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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유런, 부총통 선거비 대려 작품 2천 폭 남발

淸山에 2013. 4. 28. 17:38

 

 

 

 

 

위유런, 부총통 선거비 대려 작품 2천 폭 남발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19>

 

 

 

감찰원장 시절, 독서에 열중하는 위유런. 1956년 타이베이. [사진 김명호]  

 
1936년 12월, 국·공 양당은 연합에 성공했다. 목적은 단 하나, 일본과의 전쟁이었다. 8년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합작은 깨지지 않았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은 제헌을 서둘렀다. 정당 간의 이견을 좁히겠다며 정치협상회의를 소집했지만 허사였다.

 

국·공 간의 군사적 충돌이 그칠 날이 없었다. 무장 병력을 거느린 정당들이다 보니 당연했다. 미국에서 특사가 날아오고, 전국적으로 내전 반대운동이 벌어졌지만 누가 이기건 끝장을 보지 않으면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천하대란은 시간문제였다.

 

1946년 말, 국민당은 정통성 확보와 민심 수습에 나섰다. 공산당이 불참하건 말건 국민대회를 소집했다. 총통제와 5권(입법, 행정, 사법, 인사, 감찰) 분립을 근간으로 한 신헌법(新憲法)을 통과시켰다. 공산당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악수(惡手)였다.

 

1948년 5월, 정·부총통(正·副總統) 선거가 난징(南京)에서 열렸다. 심계원장(審計院長) 위유런(于右任·우우임)은 국·공 연합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부총통에 출마했다.

 

 손자들과 찍은 유일한 사진. 앞줄 오른쪽 첫째가 훗날 홍콩 중문대학 총장을 지내게 되는 류준이(劉遵義). 
 
총통은 장제스에게 필적할 만한 후보가 없었지만 부총통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국민대표들을 상대로 득표전이 치열했다.

선거는 돈이 들게 마련, 돈 봉투가 난무했다. 위유런은 수중에 돈이 없었다. 측근들은 속이 탔다. 위유런에게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대꾸가 없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지, 싫다는 건지 그 속을 알 길이 없었다. “얼굴이 수염투성이이다 보니 표정을 알 수가 없다”고 불평해대자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생 돈이 있어 본 적이 없다. 청년시절, 선생 노릇 잠깐 한 적이 있지만 붓과 화선지 사기에도 빠듯했다. 지금은 공무원 신분이다. 공적인 곳에 쓰느라 모아둔 돈이 없다. 기밀비를 타가라고 했지만 어디에 쓰라고 주는 돈인지를 몰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남들 주머니에 돈 많은 것을 보고 부러워한 적은 있다. 내 보따리 속에는 도장 두 개밖에 없어서 창피했다. 술이나 밥 얻어먹을 때마다 글씨 한 폭 쓰고 도장 두 개 찍어주면 다들 좋아했다. 왜들 그러는지 의아해한 적이 많다.” 측근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원장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북에 먹을 듬뿍 묻혀 몇 자 휘갈기면 됩니다. 한 자 한 자가 황금입니다.”

 

위유런은 고지식했다. 일주일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2천폭을 썼다. ‘만세(萬世) 동안 태평성세가 되기를 위해(爲萬世太平)’, 내용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똑같은 작품이 짧은 기간에, 그것도 같은 공간에서 남발하다 보니 가치가 없었다. 받는 사람들이 반가워하지 않았다.

 

장제스의 장남 장징궈(蔣經國·장경국)에게만은 예외였다. 남들은 다 써주면서 나는 왜 안 써주냐며 투정하자 다른 글귀를 선물했다. ‘이익을 따지려면 천하에 이익이 될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마땅하고, 명성을 구하려면 만세토록 남을 명예를 추구해야 한다(計利當計天下利, 求名應求萬世名)’. 평소 말은 안 했지만 위유런은 “아버지보다 훨씬 낫다”며 장징궈를 귀여워했다. 장징궈도 위유런에게 받은 글씨를 평생 보물 모시듯이 했다. 훗날 총통이 된 후에도 집무실 벽에 걸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보는 사람들마다 위유런의 장징궈에 대한 애정을 실감했다. 위유런은 낙선했다.

 

총통 당선 이튿날, 장제스는 위유런을 감찰원장에 임명했다. “저런 고집불통을 감찰원장에 앉혔다간 무슨 괴상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총통부를 감찰하겠다고 나서고도 남을 사람이다. 수천 년 역사를 보면 너무 청렴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적당히 부패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선정해 주기 바란다”며 재고를 요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제스는 듣지 않았다. “지금은 난세다. 태평성세라면 내가 고집 부릴 이유가 없다. 지금 국민당은 썩었다. 혁명정신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다. 망해도 진작 망했어야 할 정당이다. 거미줄 같은 정당성이나마 유지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