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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품은 비경, 이대로 물에 잠기나

淸山에 2012. 5. 25. 06:24

 

 

 

 


지리산이 품은 비경, 이대로 물에 잠기나

 

함양 |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ㆍ문정댐 건설로 수몰 위기 처한 ‘용유담’ 르포
 
경남 함양군 휴천면 운서마을에서 나고 자란 강학기씨(55)는 평생 벼농사와 감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최근 강씨는 마을을 지나는 임천강 상류에 댐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자신의 논밭이 있던 바로 옆의 터가 수몰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강을 벗삼아 살아왔는데…댐이 생기고 나면 평생 짓던 농사를 망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임천강에 추진 중인 문정홍수조절댐(일명 지리산댐)이 주민들의 터전을 앗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다. 임천강 상류에 있는 바위 연못 용유담(龍遊潭)도 수몰 위기에 처해 있다. 옛날 용이 뛰놀던 깊은 연못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은 용유담은 조선시대 현감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가파른 산 사이에 깊숙이 위치한 연못은 주변의 바위와 자갈 무더기가 빚어내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용유담 인근 운서마을에 사는 주민 손영일씨가 용유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서 문정댐이 건설될 경우 수몰되는 지역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 황평우 소장 제공

 

 ▲ 작년 12월 명승 지정 예고
 국토부 요청에 보류 판정
 마을엔 찬·반 현수막 걸려
 반달곰 이동통로도 잃게 돼
 
지리산 용유담을 지난 22일 찾았다. 함양군에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속을 차로 20분간 달려 도착했다. 울창한 산속에 위치한 연못은 회백색 돌무더기로 둘러싸인 채 힘차게 물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돌무더기 곳곳에는 작은 자갈이 부딪쳐 생긴 원형의 구멍이 움푹 패어 있었다. 주민들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검은색 둥근 돌을 ‘용의 배설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용유담 주변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은 아름다운 경치와는 대조를 이뤘다. 문정댐 건설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갈린 구호들이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국토해양부는 함양군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문정댐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해발 288m 지점에 건설되는 문정댐은 높이만 약 140m에 달한다. 이 댐이 건설되면 용유담 수면 위 약 70~80m까지 물이 차오른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용유담을 지난해 12월 명승지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용이 남긴 흔적을 연상시키는 화강암 암반과 배설물을 연상시키는 바위들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나타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댐 건설 때문에 명승지 지정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국토부가 문화재청에 명승지 지정 보류 요청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댐 건설을 위해 간이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 중”이라며 “문화재청이 용유담을 명승지정 예고해 댐 계획과 문화재 지정이 상충된다는 내용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는 국토부의 의견서가 접수된 뒤 명승지정 보류 판정을 내렸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예산을 들여 용역작업을 통해 명승지정 예고된 곳을 댐 건설이라는 이유로 물속에 사장시키려는 수자원공사와 국토부의 발상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생태적 가치도 높은 지역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08년 용유담 일대가 멸종위기종이자 환경부에서 종복원사업을 실시하는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이동통로라는 보고서를 냈다. 용유담이 수몰되면 반달가슴곰은 이동통로를 잃어 지리산 일대를 방황하게 될 판이다. 멸종위기종인 수달도 용유담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댐이 세워지면 수달의 집도 물에 잠기게 된다.
 
용유담의 운명은 다음달로 예정된 정부의 명승지정 해제 여부 결정에 따라 판가름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