에 대해 애증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으면서 밝혔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개를 책에 기록했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2.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어지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왕을 속인 죄요. 14.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요. 15. 천왕의 아버지 태황제로 죽인 죄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문 전 주필은 책의 상당 부분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재평가에 할애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부산 정치 파동, 사사오입 파동 등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한 행동은 비난받을 만하다”면서도 “그때 그 자리에 이승만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축복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승만이 한국을 공산화 위협에서 구했고,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안보 걱정도 덜었다”면서 “이승만 같은 리더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3선 개헌 당시 대학을 다닌 나는 박정희를 싫어했다”며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만일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 나라가 지금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존재가 나라를 위해 큰 행운이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선 “그 시절 꿈이 대장이라면 일본 육사를 가지 않았을까”라며 “박정희를 (일제) 협력자로 보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4.19 상징하는 민주주의는 방종, 안보의 포기


반면 문 전 주필은 4.19 혁명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4.19 이후 김일성 전 주석이 당정군 간부회의에서 “장면 정권 때 탄압이 완화되니 인민들이 들고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통일이 흐물흐물 익어 떨어지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그리고 4.19가 상징하는 민주주의는 혼란과 방종 안보의 포기란 입장을 밝혔다. “이것이 4.19 이후의 상황이었다. 민주주의를 내세운 4.19 혁명의 결과였다. 그때 민주주의는 혼란이었다. 민주주의 방종이었다. 민주주의는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전체 100자평 (18)


석진석(tw****)

2015.02.12 11:57:11신고 | 삭제

요즘 같이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시대 환경에 다시 한번 꼭 필요한 지도자 : 박정희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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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호(soam****)
2015.02.12 12:40:23신고 | 삭제

그런데도 그 과실을 따먹으며 온갖 호사는 다누리면서 그분들을 욕보이는 정청래를 비롯한 일부 야당인사들과 종북주의자들을 보며 분노를 느끼지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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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균(onnu****)

2015.02.12 12:37:37신고 | 삭제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우리 나라가 이렇게 대단해 졌다면 우리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완구 총리후보는 안되겠죠?? 이런 사람이 총리로 있다가는 나라 다 거들먹 거리겠네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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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문(pea****)

2015.02.12 12:37:31신고 | 삭제

훗날 역사가들은 87년-- 2015년 지금 까지의 기간을 국가 발전이 엄추고 쇄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종적 민주주의와 진리와 민족을 잊어버린 저속한 정치분야가 민족을 쇄퇴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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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묵(ksm****)

2015.02.12 12:21:59신고 | 삭제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엇찌 지구상에 존재하였나! 또한 고 박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된 한국이 존재할까보다 ! 분명한것은 두위인의 대통령이 있었기에 산업화의 선진 조국인 대한;민국이 지구상에 존재함을 종북빨들은 부인치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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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운(ana****)

2015.02.12 12:18:28신고 | 삭제

이승만 박정희를 부정하는자는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반만년가난을 이기고 동족상잔 공산악귀에게서 민주주의를 지켜낸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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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