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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미래가 걸린 최전선, 남극서 영그는 ‘장보고기지의 꿈’

淸山에 2012. 6. 16. 06:30

 

 

 

 

 

인류 미래가 걸린 최전선, 남극서 영그는 ‘장보고기지의 꿈’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

 

 

ㆍ2014년 완공…대륙 진출 첫발온난화·우주·자원 연구 수월
 
“재난 영화 <투모로우>를 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미래는 한마디로 충격적입니다. 남극 연구는 그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해답을 찾으려는 게 큰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연스레 사명감 같은 걸 강하게 느낍니다. 대한민국은 장보고기지로 그 발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장보고기지 현장 연구자인 이주한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41)은 장보고기지의 존재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남극은 인류 미래를 준비하는 최전선이다. 세계 2500여명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모인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지난해 발표한 ‘2011 유엔 미래보고서’의 15개 미래 도전과제 중 첫 번째가 ‘기후변화’다. 그 과제에 대한 해답이 남극에 있다. 남극은 지구상의 다른 지역과 끊임없이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면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스레 기후변화의 징후를 가장 빠르게 감지할 수 있다. 남극의 빙하는 과거 지구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미래를 예측할 자료가 어느 곳보다 많다. 운석이 많아 우주과학 연구에도 적합하다.

 


장보고기지 조감도. 2014년까지 남극 대륙 테라노바만 연안에 연면적 4458㎡, 15개 동 규모의 연구시설과

직원 거주시설 등이 지어진다. | 국토해양부 제공

 

 한국은 1988년 건설한 세종기지에 이어 남극대륙에 위치한 테라노바만 연안에 2014년까지 연면적 4458㎡, 15개 동 규모의 장보고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호주 호바트에서 열린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제출한 ‘포괄적 환경영향평가서’가 통과돼 국제사회의 최종 동의도 받았다. 벌써부터 미국과 독일, 뉴질랜드, 이탈리아 등은 장보고기지와의 공동연구를 제안할 정도다.

 

장보고기지는 위치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 각국의 남극기지들이 동남극에 몰려 있는 것과 달리 장보고기지는 동남극과 서남극의 경계 지점에 건설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덜 진행된 서남극 연구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장보고기지가 완공되면 한국은 남극에 2개 이상의 기지를 보유하는 9번째 국가 반열에 오른다. 무엇보다 남극대륙에 첫발을 디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세종기지의 경우 남위 62도에 위치한 킹조지섬에 있어 심도 있는 남극 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세종기지 건설 과정에서 행정적 지원을 했던 오정환 극지연구소 사업관리실장은 “세종기지 건설은 국위 선양이라는 정치적 이유에서 급하게 진행됐다”면서 “몇 차례 사전 조사만을 거쳐서 건설하기 쉬운 곳을 정해 불과 3~4개월 만에 급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남극대륙 언저리에서 연구를 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장보고기지는 남극점과 1700㎞ 떨어진 남위 74도 지점 남극대륙에 지어진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초속 60m의 강풍이 불어대는 극한의 땅이지만 그만큼 연구 가치는 크다.

 

남극 현지에서 보는 지구온난화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매년 장보고기지 예정지 현장 조사를 위해 남극을 찾는 이주한 선임연구원은 올해 초 뜻밖의 현상을 목격했다고 한다. 바닷물이 얼어 생기는 ‘해빙’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것만 녹고 육지와 붙은 것들은 녹지 않는데 육지와 붙은 해빙이 녹아서 떨어져 나가더라는 것이다. 이는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세종기지 인근 빙하는 1988년까지 매년 12m씩 녹았는데, 그 이후로는 70m씩 급격히 녹아내리고 있다.

 

장보고기지에서는 기후변화 과정을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한 대기구성물질 관측 활동을 하고, 빙하 연구를 통해 과거 수십만년 동안의 기후변화 과정 연구도 한다. 또 테라노바만 주변부와 심해 지역의 퇴적물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 과거 해수면, 해양 순환, 심층수 형성 등의 변화를 규명하는 연구도 한다. 이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해수면 변동에 남극 빙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46억년 전 지구 탄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운석 탐사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남극의 운석은 빙하 속 낮은 온도에서 보존돼 있다 빙하가 움직이면서 산맥과 부딪치는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그런 점에서 장보고기지 예정지는 운석을 발견할 수 있는 최적의 지형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연구팀은 이탈리아와 협력해 운석 탐사에 나설 계획이다.

 

남극 연구의 본질적 가치는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한 것이지만, 경제적인 기대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남극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 같은 자원이 매장돼 있다. 세종기지 인근 지역만 해도 한국이 300~400년가량 쓸 수 있는 가스층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남극조약 당사국들이 2048년까지 남극 자원 개발을 금지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전에 언제든 ‘영토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도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남극을 탐험해왔다는 ‘역사’를 앞세우고, 남미 국가들과 호주는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을 내세우며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2개의 상주 기지를 보유하게 되는 것은 향후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다지는 셈이다. 남극에서의 영토권은 미래 자원 부국으로 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미래 자원이 아니더라도 남극은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극저온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통해 부동액 같은 결빙 방지 물질을 추출하는가 하면, 강한 자외선을 이겨내는 동물을 연구해 새로운 자외선 차단제를 개발하기도 한다. 남극은 피부를 가리지 않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자외선이 강렬하다.

 

관건은 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지 설계와 기술력이다. 장보고기지 예정지인 테라노바만의 바람은 초속 60m를 넘는 초강력 태풍급이다. 한국에 닥친 최악의 태풍인 1959년 ‘사라’의 바람 속도가 초속 45m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극의 바람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보고기지는 모든 방향의 바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삼각형으로 설계됐다. 바람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건물 외부에는 골프공처럼 홈을 만들기로 했다. 영하 40도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건축 기법을 도입해 벽과 유리창은 각각 2중과 5중으로 만든다. 가스배관은 2중 단열장치와 함께 열선을 깔기로 했다. 장보고기지에는 겨울철에 15명, 여름철에는 60명까지 상주할 수 있다.

 

1년 중 건설 가능한 기간이 65일에 불과한 현지 기후를 감안해 국내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모듈을 제작하고 현지에서는 조립만 하는 신공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현재 모듈을 제작 중이며 오는 8월에는 인천 송도지구에서 조립 시험을 거칠 예정이다. 10월 초에는 이 모듈을 싣고 현지로 떠나 12월부터 본격적인 조립 작업을 시작한다.

 

장보고기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 국내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다. 2004년부터 1080억원을 들여 개발해 2009년 말 운항을 시작한 아라온호는 두께 1m의 얼음을 시속 5.6㎞로 깨면서 나아간다. 중간 보급 없이 3만7000㎞를 운항할 수 있고 극한의 날씨를 대비해 갑판 전체에는 열선이 깔려 있다. 장보고기지가 거점이라면 아라온호는 직접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 장비인 셈이다.

 

아라온호 개발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2003년 전재규 세종기지 연구원이 고무보트를 타고 동료를 구하려다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이후 쇄빙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아라온호는 이 같은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듯 얼음에 갇힌 러시아 어선 ‘스파르타호’를 구출하기도 했다.

 

이주한 선임연구원은 “한 외국 연구원이 아라온호의 스파르타호 구출 작업을 듣고는 ‘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전재규 연구원의 사고 얘기를 듣고는 말을 잇지 못하더라”면서 “남극 연구진은 모두 전재규 연구원의 희생정신과 과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