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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의 鬼才 세지마가 말하는 참모의 哲學

淸山에 2014. 9. 14. 17:58


 





참모의 鬼才 세지마가 말하는 참모의 哲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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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참모라고 하면 소설 '不毛地帶(불모지대)'의 모델인 세지마 류조(瀨島龍三)를 연상한다. 幼年학교-陸士-陸大를 수석이나 차석으로 졸업한 장교로서 태평양전쟁 때의 대본영 참모였고, 戰後엔 이토추 상사 회장, 그리고 나카소네 총리의 측근, 한일간의 密使를 맡아 일본 현대사의 幕前幕後에서 일하였다. 그는 先功後私(선공후사)의 자세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국가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9년간의 군사학교 경험이 자신을 그런 참모형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회상록에 썼다.
  
   幼年학교 3년(13~16세)은 軍의 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인간 만들기였다. 군사 교육은 거의 시키지 않았다. 全員 기숙사 생활이었다. 사관학교 豫科 과정(16~18세)은 초보적인 군사교육 기간이었다. 豫科를 졸업한 뒤 6개월간 부대 배치를 받아 실습을 한다. 이때 비로소 사병과 접촉할 수 있다. 장교단의 일원으로서 그 분위기를 엿보고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체득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사관학교 本科(18~20세) 때 본격적인 군사교육, 陸大는 참모 교육과정이다. 군대의 강점은 이런 체계적인 교육과정이다. 한국적 군사문화의 産物인 朴正熙의 경우, 대구사범 5년, 만주군관학교 2년, 일본 육사 2년, 한국 육사 6개월, 미국 유학 1년, 한국의 육군대학 1년의 과정을 밟았다. 약12년간의 체계적인, 집단적인 교육을 통하여 양성된 지도자였던 셈이다.
  
   朴正熙의 성공은 엘리트 교육, 지도자 교육의 성공이기도 하다. 민주鬪士들이 대통령이 된 뒤 실패한 것은 이런 지도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세지마는 회상록('幾山河')에서 참모의 세 가지 마음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첫째, 참모는 지휘관이 정확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자리이다. 둘째, 참모는 바쁜 지휘관의 중압감을 덜어주어 그가 平常心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자리이다. 셋째, 참모는 비밀을 엄수하여야 한다>
  
   참모가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에 대하여는 이렇게 정리하였다.
 
   <

1. 항상 內外의 정보를 수집하여 實情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2. 정보에 기초하여 넓은 시야를 가지고 지휘관에 대하여 適時에 策案을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 복수의 案을 건의할 때는 올바른 판단을 돕도록 자료를 준비한다. 
  

3. 지휘관이 결심한 事案이 잘 집행되도록 보좌하고 事後 점검을 통하여 명령대로 시행되도록 관리한다.>
  
   세지마는 자신이 사회에 나와서 한 일도 다 군대에서 배운 참모의 자세를 실천한 것뿐이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