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조선족 최대 문화행사 '두만강 축제'서 울려 퍼져]
1938년 日帝 식민정책에 속아 만주로 간 충북지역 80가구
옌볜의 양반마을 '정암촌' 개척… 청주지방 문화풍속 보전·계승
한국에선 사라진 청주아리랑… 국내 학자 노력으로 복원돼
한국에서 사멸(死滅)했던 청주아리랑이 중국 옌볜(延邊)에서 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났다. 일제 때 만주 식민정책에 속아 옌볜에 갔던 우리 빈농(貧農)들이 간직하고 있던 청주아리랑이 국내 학자들의 노력으로 복원됐고, 올해 두만강변에서 열린 옌볜 조선족 최대의 축제 '두만강 문화관광축제'에서 드디어 한국·옌볜 동포들의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지난 8일 오후 7시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8개 시·현(市·縣) 가운데 하나인 지린성 투먼시에서 옌볜 조선족들의 최대 문화행사인 '중국 두만강 문화관광축제'가 열렸다. 북·중(北中) 국경 인근 두만강광장 강변무대에서 열린 이 행사는 올해 '생명의 강, 희망의 문(生命之江, 希望之門)'을 주제로 15일까지 계속됐다.
첫날 개막식 때는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에도 자치주에 거주하는 주민 2만여명이 광장 좌석과 관람석 계단을 가득 메웠다. 이날 식전행사에서 구성진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시아버지 골난 데는 술 받아 주고, 시어머니 골난 데는 이 잡아 주자. 시동생 골난 데는 엿 사다 주고, 막내동서 골난 데는 홍두깨 찜질…."
지난 8일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투먼시에서 개막한‘2013 중국 두만강 문화관광축제’에서 청주아리랑 공연팀이
상모를 돌리고 북을 치며 신명 나는 풍물놀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위). 10여년 전의 정암촌(아래 왼쪽)은 전형적인 한국 농촌 모습이었으나
주택개량사업을 거쳐 말끔하게 새 단장 했다(오른쪽). /유태종 기자
한국에서 건너간 청주농악대와 함께 한복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던 투먼시 정암촌(亭岩村) 주민들은 감회 어린 표정이었다. 정암촌은 1938년 청주·청원·옥천·보은 등 충북 지역 80가구 빈농들이 일제의 만주 식민정책에 속아 집단으로 이주해 피와 땀으로 일궈낸 마을이다. 해방 이후 과반수가 귀국했지만 나머지는 이국땅에 남아 청주 지방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왔기에 이곳에서 정암촌 주민들은 '충청도 양반'으로 통한다. 이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던 청주아리랑과 청주농악이 무대에 올라오자 공연단과 정암촌 주민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공연에는 충북 진천 용몽리 농요 공연단도 동참했고, 대금 연주를 곁들인 시조창(唱)도 선보여 관중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청주농악 전수조교인 방대원(66)씨는 "청주지역 국악인들과 정암촌 주민들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함께 추며 감격의 무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문학자인 임동철(66) 전 충북대총장은 1992년부터 정암촌을 수시로 방문하다가 국내에서 사라진 청주아리랑의 존재를 확인하고 복원 작업을 벌였다. 임 전 총장은 1978년 조선족 민요연구가 김봉관(78)씨가 녹취해놓은 정암촌 명창 신철(1931~1992) 선생의 청주아리랑 등을 토대로 노래를 복원해 냈다. 만주 벌판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온 청주아리랑이 결국 한국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됐고, 이날 두만강변을 울린 것이다.
개막식 공연에 참가한 정암촌 주민 신순호(여·77)씨는 "어릴 적부터 동네 어른들을 따라 배운 아리랑 가락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부르니 정말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임 전 총장은 "한국에서 사라진 청주아리랑을 복원해 대규모 축제무대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두만강축제 공연을 계기로 청주아리랑과 청주농악이 한국은 물론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음악으로 자리 잡을 기초를 마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