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자수 “인간에게 중요한 건 태양·바람·수면”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80>
쑹자수 일가는 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앞줄 왼쪽 앉은 차례로 아이링, 즈원, 즈안, 칭링. 뒷줄 왼쪽부터 즈안, 쑹자수, 니꾸이전, 메이링. 쑹씨 일가가 한자리에 모인 유일한 모습이다. [사진 김명호]
중일전쟁 시절 일본은 장제스(蔣介石·장개석), 쑹즈원(宋子文·송자문), 쿵샹시(孔祥熙·공상희), 천궈푸(陳果夫·진과부)·천리푸(陳立夫·진립부) 형제 등 네 집안을 중국 최대의 부패집단으로 매도했다. 전시 선전수단 치고는 효과가 있었다.
국·공 전쟁이 벌어지자 중공 선전부는 일본이 했던 것처럼 4대 가족을 관료자본의 상징이라고 몰아붙였다. 특히 마오쩌둥의 정치비서였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천보다(陳伯達·진백달)의 저서 중국의 4대가족(中國四大家族)은 국민당을 민중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천 년 역사상 청백리가 열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다 보니 권력은 부패가 따른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민족이었지만, 한동안 네 가족은 원성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이들 중 천씨 형제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쑹자수(宋嘉樹·송가수)의 아들과 사위였다. 쑨원까지 사위이다 보니, 얘깃거리를 많이 남길 수밖에 없었다.
쑹자수의 본명은 한자오준(韓敎準·한교준), 하이난다오(海南島) 원창(文昌)의 빈농 집안 자식이었다. 1864년에 태어났다고 하지만 본인도 정확한 나이를 몰랐다. 남들이 물으면 “부모가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제 나이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언제 태어났는지 엄마나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600여 년간 원창의 남자 애들은 철 들기가 무섭게 목선 타고 동남아로 건너가는 전통이 있었다. 해상 실크로드의 중간 지역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한자오준도 9살 때 형 따라 인도네시아로 갔다.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며 잡일 하던 중 쑹씨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양아버지는 미국에 가야 큰돈 번다며 보스턴에 차(茶)도매상을 열었다. 미국으로 가던 쑹자수는 풍랑을 만나 남극(南極)까지 흘러 들어갔다. 남극에 발 디딘 최초 중국인이 될 줄은 몰랐다. “세상일은 우연 투성이다. 전쟁과 정치가 특히 그렇다. 경제는 예외다. 우연이 거의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당시 미국에는 청나라 정부가 파견한 관비 유학생이 많았다. 명문학교에 다니는 비슷한 또래의 중국인들을 보자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다. 양아버지에게 편지 한 통 남기고 집을 나섰다. 보스턴항에는 정박해 있는 배가 많았다.
선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선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중국 소년을 경찰에 넘기지 않았다. 가벼운 일을 시키며 기독교를 신봉하라고 권했다. 배가 윌밍턴(Wilmington)에 도착하자 쑹자수를 데리고 교회로 직행했다.
1880년 11월 7일 쑹자수는 찰리 쑹, 후일 상하이 사람들이 쑹차리(宋査理·송사리)라고 부르게 되는 이상한 이름을 받았다. 세례명이라고 했다. 멀쩡한 이름 놔두고 뭔가 싶었지만 싫다 좋다 따질 형편이 못됐다. 2년 후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다닐 만했다. 두툼한 책을 달달 외우며 밤에는 인쇄 공장에 다녔다.
어릴 때부터 밭농사, 잡화상 점원, 수부(水夫)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보니 두 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았다. 노동이 즐겁고 아무리 피곤해도 잠 한숨 자면 거뜬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태양과 바람과 수면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일찍 터득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어딜 갔다 놔도 살 자신이 있었다. 고귀한 집안 출신의 중국 유학생들이 도저히 못하겠다는 일들을 도맡아 했다. 계급 관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항상 패기가 넘치고 유머가 풍부했지만 신학원 교수들은 쑹자수가 못마땅했다. “성경 구절은 모르는 구석이 없지만 신앙심이 약하고, 종교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차라리 중국에 가서 전도나 하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1886년 미국 성서공회는 쑹자수를 상하이로 파견했다. “매달 15달러 줄 테니 너희 나라에 가서 선교에 전념해라.” 선교는커녕 먹고 살기에도 부족한 액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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