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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만 있어도 뇌물이 쌓이는 ‘물 좋은’ 北 간부 직책은?

淸山에 2014. 9. 2. 15:46

 




앉아만 있어도 뇌물이 쌓이는 ‘물 좋은’ 北 간부 직책은?
주성하 기자


입력 2014-09-02 03:00:00 수정 2014-09-02 08:48:56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2006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축구경기 판정에 항의하는 학생을 보안원들이 끌어내는 모습. 보안원들을 비롯한간부들의수탈은점점심해지고있다. 동아일보DB3


주성하 기자


“100원 떼먹은 놈은 자기비판하고 1000원 떼먹은 놈은 호상비판을 하며, 만 원을 떼먹은 놈은 주석단에 앉아 회의를 집행한다.”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생활총화와 같은 회의 때 대중 앞에서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기비판이고, 비판 대상이 된 사람을 꾸짖는 역할이 호상비판이다. 주석단에 앉은 간부들은 비판 대상이 될 사람을 정하고 어떤 처벌을 줄지 결정한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따진다면 가장 큰 처벌받을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간부들이다. 북한 간부들이 각종 제도와 규정의 잣대를 휘둘러 주민들을 착취해 부정 축재한다는 사실은 남쪽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이니 새삼스럽진 않다. 배급과 월급으로 살 수 없게 된 지 수십 년째이고, 시장경제라 볼 수 있는 장마당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는데 간부들이 쥔 제도와 규정의 잣대는 과거 사회주의 유물이다 보니 휘두르면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선 살아있는 것 자체가 비사회주의고 비법(非法)이다”고 푸념한다. 법대로 살면 이미 오래전에 굶어죽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간부에도 레벨이 있다. 뇌물이 쏠리는 ‘물 좋은 곳’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갓 탈북한 북한 주민 100여 명씩을 대상으로 4년째 매년 조사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가계소득의 20% 정도를 뇌물로 바친다. 큰 장사를 할수록 뇌물액은 커져 소득의 50%가 넘기도 한다. 북에서 가장 잘사는 사람을 묻는 질문엔 4년째 중앙당 간부와 법 관련 종사자가 압도적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법 관련 종사자에는 검찰, 보위부, 보안서(경찰) 등이 속한다.

지난 칼럼에서 북한에서 가장 큰돈을 버는 사람들은 무역에 종사하면서 국가 돈을 떼먹는 간부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 눈에는 국가 돈보다는 자기들 돈을 뜯어가는 사람들이 더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서울대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은 단속이라는 구실로 뇌물 받는 자리가 최고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부자 1위로 꼽힌 중앙당 간부는 워낙 출신성분이 빼어나게 좋아야 하니 사실상 타고나는 자리이다. 수도 많지 않다. 반면 2위로 꼽힌 법 종사자들은 웬만한 출신성분이면 평민 출신도 노려볼 수 있는 자리다. 한국으로 치면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셈이다. 그런데 북엔 사법시험이 없고 법과가 김일성대에만 있으니 입학 자체가 곧 사시 합격이나 마찬가지다. 전국의 판검사는 모두 김일성대 선후배들이니 이들의 결속력과 군기는 정말 세다.

북에선 판사보다는 검사를 훨씬 더 선호한다. 법에 걸리지 않는 기관이나 기업이 없으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뇌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검사 몇 년이면 호화주택은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다 새집을 사줄 수 있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검사에 비해 직접적으로 주민들을 협박하거나 단속해야 하는 보위부 보안서는 좀 불쌍하고 비열해야 하는 자리다. 보안원들 속에는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검사는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다.

남을 잡아넣을 수 있는 칼을 쥐지 못했다면 도장을 틀어쥐고만 있어도 괜찮다. 큰돈을 다루는 무역 기관 사람들도 제품을 수출하거나 수입하려면 노동당, 무역성, 외무성, 인민위원회 등 도장을 받아야 할 곳이 10곳이 넘는다. 도장 하나마다 뇌물이 들어간다.

도장으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자리 중 하나는 각 지역 노동당 간부부(간부들을 관리하는 부서) 해외파견과이다.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려 해도 담당자에게 200∼300달러를 주어야 한다. 평양의 경우 해외파견과에 1년만 있으면 몇만 달러는 기본으로 챙길 수 있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감안할 때 한국으로 치면 매년 10억 원 이상 뇌물을 받는 자리인 셈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산하 간부들은 노동당 입당을 돈 받고 판다. 보통 500달러면 입당이 가능하다. 과거엔 10년 군 복무를 하면 입당시켜 주었지만 이제는 군인조차도 200∼300달러는 줘야 한다. 대학생은 훨씬 어려워서 건설장에 나가 입당하려면 공사 지원비와 당 비서 뇌물로 각각 3000∼4000달러는 써야 한다. 노동당원이 되지 못하면 간부가 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노동당 민방위부는 과거 가장 인기가 없는 자리였지만 최근 연간 장마당이 활성화된 뒤론 인기가 급상승했다. 북한에선 누구나 민방위 훈련과 비슷한 적위대 훈련을 무려 보름이나 받아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장사를 못하면 손해가 크다. 요즘 평양의 경우 중심구역에선 훈련을 빠지는 대가로 20달러 상당의 15kg짜리 휘발유표 두 장이, 주변구역에선 한 장이 뇌물로 쓰인다. 1만 명만 훈련 불참을 눈감아주면 20만 달러가 생긴다. 그러니 구역당 민방위부장은 웬만한 무역회사 사장 저리가라 하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부자는 중앙당 간부가 맞다. 주민들을 뜯어먹고 사는 간부들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뇌물액수는 점점 커진다. 손자뻘인 김정은에게 머리 조아리며 기를 쓰고 버틸 때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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