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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고장, 경북 봉화의 찬란한 5월

淸山에 2012. 5. 26. 18:28

 

 

 

 

 

정자의 고장, 경북 봉화의 찬란한 5월

[중앙일보]

 

 


명필 김생이 10년간 붓글씨 갈고닦은 동굴 … “저도 여기서 10년간 기사 쓰기 수련할랍니다”

 


청량사의 부속 암자인 응진전 앞에 서서 청량산 주변 산세를 둘러보고 있다. 청량산은 겉보기엔 쉽게 오를 수 있어 보이나 정작 올라보면 경사가 만만치 않다. 혹자는 청량산의 이런 모습을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선비 모습에 견주기도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봉하마을’이 아니라 ‘봉화’입니다. 문화부 나들이의 행선지가 결정되고 나서 부서원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 간다고?”였습니다. 창피하지만 고백합니다. 지리에 어두운 저는 짐가방을 꾸리고 봉화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곳 어디쯤에 노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행선지를 공지한 정강현 기자의 발음 탓으로 돌리고 싶어질 뿐입니다.

 

 북으로는 강원도와 경계를 서고, 동서로는 울진과 영주를 면한 경북 봉화군. 이곳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외지인의 상처를 받지 않고 옛 이끼까지 곱게 간직한 살아 있는 민속촌”이라고 말한 곳입니다. 그는 봉화가 세상에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며 저술을 포기했지요. 봉화는 그만큼 관광지로는 부각되지 못한 곳입니다. 유 교수께 죄송하지만 조심스레 말씀드려 봅니다. 봉화의 초여름은 찬란했습니다. 우리끼리 누리기에 아까울 정도로 말입니다.

 


 

 

 

 

9:00 봉화로 출발 … ‘의외로 가까운데’

 

 

높이 20m가 넘는 금강소나무(일명 춘양목)가 하늘로 쭉쭉 뻗은 춘양면 국립수목원 조성 예정지(위). 2년 뒤 이 주변에는 백두산 호랑이가 방사된다. 석천정사에서 민들레 홀씨를 훅 불어 보는 여유도 부렸다.


 볼록 나온 배가 부각될지언정 샛노란 티셔츠로 한껏 멋을 낸 박정호 부장이 미니버스 앞에서 손을 흔든다. 아, 정말 떠나는구나. 몇 년 만에 수도권을 벗어나는 야유회인가. 18일 8명의 문화부 기자가 한 보따리 짐을 들고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사옥 앞에 모였다. 최신곡으로 가득 채운 MP3부터 활자가 큰 소설책·뻥튀기·쥐포·목베개까지 겉모양새는 미국 가는 비행기에 오를 기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단 3시간 만에 봉화군에 도착했다. 그마저도 서울을 빠져나오느라 한 시간을 허비했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내달리니 금방이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로 2시간40분 거리라고 하니 이제 ‘경북 내륙의 오지’라는 별명은 떼어 버려도 좋을 것 같다. 낙동강의 첫 물길 중 하나라는 ‘봉화의 한강’ 내성천 앞에 내리자 청량한 공기가 콧구멍을 뚫고 들어온다. 면적은 서울의 두 배인데 인구는 3만5000명이라니, 서울이 얼마나 사람 살기 괴롭고 번잡스러운 곳인지 알겠다.

 

12:30~13:30 오래 먹으면 불로장수

 

 

거북바위가 정자를 업고 가는 모양의 ‘청암정’이다. 연못을 건너 정자로 이어지는 돌다리는 성인이 걷기엔 그 폭이 좁은데 탁한 속세에서 맑은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길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부러 좁게 만들었다.


 공기가 좋아 그런지 허기도 금방 진다. 내성천을 보며 환호작약하던 것도 잠시.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는 송이돌솥밥. 태백산 자락에서 자란 봉화송이버섯은 수분 함량이 적고 향이 뛰어나 최상품으로 친다. 워낙 귀하고 비싼 식품이라 읍내에도 전문점은 세 곳뿐이란다.

 

 그중 한 곳인 솔봉이식당(054-673-1090)에서 송이돌솥밥(1만5000원)을 시켰다. 돌솥 뚜껑을 열자 부장 티셔츠 색깔을 닮은 송이들이 밥 위에 곱게 누워 있다. 서울에서 먹던 버섯의 향을 열 배쯤 증폭시킨 것 같다. “정력에 좋은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권혁재 기자는 9월에 열릴 봉화송이축제에 올 기세로 한 돌솥을 다 비웠다. 달고 짜고 얼큰한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다소 허전한 맛이지만 『동의학사전』에 ‘오래 먹으면 불로장수하며 신선이 되는 신선초’로 기록돼 있다고 하니 일단 먹고 볼 일이다. 송이산채비빔밥·송이소등심·송이전골·송이술까지 메뉴판만 봐도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

 

13:30~14:30 석천계곡과 석천정사

 

 

송이로 정력 충전도 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탐방이다. 봉화는 ‘정자의 고장’이다. 참고로 정자(精子)가 아니고 정자(亭子)다. 군내에만 정자가 1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옛날 방귀깨나 뀌던 양반들의 고장이었음이 새삼 느껴진다. 우리는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을 향해 내성천 물길을 따라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15분쯤 걸었을까. 기암괴석에 ‘靑霞洞天(청하동천)’이란 흘림체 글씨가 새겨 있다. 때는 조선, 귀신 울음소리가 들려 선비들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 글자를 새겼더니 귀신 소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갑자기 뒤에서 “악! 악!” 계곡을 울리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귀신이라도 나타났나 싶었는데 송지혜 기자의 손 위로 왕거미가 떨어졌단다. 송 기자는 “생전 처음 본 거미 모양이었다”고 했는데 귀신인지 의심해 볼 만하다.

 

 드디어 석천계곡이다. 겹겹이 포개 놓은 산들이 얼음장 같은 계곡물을 토해 낸다. 참, 운치도 있지. 계곡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석천정사가 걸려 있다. 16세기 충재 권벌(1487~1547)의 큰아들인 권동보가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붕 밑에 걸린 ‘溪山含輝(계산함휘·계곡과 산이 빛을 머금고 있다)’란 현판이 예나 지금이나 이곳이 그대로임을 알려 준다. 졸졸 계곡물에 산들바람까지 불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마루에 누웠으면 싶다. 이 경치에 공부라니,

학문을 위한 선조들의 자제력은 실로 대단한 것?

 

 

 

 

 

 

14:30~15:30 달실마을 ‘충재 선생의 지조’

 

 

봉화가 자랑하는 음식이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송이버섯을 밥 위에 얹은 송이돌솥밥(위 왼쪽), 내성천에서 잡은 고기로 끓인 매운탕(아래 왼쪽), 각종 버섯과 채소를 담뿍 넣은 송이전골(위 오른쪽), 양념 맛이 환상인 더덕구이(아래 오른쪽).


 석천정사를 지었다는 충재 선생의 고택으로 갈 시간이다. 도보로 15분쯤 걷자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 같다(金鷄抱卵·금계포란)’고 하여 지어진 달실마을이 나타난다(달실은 경상도 방언으로 닭 모양의 마을이란 뜻이다). 푸른 산이 기와집들을 뺑 둘러싸고 있으니 ‘알을 품은 산’이 맞다. 석천계곡부터 석천정사, 달실마을까지 이 근방은 사적 가치가 높아 명승 60호로 지정돼 있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이곳은 충재 선생이 기묘사화(1519·중종 14년) 때 낙향해 터를 잡았다. 그의 지조는 참으로 대쪽 같았던 터라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권력을 휘두를 때 “그만 내려가시라”고 고했던 분이다.

 

 충재 선생이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청암정에 이르자 거북이 모양의 큰 바위 위에 정자 한 채가 그림같이 서 있다. 쪽빛 연못이 바위를 감싸니 거북이가 정자를 등에 업고 연못을 헤엄치는 형상이다. 고향을 지키며 종가의 명맥을 잇고 있는 충재 선생의 18대손 권종목(69)씨는 “이곳에서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음란서생’ ‘스캔들’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권씨 가문의 유물을 모아 놓은 박물관(054-674-0963)을 도는데 문화재 담당 이영희 기자의 눈매가 슬프다. 이 기자는 “야유회가 아니라 일하러 온 것 같다”며 수첩을 꺼냈다.

 

 여기서 잠깐. 권씨 가문의 총명함은 그 여종까지 미쳤는데, 바로 시인 설죽이다. 충재 선생의 손자 권래의 여종인 설죽은 어깨너머로 한자를 깨쳤다. 당시 양반들은 딸에게도 글을 못 배우게 했는데 설죽이 얼마나 똑똑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주인과 함께 명산대천을 유랑하며 양반 사대부들과 시를 교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총 168수의 주옥 같은 한시를 남겼다. 여기 ‘이른 봄(早春)’이란 시를 읊어 본다. “봄비 내리자 배꽃이 하얗게 피고/ 봄바람 불자 버들개지 노랗게 피었네/ 누가 피리를 부는지/ 매화향기 흩날리누나(春雨梨花白/東風柳色黃/誰家吹玉笛/搖揚落梅香).”

 

15:30~17:00 오록마을 ‘살아 있는 부처’

 

 

오록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들. 가운데가 ‘오록 김 마담’ 김진남씨.
 이번엔 풍산 김씨의 집성촌인 오록마을이다. 영주 부석사와 닮은꼴인 축서사를 찍고 고택 체험을 하러 들른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운명 같은 만남을 하고 만다. 바로 봉화의 여인, 오록 김 마담이었다. 야트막한 돌담길을 걷다가 오록1리 노인회관을 지날 때였다.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들을 본 박 부장이 갑자기 오지랖을 부려 본다. “할머니, 저희 서울에서 왔어요.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주세요.” 웃는 얼굴이 그대로 주름이 돼 버린 할머니들은 “아이고, 학생들인가벼?”라며 반갑게 맞아 준다.

 

 “자자, 오록 김 마담이 타 온 커피 한 번 드셔 봐요.” 다섯 할머니 중 막내라 일을 도맡아한다는 김진남(68) 할머니다. 배고프겠다며 뒤 창고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리더니 ‘센베과자’를 내온다. 일행은 할머니의 윤허하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김씨 가문의 옛날옛적 이야기를 듣는다. 조용한 마을이 북적거리자 지나가던 이장님도 발걸음을 멈춘다. 이장님은 “자식들이 모두 서울로 가서 이 동네 30가구 중 가장 젊은 분이 58세”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신문에 나가면 우리 마을에 사람이 많이 오겠네. 내일부터 미나리랑 산나물 좀 뜯어다 손님 맞을 준비해야겠다”며 부담을 주신다.

 

 할머니들과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회관을 나서는데, 돌담 위에 부처의 두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은 ‘불두화’가 수국처럼 피었다. 자잘한 꽃차례들이 할머니 얼굴의 주름 같다. 부처가 살아 있다면 저 모습이겠다.

 

17:00~18:00 국립수목원 조성 예정지

 

 아, 볼 건 많고 시간은 없다. 특히 2014년 개장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지는 꼭 들러야 할 터. 봉화는 태백산·청옥산·청량산 등 높은 산이 많아 ‘경북의 오지’로 불리지 않았던가. 춘양면 서벽리 금강소나무숲에 들어서자 높이 20m가 넘는 소나무가 하늘을 보고 쭉쭉 뻗어 있다. 일련 번호가 적힌 소나무가 무엇인가 했더니 문화재 재건용 목재로 쓸 것들을 체크해 놓은 것이었다. 정강현 기자는 언제 문화재가 될지 모를 소나무를 부둥켜안고 정기를 받는 시늉을 한다. 이런, 동그란 얼굴 탓에 곰 한 마리가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것 같다. 정곰현 기자, 진정한 물아일체다.

 

 그런데 생각보다 숲이 울창하지 않다. 숲해설가이자 영주국유림관리소 이상을 보호팀장은 “워낙 목재가 좋다 보니 일제의 산림 수탈과 근대의 남벌 타깃이 됐다. 그나마 토질이 좋아 소나무가 금방 자라 다행이다”고 했다. 2년 후 수목원이 개장하면 이곳에 백두산 호랑이 열여섯 마리가 방사된다. 부디 그 옛날 ‘숲의 왕좌’ 자리를 되찾기를.

 

이틀째 9:00~12:00 청량산 등산과 김생굴

 

 지난밤 찜질방형 민박집인 인하원(054-672-8289)에서 오리고기(1마리 3만5000원)로 배를 가득 채웠는데도 아침이 되니 금세 배고프다. 특히나 아랫목에서 자느라 불타는 고구마가 됐던 하현옥·이영희 기자는 목이 탈대로 탔다(바닥이 매우 뜨거울 수 있으니 취향에 따라 온도 조절을 부탁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끓인 북엇국(1인분 6000원)을 한 사발 먹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자, 이제 봉화여행의 화룡점정, 클라이맥스 청량산(높이 870m) 등반이다. 봉화 사람들은 슬리퍼를 신고도 오른다고 했는데, 이거 뭐 주변 등산객을 둘러보니 히말라야에 오를 기세다. 평소 마라톤으로 체력을 단련해 온 강기헌 기자는 날다람쥐처럼 휙휙 앞서 나간다. 경사가 심한 계단 코스에 들어서자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라며 하 기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를 본 권혁재 기자, “어느 때보다 예뻐 보인다”며 때아닌 칭찬을 한다.

 

 산 중턱 김생굴에 이르니 재미있는 설화가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는 이렇다. 통일신라의 서예가인 김생이 이 굴에서 9년간 명필 수련을 하고 하산하려는데 청량봉녀가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불을 끄고 내 길쌈 솜씨와 네 서예 솜씨를 겨뤄 보자.” 김생은 자신만만하게 “도전!”을 외쳤으나 불을 켜 보니 글씨가 삐뚤빼뚤하더란다. 깨달음을 얻은 김생은 1년을 더 연마해 10년을 채운 뒤 하산해 명필이 됐다. 한석봉 일화와 비슷하다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정곰현 기자가 중대 발표를 한다. “먼저들 내려가세요. 10년간 기사 수련하고 내려가겠습니다.”

 

12:00~13:00 청량사 찍고 하산

 

 청량산 중턱에 오롯이 앉아 있는 청량사는 매년 10월 산사음악회가 열릴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게다가 28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색색 연등이 열 맞춰 걸려 있어 운치를 더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사진이 되고 시가 되는 곳이었는데, 하물며 전통찻집의 이름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었다. 절에서 무료로 주는 된장차(된장에 쑥을 넣어 묽게 우린 차)까지 얻어 마신 뒤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산을 오를 땐 안 보이던 야생화며 기암괴석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청량산이 세 번째라는 권혁재 기자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아름다운 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청량산 매니어였던 퇴계 이황 선생은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는 시조를 남겼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이에 질세라 지난해 중앙일보 노조 노래경연 1등 송지혜 기자가 읊조린다. “가슴에 청량산을 안고 가고 싶다. 산 천지가 내 안에 들어왔다.”

 

14:00 서울로 출발 ‘안녕! 봉화’

 

 봉화를 떠나기 직전 청량산 기슭에 까치소리식당(054-673-9777)에서 송이전골로 배를 채웠다. 1박2일 동안 내내 가이드를 해 줬던 이 고장 출신의 문화관광해설사 방유수씨는 "봉화는 초코파이다”라고 했다. 인정의 마을이란 뜻이다. 원래 안동에 속했던 봉화는 조선시대까지 양반 마을이었다. 양반의 몰락과 함께 이곳도 쇠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근대 들어 영주나 울진, 안동이 관광지로 각광받았던 반면 봉화는 산세가 험해 그러지 못했다. 경남 김해에 있는 ‘봉하마을’과 헷갈려하는 경우도 그래서다.

 

 봉화를 떠나면서, 그동안 이곳이 관광지로 주목받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악한 간판이 달린 펜션이 없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도 없고, 다음 관광객을 받기 위해 서둘러 내치는 민박집 주인도 없으니. 만약 어딘가에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봉화이겠다 싶다. 


 

 

 

 

 

함께 간 기자들이 뽑은 ‘감동 포인트’

 

‘1박2일 봉화편’은 Saturday팀 대신 문화부 기자들이 갔습니다. 나이요? 20~50대. 취향과 개성도 다르고 밥을 먹을 때도, 경치를 볼 때도 평은 천차만별이죠. 여행지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베스트 포인트? 다 달라요. 그래서 골랐습니다. 내 맘대로 베스트!


박정호 부장 : 신필(神筆) 김생과 청량봉녀(縫女)의 한판 대결, 한석봉이 ‘형님’ 하며 울고 가겠네.

권혁재 : 산행에 지친 나그네에게 차 한 잔 무료로 나눠 주는 청량산 산꾼의 집, 청량하다.

하현옥 : 축서사. 눈앞은 일망무제, 등 뒤론 신록과 녹음의 향연.

이영희 : 달실마을 충재기념관의 과거시험 전국 2등 답안지, 수백 년 전 엄친아의 포스가!!

정강현 : 청량산 기슭을 굽어보던 기암(奇巖)들의 행렬! 맑고(淸) 서늘한(凉) 산에서, 잠시, 혼미했다.


현지에서 건진 팁 팁 팁

 

고택스테이 봉화에는 종가 고택이 많아 이곳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달실마을·오록마을·해저마을 등이 ‘고택스테이’를 진행 중이다. 달실마을에서는 유교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봉화군청 문화관광과(054-679-6341)로 문의하면 연결시켜 준다. 기자들이 갔던 인정 많은 오록마을은 김무섭 이장(010-4523-2145)에게 연락해 보자.

 

문화관광해설사 현재 봉화군에는 13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 20명 단위의 단체관람객에게는 무료로 해설을 제공한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마을이라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

 

숲해설사 춘양면 수목원 조성지에도 숲해설사가 있다. 숲의 역사와 금강소나무의 특징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숲해설 안내소 번호는 054-635-4253. 수목원 조성지에서 산림욕을 즐기려면 나무의 성장이 왕성한 초여름과 가을 사이가 좋다. 시간대는 바람이 적은 날 오전 10시~오후 2시가 적당하다.

 

산꾼의 집 ‘오고 가고 아픈 다리. 약차 한 잔 그냥 들고 쉬었다가 가시구려’. 청량산을 등반하다 목이 마르면 청량사 근처 산꾼의 집을 빠뜨리지 말자. 달마도 명장인 이대실씨의 거처인 이곳에서 여러 한약재를 넣고 끓인 건강차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 054-672-8516.

 

송이축제·은어축제 은어축제는 매년 7월 말~8월 초에 열린다. 관광객이 하천에서 직접 은어를 잡는 은어잡이 체험행사부터 은어 숯불구이 장터, 민물고기 전시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매년 9월 말에 열리는 송이축제에는 송이먹거리장터가 열리고 송이산 현장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억지춘양’의 유래 강제로 숙청을 들어야 했던 ‘억지춘향’이 아니다. 1995년 영동선 철도가 생길 때 원래 직선으로 설계된 노선을 억지로 봉화군 춘양면이 걸리도록 U자로 끌어들인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춘양면 서벽리가 고향이었던 정문흠 전 국회의원이 억지로 노선을 바꿨다고 해서 ‘억지춘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