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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원주민, 그들은 어떻게 쓰러져갔나..

淸山에 2012. 6. 22. 21:39

 

 

 

 

 

시베리아 원주민, 그들은 어떻게 쓰러져갔나..



러시아가 시베리아 공략을 시작한 것은 짜르 이반4세 때인 16세기 말이다. 그 때까지 그 땅의 주인은 한민족과 시원(始原)을 함께하는 북방계 몽골리언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대륙 서쪽 우랄산맥에서부터 동쪽으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이 광대한 동토에서 선사 이래 아무런 통치권력이나 문명의 간섭을 받지 않고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점점이 흩어져 자유롭게 살아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동진하면서 이들 120여개 부족공동체 20여만명의 운명은 격랑을 타야만 했다.

영국 에버딘대학 러시아학과장을 지낸 제임스 포사이스 박사가 1992년에 펴낸 <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 는 시베리아 원주민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았으며, 러시아에 복속된 후 그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최초로 세계에 알린 역작이라 할 만하다.

 
러시아의 동진은 1581년 이반4세의 지원 아래 코사크 용병들이 우랄산맥 동남부 타타르족 거점인 시비르를 공격해 점령하면서 본격화했다. 목적은 16~17세기 러시아에 거대한 부를 안겨준 모피였다. 당시 서유럽과 비잔틴제국 등에서 최고품으로 꼽혔던 시베리아 검은담비 모피의 가격은 사냥꾼 한 명이 검은담비 몇 마리만 잡아도 생애를 편안하게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북미의 서부개척이 '골드러시'였다면, 러시아의 시베리아 공략은 '모피열병'이었던 셈이다.


시비르 점령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첫걸음을 내디딘 러시아는 이후 코사크 용병을 앞세워 서부와 중부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의 오츠크해 연안까지, 이르는 곳마다 요새를 구축하며 종횡의 동진을 거듭했다.


과거 소련의 역사가들은 18세기까지 이어진 이 과정을 '고립되고 뒤떨어진 시베리아 원주민 공동체들을 발전해가는 러시아 국가경제 속에 편입시켜준 것'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저자는 지역별로 기껏해야 수백, 수천명씩 모여 사는 데 불과했던 원주민들이 거칠고 사나운 코사크 용병의 말발굽과 가혹한 모피착취체제 아래 힘없이 쓰러졌다고 고발한다.


원주민 수난사가 이 책의 모두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스키토ㆍ시베리안 원주민의 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 흥미롭게 읽힌다.

 

그 중에서도 투바 지역의 알타이족, 바이칼호 주변의 호리 부리야트족, 만주 및 흑룡강 지역의 여진족, 어웽키족, 나나이족 등 우리 민족과 혈연 및 문화적 연관성이 깊은 부족들의 '원초적' 생활모습은 희미한 기시감까지 느끼게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정재겸 봉우사상연구소 편집위원은 "많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사실 한민족의 시원 연구와 잇닿아 있는 사람들"이라며 "일례로 바이칼호 부리야트족의 영웅서사시인 '게세르 칸' 신화는 천신의 아들이 하강해 인간을 구제한다는 내용으로 단군신화와의 유사성에서 관심을 모아왔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책은 러시아의 동진 시대에 이은 19, 20세기 원주민의 역사 부분에서 극동 연해주 등지 한인들의 고단했던 생활과 스탈린 체제 하에서의 강제이주 등도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