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11 ]

淸山에 2013. 7. 14. 12:4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11 ]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철벽

 

1950년 10월 이후 전장을 주도한 미군과 중공군은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1951년 6월이 되었을 때, 어느덧 승리에 대한 집념을 버렸습니다.  상대를 격멸하여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시도는 포기하였고 단지 현 상태에서 그대로 멈춰지기를 바라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항상 선봉에서 맹활약한 1사단도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진강에서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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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병사들은 지쳐갔습니다 ]

 

이제 전쟁은 패하지 않는 것이 차선의 목표가 되었고 전선은 휴전 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형태로 바뀌어갔습니다.  공세가 멈추고 한국전쟁의 나머지 2년을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있는 피의 고지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전쟁 전에 전진부대가 개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한 천혜의 방어선이었던 임진강은 이런 이유로 진격을 억제하는 장애물이자 전선의 일부로 변해가면서 서서히 고착화 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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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강은 서서히 군사분계선으로 고착화 되어 갔습니다 ]

 

전쟁 발발이후 단 한 번의 휴식기가 없었던 1사단은 이틈을 타서 잠시 후방으로 빠져 부대 재정비에 착수하였고 1952년 7~8월에는 남원과 밀양 일대에서 공비토벌전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후방 임무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전투력과 불패의 신화를 가졌고, 미군 측에서도 항상 옆에서 같이 싸워주기를 원하였던 1사단에게는 최전선이 보다 잘 어울리는 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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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방에서 공비 소탕을 벌이는 군경의 모습
전진부대도 재편 겸 해서 잠시 후방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

 

이 때문에 후방으로 빠지기로 예정 된 미 3사단을 대신하여 1952년 10월 다시 임진강 일대인 연천 부근에 재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전진부대는 부대사에 길이 남는 또 한 번의 승전을 기록하였습니다.  여담으로 국군 역사에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몇 명의 전쟁 영웅들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초급지휘관을 비롯한 사병들이었습니다.  전진부대에도 그러한 군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이때 탄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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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사단의 군신으로 추앙받는 심일 소위 ]

 

1953년 들어 휴전이 가시화되자 규모에 상관 없이 공세는 사라졌고 대신 좁은 지역에서 보다 좋은 거점을 확보하려는 양측의 대결은 더욱 첨예화되었습니다.  경기도 연천 서쪽 1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표고 120∼150미터 정도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고지군(이른바 배티고지)은 배후의 임진강을 감제할 수 있는 천혜의 전초진지였습니다.  비록 높이는 낮았지만 주변이 평야지대여서 그 중요성은 상당히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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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티고지군은 부근을 감제할 수 있는 요지였습니다 ]

 

만일 이곳을 공산군이 점령한 상태로 휴전이 이루어진다면 휴전선은 임진강 남쪽으로 물러나 현재보다 약 10킬로미터 후방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을 노린 적은 중공군 1사단이었는데, 이들도 북괴군 1사단처럼 국군 1사단으로부터 수모를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공산군 제1사단들에게 전진부대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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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적의 전진부대는 공산군이 결코 넘을 수 없는 철벽이었습니다 ]

 

휴전을 앞두고 국지적인 공세를 강화한 중공군은 베티고지에도 수시로 습격을 가해왔습니다.  따라서 잦은 교전이 고지군을 중심으로 벌어졌고 당연히 이곳을 지키던 아군의 소모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53년 7월 15일, 전투력이 고갈된 제11연대 7중대 1소대를 대신하여 김만술(金萬述) 소위가 이끄는 제6중대 2소대가 베티고지의 방어선을 인수했는데, 바로 그날 저녁 17시경부터 적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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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개 소대로 적 1개 연대의 공격을 물리친 베티고지 전투 신화의 주역 김만술 ]

 

최초 1개 소대 규모의 중공군이 포병의 지원 하에 아군 진지 안까지 밀려들어와 백병전이 벌어졌습니다.  포연이 걷히면서 갑자기 나타난 중공군에 2소대 병사들은 처음에는 놀라서 우왕좌왕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소대장 김만술이 선두에 나서 적들을 총검으로 제압하자 용기를 얻은 소대원들이 육박전을 펼쳐 적을 물리치고 멋진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