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용기 -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13세기부터 이탈리아의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부흥, 15세기부터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지리상의 대발견(또는 해양진출)과 식민지 개척, 16-17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과 帝國(제국)주의의 확산, 18-19세기에 걸친 프랑스의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19세기의 국민국가 건설과 서구 민주주의의 확산,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전쟁과 실패한 공산혁명. 이렇게 세계사의 흐름을 정리해놓고 보면 마르틴 루터가 주도한 종교개혁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조직의 힘이 아니고 한 개인의 영웅적 결단에 의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그 뒤의 세상이 달라진 정도로 따질 때 예수의 십자가刑(형), 루터의 종교개혁,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먼저 떠오른다. 1517년 10월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가 聖書(성서)를 무기 삼아, 교황청을 상대로 도전장을 낸 행동은 조직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았다. 오직 그 한 사람의 분노와 정의감이 촉발시킨 변화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행동이자 용기였다. 영국의 토머스 칼라일은 名著(명저) '영웅숭배론'에서 "용기를 특징으로 하는 튜턴 민족중에서, 그보다 더 용기 있는 인물이 살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썼다. 그는 또 "자연과 사실의 진정한 아들 루터, 그를 보내주신 데 대해 작금의 수백 년, 그리고 앞으로 올 수백 년은 하늘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칼라일은 특히 1521년 4월17일 독일 보름스에서 열린 神聖(신성)로마제국의 국회에서 루터가 교황청 비판의 자세를 견지한 것을 근대 유럽사상 최대의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에 의해 종교개혁이 불 붙은 뒤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갔고 사회, 정치혁명의 성격을 띠었으며 결국은 국가간의 전쟁으로 발전했다. 1517년에 시작하여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까지 西유럽은 가톨릭 편과 프로테스탄트 편으로 갈려 피비린내 나는 전쟁, 암살, 內戰(내전),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인간의 신념을 기준으로 하여 편을 가르고 피를 흘렸다는 점에서 20세기의 이념대결과 비슷하다. 이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열병을 가장 슬기롭게 극복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갈등으로 해결한 나라는 프랑스였고 最惡(최악)의 代價(대가)를 치른 것이 독일과 스페인이었다. 이 때문에 國力 소모가 적었던 영국 프랑스가 17, 18세기에는 선두에 나서고 독일과 스페인은 後進(후진)하였다. 16~17세기 약 100년간 독일이 종교분쟁에 휘말려 國力을 소진한 대가로 프랑스에 밀린 것을 극복하는 데는 1870년의 普佛(보불)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 약 230년이 걸렸다. 이는 20세기 들어서 자본주의의 약점을 파고든 사회주의의 열병을 많이 겪은 러시아, 중국, 북한, 월남, 東歐(동구)가 주변 국가들에 비교하여 후진한 것과 비슷하다. 마르틴 루터가 불길을 당긴 종교개혁에 의해서 인류의 사는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중세 유럽을 정신적으로(때로는 정치적으로) 지배하던 교황청의 절대적 권위가 무너졌다.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汎(범)유럽적인 권위가 약화된 틈을 타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進前(진전)하였다.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한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개인주의, 人權(인권), 자본주의의 윤리를 확산시키면서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치관으로 뿌리내렸다. 기성질서의 큰 기둥을 무너뜨린 종교개혁은 교회의 압제로부터의 인간해방이란 성격을 띠었다. 이 시기 인간해방의 핵심은 종교의 자유, 그에 따른 언론의 자유 같은 것들이었다. 인류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종교개혁은 엄청난 인명손실이란 代價를 치렀다. 30년 전쟁으로 독일의 인구는 3분의 1이 줄었다고 한다. 독일의 피해는 2차세계대전 때보다도 더 참혹했다는 것이다. 서구가 이슬람권이나 동양 유교문화권보다도 앞설 수 있었던 여러 이유중의 하나는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자유의 폭을 넓힌 西歐와 그런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던 이슬람과 유교 문화권의 차이는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로 나타났다. 인간이 도그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으면 그 자유만큼 물질적 성장과 생산과 창조가 이뤄지고 이것이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와 선진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였다. 상호 존중이 그것이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면 이란이나 북한 같은 神政(신정)체제가 된다. 북한은 主體敎(주체교)와 영생敎主(교주) 김일성이 지배하는 중세型의 神政체제이다. 정치가 종교를 탄압하면 나치 독일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과학과 종교도 상호 존중해야 한다. 과학이 종교를 분해한다든지, 종교가 과학을 억압하면 인간은 설 자리가 없다. 국가가 종교를 탄압하지 않는 한 종교는 國法(국법)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종교인들이 교황을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종교적 사대주의이자 政敎(정교) 분리의 대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訪韓(방한)하는 교황이 세월호 사고의 政爭化(정쟁화)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천주교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 국가가 아니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일부 종교인들이 도덕적 우월성이란 함정에 빠져 국가와 法治(법치)를 우습게 보는 행태를 보이면 반드시 거센 反작용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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