伍子胥(오자서)의 지나친 복수심은 그를 파멸로 몰고간다. 趙甲濟 중국의 戰國시대 楚(초) 나라 사람 伍子胥(오자서)는 平王(평왕)이 모함에 속아 충신인 아버지와 형을 죽이자 탈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복수를 꾀한다. 군사적 천재인 그를 중용한 건 吳 나라였다. 그는 吳王(闔廬=합려)을 도와 楚를 쳐 이기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쳤다. 棺(관)에서 屍身(시신)을 끌어내 300번이나 매질을 하였다. 산중으로 피나 갔던 오자서의 옛 친구 申包胥(신포서)가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당신의 복수는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내가 들으니 '사람의 數가 많으면 한때는 하늘을 이길 수 있지만 하늘이 한번 결심하면 능히 사람을 깨뜨린다'고 했다. 너는 원래 평왕의 신하로 몸소 그를 섬겼는데, 지금 평왕의 屍身을 욕보였으니, 이보다 더 天理(천리)에 어긋난 일이 또 어디에 있나?" 오자서는 使者(사자)에게 일렀다. "부디 申包胥에게 잘 전하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갈팡질팡 걸어가며 앞뒤를 분간할 겨를이 없다'라고." <人衆者勝天(인중자승천) 天定亦能破人(천정역능파인) 今子故平王之臣(금자고평왕지신) 親北面而事之(친북면이사지) 今至於僇死人(금지어륙사인) 此豈其無天道之極乎(차개기무천도지극호) 伍子胥曰(오자서왈) 爲我謝申包胥(위아사신포서) 吾日暮途遠(오일모도원) 吾故倒行而逆施之(오고도행이역시지)> 오왕 합려는 越(월) 나라를 치다가 죽었다. 왕위를 계승한 아들 夫差(부차)는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臥薪=와신) 복수심을 길렀다. 그는 드디어 越을 쳐 왕 句踐(구천)을 회계산에서 포위하였다. 구천은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마음이 흔들리는 부차에게 오자서가 諫(간)했다. "越王은 고통을 잘 견디는 자입니다. 지금 그를 없애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후회하게 되옵니다." 夫差는 듣지 않고 越王 구천을 살려준다. 부차는 베푼 善心만 믿고 吳越同舟(오월동주)의 평화를 기대하였으나 구천은 회계산의 굴욕을 잊지 않았다. 그는 쓸개를 핥으며(嘗膽=상담) 복수를 노린다. 와신상담의 故事(고사)이다. 오왕 부차는 월왕이 이를 갈고 있는 것도 모른 채 覇者(패자)가 되려는 허영심에 사로잡혀 모험적인 외교정책을 편다. 오자서는 越을 쳐 없애버리는 게 먼저라고 건의하다가 부차의 눈밖에 나게 된다. 부차는 비록 敵이었지만 楚 평왕의 屍身에 오자서가 자행한 만행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틈을 탄 역적의 모함에 속아넘어간 부차는 오자서에 칼을 내려 自刃(자인)하도록 한다. 그는 "죽거든 내 눈알을 뽑아내어 東門 위에 걸어두어라. 越軍이 쳐들어와서 吳 나라를 없애는 것을 보고싶다"고 유언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부차는 오자서의 屍身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물에 던져버렸다. 오자서가 예언한 대로 부차는 월왕 구천의 손에 죽는다. 史記의 列傳에서 오자서를 호의적으로 소개한 司馬遷(사마천)은 이렇게 평했다. <원한의 해독은 참으로 처참하다. 임금으로서도 신하에게 원한을 품게 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同列의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종북세력의 파멸을 재촉한 사건으로 기록될 4.11 총선 때 종북좌파 세력의 수뇌부는 오자서처럼 초조하였지 않을까?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김정일의 죽음으로 자신들의 殘命(잔명)이 길지 않다는 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갈팡질팡 걸어가며 앞뒤를 분간할 겨를이 없다'는 심정으로 복수를 서두르다가 대형 사고를 낸 것이 아닐까? 머리 수만 믿고 天理를 거슬렀다가 하늘=民心=역사가 한번 크게 결심을 하니 그들을 깨뜨린 것이다. 오늘 從北의 몸통 민통당이 증오심으로 무장한 이해찬을 대표로 뽑았다. '원한의 해독은 참으로 처참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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