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대 바꾸기] 병영문화 개선 모델은 카투사? 김정현 인턴기자
입력 : 2014.08.31 19:53 | 수정 : 2014.08.31 19:59 내가 체험한 카투사 23개월 2008년 6월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인근. 이른 아침 완전군장을 한 군인들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도로를 내달렸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 거친 숨을 고르며 뛰었다. 훈련에서 얻은 무릎 부상 통증을 잊기 위해 왼손에는 진통제 약통을, 오른손에는 총신이 짧은 M4 소총을 움켜쥐고 달렸다. 연거푸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후임들이 하나둘 대열을 이탈했다. “이번에 탈락하면 ‘EIB(우수보병휘장)’는 물 건너 간다. 조금만 더 힘내!” 목표지에 가까워질수록 탈진해 쓰러지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마비된 다리를 움켜쥐고 분에 못 이겨 엉엉 우는 병사도 있었다. 후임병들을 부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규정상 불가능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나는 카투사(KATUSA·Korean Augmen -tation to the US Army, 미8군 한국군 지원단) 전투병 출신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주둔하는 미8군 예하 ‘탱고경비중대(TANGO Security Force)’에서 미군들과 함께 복무했다. ‘KA’ 군번으로 시작하는 한국 육군 소속이지만, 미군의 지휘체계를 따르고, 미군 군복과 장비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EIB(우수보병휘장)
카투사에겐 미군과 같이 ‘우수보병휘장’을 뜻하는 ‘EIB(Expert Infantryman Badge)’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EIB는 일종의 미군 자격 시험이다. 20년 된 미군 베테랑들도 쉽게 따지 못할 만큼 난이도가 높다. 본시험에 앞서 예비자격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나를 비롯한 탱고경비중대 카투사들은 EIB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네 달 전부터 하루 6시간씩 아침 구보와 오후 체력단련을 했다. 영어로 된 군사매뉴얼을 익히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했다. 예비시험에서는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여 목표지점을 찾아야 하는 독도법(讀圖法) 시험, 완전군장을 하고 3시간 안에 12마일(약 20km)을 주파하는 군장 구보(Ruck Marching), 40발 중 36발 이상을 명중시켜야 하는 실탄사격, 2마일(3.2㎞) 전력질주를 비롯 2분 안에 팔굽혀펴기 40개와 윗몸일으키기 50개를 해야 하는 기초체력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지옥의 코스’로 불린 12마일(약 20㎞) 완전군장 구보를 통과하지 못해 예비시험에서 탈락한 카투사들이 속출했다. 예비시험을 겨우 통과해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미8군 캠프 케이시로 갔다. 일주일간 이어지는 본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본 시험에서는 소총(M4, M16)과 권총(M9)을 비롯해 각종 개인 중화기(M249, SAW, 50CAL)들의 취급법을 테스트했다. 이어 폭탄물 설치와 제거, 화생방, 통신법, 응급처치술 등 시험이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시험 도중 실수가 나오면 ‘탈락’을 뜻하는 ‘노 고(No Go)’ 판정이 나왔다. ‘노 고’를 3번 받으면 탈락이다. “시험 통과율은 20% 정도”라고 들었다. 나는 M4 분해 조립과 수류탄 투척에서 ‘노 고’를 2번 받았다. 한 번만 더 실수하면 4개월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시험들을 무사히 통과하고, 검정 라이플총이 그려진 EIB 휘장을 명찰 위에 붙일 수 있었다. 내가 EIB를 취득하려고 애썼던 이유는 군 복무 동안 미군들로부터 ‘진짜 군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카투사들은 한국군 진급체계에 따라 능력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진급했다. 반면 미군은 능력에 따른 포인트제로 진급했다. 때문에 카투사들은 동료 미군들로부터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콧대 높은 미군들을 꼼짝 못하게 눌러줄 수 있는 무기가 ‘EIB’였다. 내가 복무한 탱고경비중대의 임무는 주한미군 사령관(대장)과 미8군 사령관(중장)이 유사시 지휘부로 사용하는 서울 근교 모처의 지하벙커를 사수하는 것이었다. 주한미군 최고수뇌부를 사수하는 임무 특성상 EIB 보유자들이 상당수였다. 내가 복무할 때 70~80명 정도 되는 중대 인원 대부분이 EIB에 도전했다. 나 역시 1년에 한 차례, 군복무 중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EIB에 도전한 것이다. “군 생활이 조금 풀린다”는 상병 계급을 갓 달았을 무렵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EIB의 라이플 휘장을 부착한 뒤부터는 미군들의 달라진 시선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미군들은 한국군 특유의 병영문화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탱고경비중대의 일부 카투사 병장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미군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현상도 종종 발생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계급이 올라갈수록 게으름을 피우고 후임병들을 못살게 하는 그릇된 리더십의 표본, ‘병장놀이’ 탓이었다. 이 병장놀이에는 갓 전입한 신병(新兵)들은 병장 앞에서 웃으면 안 되고, 담배를 피울 때도 고개를 돌려 피워야 하는 것 등등의 한국식 병영문화가 포함된다. 신병들이 수시로 남은 전역일자를 복창하거나, 이른 아침 병장들의 잠을 깨우러 다니는 행동을 미군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신병의 새 보급품을 병장의 헌 물품들과 바꿔줘야 하는 탱고경비중대 카투사들의 악습을 미군들은 어이없어 했다. 사석에서는 “한국군은 후진적”이라고 놀려댔다. 미군의 경우, 상병과 병장에게 부여되는 책임이 막중하다. 상병부터 NCO(Non-Commissioned Officer), 한국군으로 치면 부사관 대우를 한다. 계급만 높다고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 팀리더 코스와 위리어(전사) 리더십 코스를 통해 철저한 리더십 교육을 한다. 그중 실력과 인성을 인정받은 병사들만이 리더의 자리를 맡는다. 병영생활에서도 미군들과 한국군 사병들의 차이는 확연했다. 나는 매년 탱고경비중대와 육군 55사단 장병들과 ‘한·미연합 방호훈련’에 참가하며 한국군 장병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육군 55사단 장병들은 “한국군은 훈련은 대충하고 작업만 한다”며 미군들을 부러운 눈으로 봤다. 대표적인 것이 겨울철 제설(除雪)작업. 미군의 경우 폭설이 쏟아지면 대개 외부 제설차량을 동원했다. “제설작업이 병사들의 훈련시간과 사기를 뺏는다”는 것이 지휘부의 판단이었다. 반면 한국군들은 비가 오면 보수작업, 눈이 오면 제설작업에 몰두했다. 이를 두고 “한국군들은 총 대신 삽을 들고 다닌다”는 농담도 나돌았다. 또 미군들은 정교한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쳤다. 아침마다 ‘체력단련(PT)’을 실시했는데, 내가 복무한 탱고경비중대는 아침 6시에 성남 서울비행장 활주로에 집합한 뒤, 1시간가량 5~10마일 구보를 했다. 또 구보 후 신체단련과 ‘격투술(컴베티브)’ 같은 체력훈련을 별도 실시했다. 체력단련을 마치고 오전 오후 일과 중에는 ‘트레이닝룸(훈련계획실)’이 미리 세워 둔 계획에 따라 이론수업과 실전훈련을 병행했다. 시가지 전투, 테러리스트 진압, 폭발물 제거, 건물 내부 수색 등 종류도 다양했다. 또 미군과 함께 복무하는 카투사 병사들의 업무 특성상 군사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군사영어 교육도 따로 실시했다. 군인의 가장 기본인 사격훈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탱고경비중대 카투사와 미군들의 경우 매 훈련에서 반드시 소모해야 하는 실탄 수가 정해져 있다. 내가 복무한 탱고경비중대는 한 차례 사격훈련을 나가면 한 소대에 지급된 7000~8000발 가까이 되는 실탄을 모두 소비하고 돌아와야 했다. 실탄을 모두 소진하지 않으면 부대로 복귀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사격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진행됐다. 이런 차이는 ‘공포탄’을 들고 상대 진영을 탈취하는 ‘마일즈 쌍방훈련’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탱고경비중대의 소총수들은 ‘람보’ 영화처럼 수백 발의 총알을 난사했다. 반면 한국군 부대의 경우 극히 제한된 탄수(약 30발)로 한 발씩 사격했다. 한국군들은 또 쏘고 난 탄피를 일일이 회수했다. 그 결과 훈련에서 30명 남짓한 미군들이 100명이 넘는 한국군을 제압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훈련 뒤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미군과 한국군의 차이가 가장 확연한 부분이다. 한국군의 경우는 일과가 끝나도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하는 내무반에서 선임들과 ‘제2의 일과’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 내가 복무한 탱고경비중대에서는 훈련 뒤에 충분한 개인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2인1실’의 생활관에는 각 방별로 별도 화장실과 샤워실은 물론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싱크대까지 갖추고 있었다. 나도 고된 훈련을 끝마치고 오면 1인용 침대 위에서 뒹굴며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또 일과시간이 끝나면 영외로 외출도 자유로웠다. 호출했을 때 1시간 안에 복귀할 수 있는 거리에 있고, 통금시간만 확실히 준수하면 됐다. 대신 영외출입 때는 철저한 소지품 검사를 통해 총기 등의 무단 반출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렇게 ‘일과후’ 휴식시간을 얻은 카투사와 미군들은 부대 앞의 맛집이나 PC방과 같은 곳에서 고된 훈련 기간 축적됐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 보냈다. 이를 통해 선후임 간에 돈독한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이등병 때 가장 많은 기합을 줬던 당시 상병 박광훈(35)씨와 종종 연락을 한다. 박씨는 “훈련할 때만 ‘빡세게’ 열심히 해. 쉴 때는 재밌게 놀자”며 군기가 바짝 들었던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곤 했다. 당시 우리 부대의 중대장이었던 한국계 미군 최모(35) 캡틴(대위)이 혹독한 훈련을 마칠 때면 항상 외치던 구호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Train Hard! Play Harder!(훈련은 열심히! 놀 때는 더 화끈하게!)” 카투사 ‘카투사(KATUSA)’는 미8군 한국군 지원단을 뜻한다. 한국군 육군 소속으로 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돼 사실상 미군과 함께 복무하는 한국 군인이다. 대략 2000명의 인원을 운용 중이다. 카투사는 매년 한 차례 지원접수 방식을 통해 선발하는데, 카투사 지원은 예비입대자 평생 단 한 번만 가능하다. 토익(TOEIC) 780점, 토플(TOEFL) 561(PBT)·83(IBT), 텝스(TEPS) 690점 등 일정 점수 이상의 영어능력이 지원자격 조건이다. 카투사의 평균 지원율은 7 대 1에 달한다. 올해 지원 접수는 오는 9월 16일 시작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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