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學俊 박사에 따르면, 스탈린은 모스크바로 호출된 두 사람에게 조선반도의 정세, 남조선의 정세, 북조선의 정세를 자세히 물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시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고 한다. <(소련인) 레베제프는 이 경우에 대비해 이미 김을 “꼼꼼하게 준비시켰었다>고 한다. 스탈린이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를 예측한 뒤 예상되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미리 마련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김에게 특히 군사문제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충고했었다고 한다. 그 결과 김일성의 대답은 대체로 충실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특히 “군사 및 전략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가장 완벽하게 내보일 수 있었다”라고 레베제프는 회상했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소련군에 호의적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스탈린의 배려, 그리고 소련군의 주둔 및 협조가 북한에서 여러 개혁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을 되풀이 함으로써 스탈린의 환심을 사려 했다.
박헌영의 통역을 맡았던 샤브신의 부인 샤브시나의 회상에 따르면, 스탈린의 지시에 대해 朴이 “인민들과 상의를 해봐야 한다'고 대답하자, 스탈린은 그 자리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인민이라니? 인민이야 땅을 가는 사람들이잖소. 결정은 우리가 해야지”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역사'는 이렇게 썼다.
<스탈린은 자신의 별장으로 김일성과 박헌영의 일행을 초청해 연회를 베푼 뒤 박을 모스크바에 며칠 머무르게 해 기업소들과 공장들을 견학시키라고 지시했다. 스탈린의 통역들의 회상에 따르면, 김은 “무서운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중급의 黨(당)간부처럼 보였으며, “아첨하는 어조로” 말했을 뿐만 아니라 내내 스탈린에게 동의하곤 했다. 다시 그들에 따르면, 김은 긴장해 있었고 언제라도 스탈린의 명령을 따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으며 스탈린은 김이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자신의 학생처럼 대하면서 강의하고 지시했다. 통역들에 따르면, “스탈린은 군사에 관한 깊은 지식으로 김을 감동시키면서 戰爭史(전쟁사)로부터 예들을 자주 인용했다. […] 김은 진심에서 우러난 감격과 환희를 나타내며 입을 벌린 채 그것을 들었다.” 레베제프에 따르면, “스탈린은 김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김은 열광적인 단어를 그치지 않고 반복했다. […] ‘어린 지도자’는 스탈린의 손에 의해서 그가 차지한 ‘영웅’의 권위가 ‘커다란 지도자’의 작은 손짓만으로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분명히 이해했다.>
여러 증언들을 종합하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아부하였고, 박헌영은 깐깐한 자세였던 듯하다. 김일성은 생전에 黃長燁 비서에게 자신이 스탈린에게 불려가 시험을 잘 쳐서 박헌영을 누르고 지도자로 뽑혔다고 자랑하더라고 한다.
한편 李承晩 대통령은 1954년 미국을 방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미국측이 韓日수교를 압박하자 '내가 살아 있는 한 수교는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화가 난 아이젠하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장을 나가자 李 대통령은 그의 등을 향하여 '저런 고얀 X이 있나, 저런'이라고 호통을 쳤다. 미국 대통령에게 호통 친 한국 대통령과 소련 독재자에게 아부한 북한 지도자의 차이가 오늘의 남북한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