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으로 보는 이슬람의 역사
2014-09-26 by [삼척동자] 현세의 칼리프를 자처하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현세의 이맘,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칼리프, 술탄, 에미르, 셰이크, 이맘, 물라…. 이들 단어의 공통점을 아시겠습니까? 이슬람 문화권에서 기원해 다른 문화권에도 전파된 지도자의 호칭입니다. 칼리프와 술탄은 왕, 에미르는 왕자, 셰이크는 족장이나 장로, 물라는 종교지도자에 해당하는 용어로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슬람국가’(IS)가 갑작스레 역사상으로 사라진 칼리프국가를 선포한 뒤 이런 호칭의 정확한 뜻과 기원,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권 지도자의 호칭을 정리해봤습니다. 아랍어 발음이나 뜻을 정확히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이슬람 관련 국내 자료나 염미권 자료를 토대로 그 기원과 차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처음엔 다섯 개 정도만 하려했는데 정리해나갈수록 새로운 호칭이 쏟아져 ‘과연 끝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 속에 악전고투를 펼쳐야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해놓고 나니 후련합니다. 혹시 오류를 발견하시면 기탄없는 질정 부탁드리겠습니다. (1) 칼리프 아랍어로 계승자, 대리자를 뜻하는 ‘할리파’의 유럽식 표기입니다. 그렇다고 ‘알라(신)의 대리자’란 뜻은 아닙니다. 그건 최후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에게만 해당합니다. 정확히는 무함마드의 대리자라는 뜻입니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난 뒤 그 권위를 승계해 이슬람공동체 ‘움마’를 다스린 최고지도자를 뜻합니다. 초기엔 신과 직접 교감한 무함마드의 신성함까진 갖추지 못한 정치·군사 지도자를 의미했지만 후대의 술탄이나 에미르에 비해선 종교적 정통성이나 위상이 높았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 공통으로 무함마드 사후 초기 4명의 칼리프(아부 바크르-우마르-우스만-알리)를 정통 칼리프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2대 우마르를 제외하곤 모두 합의제로 선출했기에 집단지도체제의 최고지도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들 칼리프가 다스리는 지역을 칼리파트라고 하는데 정통 칼리프 시대엔 움마=칼리파트였던 셈입니다 4대 칼리프인 알리가 불의의 죽음을 맡고 나서 세습을 통해 아랍제국을 다스린 우마이야 왕조(661~750)와 그 뒤를 이은 아바스 왕조(750∼1258)의 왕도 칼리프에 해당합니다. 시아파는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수니파는 ‘정통 칼리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를 수용합니다. 우마이아 왕조에선 칼리프 보다는 ‘믿는 자들의 사령관’이란 뜻의 ‘에미르 알 무미닌’이란 칭호를 선호했습니다. 상당히 초기부터 칼리프의 대용어로 에미르가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바스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한 9세기 중반부터 주로 투르크계 노예용병인 맘루크 출신이 술탄 또는 에미르를 칭하면서 칼리프는 종교적 정통성만 담보하는 상징적 지위로 전락합니다. 이후 아바스 칼리프는 중세유럽의 교황 또는 일본의 텐노(天皇)와 비슷한 위상만 누리며 상당기간 존속합니다. 1258년 몽골의 침입으로 아바스 칼리프는 사실상 폐절됩니다. 다만 1261년 이집트 맘루크 왕국에서 그 후예를 찾아내 다시 칼리프로 추대하면서 가냘픈 명맥을 이어갑니다. 1517년 오스만 투르크 왕조(1299~1922)의 술탄 셀림 1세가 이집트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면서 칼리프의 권좌는 이스탄불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200년 가까이 칼리프란 칭호 대신 술탄만 사용되다가 18세기 말 이슬람 부흥론이 일면서 칼리프란 호칭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특히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 2세(1876~1909 재위)가 서구 열강에 맞서 아랍민족의 단합을 끌어내기 위해 칼리프를 표방합니다. 하지만 1차대전의 패배 이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공화국이 성립하면서 1924년 3월 칼리프제는 공식 폐지됩니다. 이렇게 사라진 칼리프란 칭호는 90년 뒤인 2014년 6월 IS가 칼리프국가(칼리파트)를 선포하면서 부활합니다. 그 초대 칼리프를 자처하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이름을 뜯어보면 왜 IS가 칼리프란 호칭에 집착하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부 바크르’는 역사상 최초의 칼리프였던 아부 바크르(573?∼634)의 이름입니다. 아부 바크르는 이라크와 시리아 정복에 착수한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입니다. 다음 ‘알 바그다디’는 ‘바그다드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이라크 북부 사마라 출신인 그가 왜 이 이름을 쓰는 걸까요? IS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북부를 영토로 삼고 있습니다. IS 이전 명칭인 ISIL(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또는 ISIS(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도 모두 이들 지역명을 포함합니다. 수니파 칼리프 왕조인 우마미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수도는 각각 시리아 다마스커스와 이라크 바그다드였습니다. (2) 술탄 아랍어로 권력 또는 권위를 뜻하는 ‘술타’에서 파생한 단어로 권능이나 통치를 뜻합니다. 본래는 이슬람의 최고 통치권자인 칼리프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일정 지역을 통치하던 정치군사지도자의 칭호입니다. 9세기 중반 이후 아바스 왕조가 쇠퇴하면서 아바스 제국 아래 사실상 개별왕조를 세운 이들이 자칭타칭 술탄을 표방하면서 이슬람권의 세속군주를 뜻하게 됩니다. 페르시아(현재의 이란) 통치 지역에선 전통적 왕의 호칭인 ‘샤’와 병치되기도 합니다. 술탄이 다스리는 지역은 칼리파트와 구분해 술타나트라고 부릅니다. 초기엔 황제(칼리프)로부터 통치 지역을 나눠받는 왕(술탄)의 관계와 유사했습니다. 후대로 가면서 일본의 텐노(天皇)와 쇼군(將軍)의 관계를 닮아가게 됐고 종국에 가선 술탄이 칼리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실제 1258년 아바스 정통 칼리프가 폐절된 뒤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사실상 칼리프의 역할까지 대신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술탄이란 칭호의 위상도 크게 강화됩니다. 1924년 터키의 술탄제는 칼리프제와 함께 폐지됐지만 오만과 부르나이에서는 여전히 최고 지배자를 술탄으로 부르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 에미르 아미르 또는 에미르로 발음되는 이 호칭은 아랍어로 ‘명령’과 관련한 어근 ‘-m-r’에서 파생했습니다. 보통 군대의 사령관을 뜻했으나 현재는 왕자(prince)나 통치자의 칭호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영어의 제독을 뜻하는 admiral도 이 단어에서 파생해다고 합니다. 에미르가 다스리는 지역을 에미리트라고 합니다. 이걸 토후국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의 왕을 에미르라고 부릅니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아라비아반도 남부 7개 에미리트의 연합인데 대통령은 수도인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맡고 부통령 겸 총리는 두바이의 에미르가 맡습니다. 보통 에미르를 술탄 보단 급이 낮은 총독쯤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술탄에 버금가는 칭호입니다. 수니파 우마이야 왕조 때는 칼리프 칭호를 대신해 ‘에미르 알 무미닌’(믿는 자들의 사령관)이란 칭호가 쓰였습니다. 또 시아파는 정통 칼리프 중 가장 중시하는 4대 칼리프 알리를 ‘에미르 알 무슬림’(무슬림의 사령관)으로 차별화해 부릅니다. 10세기 아바스제국 시대가 되면서 칼리프가 임명한 최고군사령관을 ‘에미르 알 우마라’(에미르 중의 에미르)로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 직함을 지닌 인물이 일본의 쇼군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특히 페르시아 지역에서 출원해 아바스제국의 수도 바그다드까지 진출했던 부와이흐 왕조(945~1055)의 왕이 이 칭호를 썼습니다. 이를 전후해 아바스 제국의 도처에서 군사 ·재정상의 권한을 겸하여 법관을 임명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화폐를 주조하는 사실상의 독립왕조의 왕들이 이를 자처했습니다. (4) 셰이크 아랍어로 ‘나이’나 ‘연로’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경칭입니다. 보통 40대 이상의 남자에게만 붙이는 이 호칭은 문자 그대로만 보면 ‘장로’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이 호칭을 붙이는 경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한 갈래가 정치적 권위나 경제적 자산을 갖춘 세력가라면 다른 한 갈래는 학문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전자는 과거 부족의 대표자 내지 지도자의 존칭으로 쓰던 것이 확대된 것이고 후자는 과거 이슬람신학교 정규과정을 마친 신학자에 대한 존칭이 다른 학문분야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지역별 의미차이도 존재합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선 성공한 사업가에게 붙여주는 호칭으로 한국의 ‘사장님’ 정도에 해당합니다. 레바논과 아프리카 지역에선 셰이크가 아랍계 귀족의 호칭으로 쓰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같은 남아시아에선 이 지역으로 이주한 아랍계 혈통임을 드러내는 이름의 일부로 쓰입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에선 존경받는 무슬림에게 사후 존칭의 의미로 붙여줍니다. (5) 이맘 이슬람교의 크고 작은 종교 공동체의 통솔자를 말합니다. ‘앞에 있다’라는 뜻의 ‘아마마’라는 동사에서 파생해 지도자나 모범, 사표란 의미를 획득했습니다. 다만 수니파냐 시아파냐에 따라 현격한 위상 차이를 갖습니다. 수니파의 이맘은 성직자가 없는 이슬람교에서 타종교의 성직자와 가장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모스크(성원)에 모여서 집단 예배를 할 때 원칙적으론 모인 신도들 중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자를 그때그때 선정하게 돼있습니다. 특히 금요 정오집단예배처럼 특별한 예배에선 전문 설교사(하티브)가 정치성이 가미된 설교(후트바)를 실시하는데, 이맘이 이를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슬람신학에 정통한 학자를 뜻하는 울라마 중 한 명이 특정 모스크의 상임 이맘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수니파의 이맘은 기독교의 목사와 비슷합니다. 지역별 모스크에 상주하며 종교의례를 주재하지만 가톨릭 신부와 달리 임명직이 아니라 추대직이며 결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아파의 이맘은 가톨릭의 교황에 맞먹는 지존의 위상을 지닙니다. 시아파는 4대 칼리프이자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가 무함마드에 버금가는 영적 권능을 지녔다고 믿습니다. 이런 특별한 영적 권능을 ‘이맘의 권능 또는 권위’란 뜻의 이마마(Imamah)라고 부르는데 국내에선 보통 이마위(位)로 번역합니다. 시아파 이맘은 알리로부터 이 이마위를 물려받아 ‘신의 빛’(누르 후함마디)을 전하는 지고지순한 존재로 신과 인간의 중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아파 이맘은 사실상 ‘신성화된 칼리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아파에선 이 이맘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파벌로 나뉘는데 다수파인 열두이맘파는 알리와 그의 후손 11명만을 이맘으로 인정합니다. 이에 따르면 12대 이맘인 무함마드 알 하산은 872년 네 살의 나이에 속세에서 모습을 감춘 ‘숨은 이맘’이 됩니다. 대신 그의 의지를 대물림 받은 와킬이라 불리는 대리인을 통해 ‘우마’를 다스립니다. 940년 제4대 와킬이 숨을 거둘 때까지 이어진 이 시기를 ‘소은폐의 시대’라고 합니다. 4대 와킬이 후계자 없이 죽은 이후 지금까지를 ‘대은폐의 시대’라고 하는데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숨은 이맘’이 다시 출현하는 것을 기다리는 시대입니다. (6) 울라마 & 물라 & 파끼 & 까디 모두 이슬람학자 내지 율법학자를 가르키는 호칭입니다. ‘알고 있는 자’라는 뜻의 알림의 복수형인 울리마는 종교적 문제에 대한 학식 있는 자의 총칭으로 보면됩니다. 예배를 집전하는 수니파의 이맘, 이슬람학자이자 꾸란학교 교사인 물라와 파끼, 종교재판관인 까디는 모두 울리마에 해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울리마는 이슬람통치 이념의 수호자이자 통치권력의 담보자입니다. 아바스왕조 이후 칼리프, 술탄, 에미르 같은 세습군주들도 공식적으로 최고위급 울라마 회의체의 선출과정을 거쳐야 정통성을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푸코가 말한 지식과 권력의 결합을 이 시대 이후 울리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라는 ‘주인’이란 뜻에서 파생한 단어로 이란과 중앙아시에서 이슬람학자, 교사, 율법학자를 아우르는 경칭입니다. 까디는 ‘결정하다’는 뜻에서 파생한 단어로 샤리아(이슬람율법)을 토대로 일상생활에 이슬람 교리를 적용해 재판관를 뜻합니다. 다만 정부에서 임명한 공식 재판관이란 점에서 다른 울리마와 차별성을 띱니다. 덕망있는 울리마 중에서 공직을 부여받은 사람이란 점에서 영미권의 치안판사를 닮았습니다. 파끼는 ‘소유자’라는 뜻에서 출발해 지역에 따라서 때론 물라, 때론 까디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파끼는 특히 중동에서 까디와 차별화된 율법학자, 그러니까 공직은 없지만 민간의 존경을 받는 율법학자에 대한 존칭으로 쓰입니다. (7) 아야톨라 ‘신의 징표’란 뜻을 지닌 시아파 고위직 종교권위자에 대한 경침입니다. 20세기 초 이란입헌혁명 과정에서 새로 도입된 현대적 칭호로 종교적 율법에 대한 독자적인 유권해석(이즈티하드)을 내릴 수 있는 무즈타히드에게 주어집니다. 이즈티하드는 샤리아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수니파에선 금지된 반면 시아파에선 무즈타히드라고 부르는 최고 경지의 율법학자에 한해 허용합니다. 아야톨라는 이란의 종교지도자 회의체에서 공인한 무즈타히드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이란의 율법학자는 크게 3단계로 나뉩니다. 맨 아래 단계가 샤리아를 토대로 전통적 유권해석을 내릴 수 있는 ’호자통 이슬람’입니다. 두번째 단계가 이즈티하드를 내릴 수 있는 아야톨라입니다. 아야톨라는 추종자를 거느리고 독자적 세력을 확대해갈 수 있으며 시아파 신도라면 누구가 자신이 추종하는 아야톨라가 있어야한다고 합니다. 이 아야톨라 중에서 학식과 인품이 절륜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된 사람은 ’마르자 타클리드’라고 불리게 됩니다. ‘모방의 원천’이란 뜻의 마르자 타클리드의 다른 명칭이 바로 대(大) 아야톨리로 번역되는 ‘아야톨라 우즈마’입니다. 현재 생존 아야톨라 우즈마는 66명이라고 합니다. 이 아야톨라 우즈마 또는 마르자 타끌리드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마르자 타끌리드 무틀락’(절대적 모방의 원천)으로 추대합니다. 이 사람이 사실상 정통 칼리프와 열두 이맘 그리고 네 와칼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지요. 하지만 1961년 최후의 마르자 타끌리드 무틀락이 죽은 뒤부터는 여러 명의 아야톨라 우즈마의 집단지도체제가 됩니다. 그러다 1979년 이란혁명을 성공시킨 루홀라 호메이니가 최고지도자가 되자 ‘마르자 타끌리드 무틀락’이란 호칭 대신 이맘의 호칭을 부활시킵니다. 따라서 이란은 이슬람의 교황에 해당하는 이맘이 다스리는 나라, 이마메이트가 된 셈입니다. 현재 이란의 이맘은 1989년 호메이니가 죽은 뒤 그 계승자가 된 알리 하메네이(75)입니다. (8) 마흐디 무슬림은 세상이 종말을 고하는 최후 심판의 날이 오면 ‘숨은 이맘’이 나타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도(引導)된 이’라는 뜻의 마흐디는 그 최후의 날이 닥치기 전 마지막으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나타나 이슬람 황금기를 재현한다고 알려진 지도자를 말합니다. 기독교의 메시아, 불교의 미륵불, 우리의 정도령과 비슷한 종말론적 구원신앙의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마흐디의 역할에 대한 믿음은 수니파와 시아파 등 모든 무슬림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고 합니다. 수니파는 미래에 도래할 전혀 새로운 지도자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열두 이맘파는 마흐디를 기대하는 자라는 뜻의 문타자르라고 부르며 열 두번째 이맘이자 현세에 숨어있는 ‘숨은 이맘’과 동일시합니다. 이때문에 이슬람문화권 역사에서 마흐디를 자처하는 인물을 수없이 많이 만나게 됩니다. P.S> 자 이렇게 이슬람 지도자 호칭의 의미와 역사를 따져가다보다 보니 뭐니뭐니 해도 수니파는 칼리프, 시아파는 이맘이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IS가 왜 그렇게 칼리프란 칭호에 집착하는지도 좀더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호메이니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최고의 호칭인 ‘이맘’을 부활시키자 수니파인 IS 역시 그에 맞설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인 칼리프를 부화시키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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