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와중에도 잊지 않고… 1952년 6주갑 행사 열어 - 임진왜란 이후 60년마다 돌아오는 임진년마다 전국 단위 추모행사와 9공신의 가문에서 사제사(賜祭祀)가 각각 열린다. 올해도 다음달 2일 추모행사가 경북 안동에서 열릴 예정. 사진은 1952년 5월 서울 충무로광장에서 열린 ‘임진란 6주갑 기념 국난극복 시민대회’ 모습. 이승만 대통령, 신익희 국회의장의 기념사와 존 무초 미국대사, 왕둥웬 중화민국(대만) 대사의 축사가 있었다. /국가기록원 제공
그로부터 60년이 지나 다시 임진(壬辰)년을 맞은 올해 6월 2일, 국난 극복의 정신을 계승한 '임진란 추모행사'가 안동에서 다시 열린다. 목숨을 던져 국가의 위기를 구했던 공신(功臣)과 의병(義兵)들을 기리는 이 행사는 임진왜란(1592년) 발발 이후 지난 420년간 임진년이 돌아오는 60년마다 열렸다. 올해는 7주갑(60년×7=420년)이 된다. 6·25의 폐허를 딛고 기적 같은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이루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누군가가 이날을 60년간이나 잊지 않고 기억해 온 것이다.
이 행사에 대해선 3주갑이 되던 1772년(영조 48년) '국가 주도의 공식 기념의식이 있었다'는 공식 기록이 가장 오랜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선 1·2주갑 때도 비슷한 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52년 5월 24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열린 서애 류성룡 선생 사제사를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보내준 제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제공
장구한 전통의 이 행사는 올해 명맥이 끊길 뻔했다. 사람들의 기억도 희미해졌고, 국가 주도로 행사를 계속할 법적 근거도 없었다. 행사를 살려낸 사람들은 충무공 이순신, 문충공 류성룡 등 공신의 후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6월 운현궁 이로당에 모여 행사를 이어가는 사단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우리는 대한민국 유공자를 위한 기관이므로, 독립운동 이전의 일은 다루지 않는다"며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후손들은 수차례 논의를 거치고 3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난 2010년 사단법인 '임진란 정신문화선양회(이하 선양회)' 설립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선양회는 국비 7억원과 경북도비 2억1000만원, 안동시비 4억9000만원 등 14억원의 예산을 따내 오는 6월 2일 안동시에서 '임진란 7주갑 기념 문화·학술 대제전'을 개최한다.
임진왜란 9공신에다 곽재우 장군, 사명당 유정, 한음 이덕형 등 공을 세운 의병장과 문·무신 96명을 찾아내 그 후손들도 참석하도록 했다.
류성룡의 후손인 류한성(73) 고려대 명예교수(행사 집행위원장)는 "임진왜란은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 낸 역사적 사건이었다"며 "그 후손들을 최대한 많이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하회마을 충효당에서 서애 선생의 사제사를 봉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사제관을 맡는다. 이어 참석한 공신 96명의 가문 추모기 행렬의 시가행진이 이어지고, 안동 탈춤공원 야외무대에서는 육군 제2작전사령부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기념식이 거행된다. 기념 공연으로 창작 오페라 '아! 징비록(懲毖錄)'도 무대에 오른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임진왜란 때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의 역사적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와 공신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임진란 순회특별기획전'도 개최할 예정이다. 내년 2월까지 임진란 공신집과 연구총서도 발간한다. 서애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공신들의 제사는 가문별로 9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지역 단체장이 사제관을 맡아 지내기로 했다.
이종남(76·전 감사원장) 선양회장은 "임진란 주갑 행사는 예로부터 왕명으로 추진됐던 역사적 정당성이 있는 사업"이라며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 국가가 기념하는 행사로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8주갑 행사는 60년 뒤인 2072년에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