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국가와 수탈적 국가
全 세계에서 가진 나라(haves)와 가지지 못한 나라(have-nots), 즉 貧國(빈국)과 富國(부국)간의 隔差(격차)는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미국의 평균소득은 아프가니스탄의 50배이고 짐바브웨의 100배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세계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하였지만 아직도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極貧(극빈)의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제리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와 데이빗 로빈손(David Robinson) 등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런 경제적 격차의 이유를 문화적 및 지리적 조건에서 찾으려고 한다. 지리적으로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에 隣接(인접)하고 문화적으로 시민정신이 성숙한 지역에서 현대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MIT의 대런 아세머그루(Daron Acemoglu)교수와 하버드 대학의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교수는 그들의 共著(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경제발전의 조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발전의 지리적 문화적 조건 대신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을 연구하는 제도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을 근거로 하고 있다. 지리적 문화적 조건이론으로는 동일민족의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인접국가인 미국과 멕시코의 경제적 격차의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에 대해서 아세머그루와 로빈슨교수는 대단히 놀라운 진단을 한다. 즉, 어떤 정부는 故意的(고의적)으로 경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약하고 순응적인 제도(institution)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收奪(수탈)을 억제할 길이 거의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국민총생산액이 寄生(기생)적 엘리트에 집중되고 투자와 혁신이 위축된다. 아세머그루와 로빈슨교수는 이런 나라를 수탈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의 나라라고 부른다. 반면에 包括的(포괄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의 나라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투자와 노력을 권장한다. 포괄적 정부가 출현하면 큰 富(부)가 뒤따르게 된다.
“자비로운” 지도층의 존재가 후진국 경제발전의 열쇠
산업혁명의 源泉(원천)인 영국이 이러한 학설의 주요한 증거를 제공한다. 中世(중세)시대의 영국과 스페인 君主(군주)들의 絶對主義(절대주의)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우연에 의해서 차이가 크게 나게 되었다. 유럽의 세계탐험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의 王室(왕실)은 민간 사업가들에게 무역을 委任(위임)하였다. 반면에, 스페인은 해외통상을 국가가 장악하였다. 新大陸(신대륙)의 富(부)는 스페인의 독재를 鞏固(공고)히 하였지만 영국에서는 상인엘리트(merchant elite)를 양성하게 되었다.
이들 신흥 엘리트들은 1668년의 명예혁명에서 군주제도에 反하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도록 하는데 一助(일조)하면서 토지귀족들의 세력을 相殺(상쇄)하고 이로 인해 권력의 다원화를 확보하면서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렸다. 이와 같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용인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제도 안에서 영국인의 창의성과 재능의 자유로운 발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권력의 多元主義(다원주의,pluralism)는 앵글로 색슨 국가들(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도 轉移(전이)되고 뿌리를 내리면서 부유한 산업국가를 만들어 내었다.
수탈적 지배는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新대륙에서는 수탈이 권력 엘리트의 힘을 강화시켰다. 스페인의 수탈적 지배모델을 물려받은 南美에서는 혁명과 독립도 이러한 폭정으로부터의 탈출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독립이나 혁명을 통해 새로이 등장하는 지배세력은 舊 制度(구제도)의 혜택을 유지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에 진심으로 관심과 열정을 가지는 “자비로운” 지도층의 不在(부재)는 정치적 개혁과 창조적 파괴를 불가능하게 하고 이로 인해서 경제성장은 멈추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괄적 지배자는 혁신과 새로운 피를 권장한다. 이것이 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하여 기존의 산업을 동요시키고 정치 경제적 권력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분산은 대단찮은 사람도 계층상승이 가능케 하는 상향적 移動性(이동성, upward mobility)과 사회적 流動性(유동성, fluidity)을 높여서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러시아가 실패한 근본적 이유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자비로운” 지도자나 지도세력이 나타난 예가 거의 없다. 폭정과 빈곤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해방과 번영을 약속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지도자’나 ‘민족해방주의자’도 수탈적 제도를 堅持(견지)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국민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새로이 등장하는 지배엘리트들도 거의 예외 없이 권력과 富(부)를 독점하면서 민중의 삶을 향상을 위한 경제건설에는 微溫的(미온적)이거나 熱意(열의)가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西歐(서구) 선진국 20여 개 국가들-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포괄적 제도를 정착시켜서 선진 산업국의 건설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어 독립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및 남미의 나라들은 거의 모두 수탈적 국가로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동부유럽과 아시아 및 남미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수도 없이 많은 혁명을 겪었지만 여전히 서방 선진국과의 경제적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중 많은 나라는 아직도 極貧(극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17세기 개혁군주 피터 大帝(대제)이후 체제나 정권을 초월해서 서방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 해온 나라이지만 서방과의 경제적 격차는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러시아는 인구가 많고 국토가 광대하여 강대국이긴 하지만 한 번도 선진부국의 대열에 든 적이 없다.
러시아가 그 많은 개혁과 참혹한 공산주의 혁명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것은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수탈적 국가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경제발전을 이끄는 핵심적 추진동력인 진정으로 “자비로운” 지도자나 지도세력이 등장한 적이 없다. 帝政(제정) 러시아 시대나 공산주의 소련시대나 현재의 민주화 시대에도 러시아의 지배엘리트들은 국민을 하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자기보다 하인이 더 잘살고 더 부유해지도록 노력하는 주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억압과 부패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의 끈질긴 부패의 원인은 러시아 국민이 뇌물을 지불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 되어있기 때문이 아니고 국가가 아직도 국민을 국가의 주인(masters)이 아니라 封臣(봉신, vassals)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법집행관들의 업무는 국민에 대항해서 그들의 우두머리(국가원수)가 體現(체현, personified)하고 있는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푸틴(Putin)이 집권한 이후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장악한 前 KGB 要員(요원)들에게 특별히 발달 해 있다. 진실로 연방보안국의 고위관리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귀족계급-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家臣(가신)들을 거느린 領主(영주)들의 계급-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재 北 코카서스(Caucasus) 駐在(주재) 러시아 대표인 前 러시아 검찰총장은 푸틴 面前(면전)에서 “우리는 대통령 각하(sovereign)의 백성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민간(private hands)소유의 재산을 (수탈하여) 자신들의 소유로 재분배하는 것을 도둑질이 아니고 그들의 권리로 간주한다. (《The Economist》2008년 11월27일字)〉
한국의 국민소득은 2012년 현재 서방선진국인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더 많으며 수년 內에 일본이나 미국까지도 추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極東(극동)의 이름도 없던 극빈의 나라가 러시아가 300년 몸부림쳐도 달성하지 못한 경제 부국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5.16 군사혁명의 결과이다. 군사혁명이 일어난 1961년이 한국이 수탈적 나라에서 포괄적 나라로 轉移(전이)되기 시작한 分岐點(분기점)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軍人들, 거룩한 지도자
5.16혁명의 軍人들은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에 “진심으로 관심과 열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비로운”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국민의 빈곤탈출을 혁명의 주요 목표로 하였다는 것은 革命公約(혁명공약) ④항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貧困(빈곤)으로 부터 탈출하여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는 것은 인류 공통의 욕망이며 소망이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山海珍味(산해진미)를 베풀어 주는 지상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韓半島(한반도)는 70%이상이 山岳(산악)이고 홍수와 가뭄이 잦아서 지배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보릿고개”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되었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의 나라였다. 처절한 가난의 恨(한)이 민족의 恨이 되었던 나라였다. 그런데도 국가는 “가난은 나라도 구할 수 없다”라며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가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라는 조직이 있어야 국민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가난의 해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빈곤국가의 지도자와 지도층은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경제건설에 열의가 부족하거나 아예 국민을 수탈한다. 그래서 국가의 지도자와 지배세력이 경제건설에 진정한 열정을 쏟지 않기 때문에 민중은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장군을 비롯한 5·16의 군인들은 “보릿고개”의 悽絶(처절)한 恨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하여 (그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였던)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간주된다. 군사혁명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義(의)로운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念頭(염두)도 내지 못할 만큼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혁명군을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자비로운” 지도자였다. 어린 시절 가난의 지옥을 직접 겪으며 성장한 그는 한국민족 5,000년의 念願(염원)인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不撤晝夜(불철주야)로 분투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거룩한” 지도자였다. 그는 “잘 사는 것”을 國政(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하였다. 당시에 전국 坊坊曲曲(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던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그와 국민의 “잘 살아 보려는 恨”을 정확히 나타냈었다.
아마도 세계 역사상 이런 노래를 국민과 함께 부르며 부강한 나라 건설에 一路邁進(일로매진)한 지도자는 朴 대통령이 유일할 것이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朴 대통령의 悲願(비원)이 현실이 되어 오늘날 한국은 개도 너무 잘 먹어서 비만에 걸릴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朴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의 꿈은 한국으로 하여금 세계 7大 무역대국, 5大 공업국가,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奇績(기적)을 이루어 내었다. 그리하여 한국은 “근로 연령(working life) 以內(이내)에 개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富國(부국)이 된 유일한 나라로서 대부분의 貧國(빈국)에게 성장의 모델이 되었다.” (《The Economist》2011년 11월12일字)
그래서 민중의 배고픔의 恨을 풀어주기 위해 일어선 5.16혁명의 군인들은 위대하였고 “우리도 잘살아 보세”의 꿈을 이루기 위해 身命(신명)을 바친, 그들의 혁명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은 거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