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혁명 51주년, 박정희 대통령이 그립다!
최성령(회원)
5.16혁명 51주년을 맞이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그가 서거한 지 벌써 33년이 지났습니다. 5천년의 운명적인 절대빈곤을 해결하고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산주의와 전선(戰線)을 맞댄 동족이면서 원수인 저 북한의 위협을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막아낸 위대한 우리 아버지. 그는 우리보다 가난했습니다. 대통령이면서 해묵은 세이코 손목시계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낡은 혁대를 찬 가난뱅이였습니다. 대통령이면서 양복바지를 수선집에 맡겨 고쳐 입고 집무실 에어콘은 항상 꺼져 있었으며 그것은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만 켰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가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시절 초등학생 큰 딸 근혜가 의장 찝차를 타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것을 안 박 대통령이 근혜에게 한 말 그 차가 네 차냐? 그 차가 애비 차냐? 그 차는 나라 차다 하면서 야단을 쳤답니다. 고향 선산에 사시는 그의 형님 박동희가 지역 유지의 부탁을 받고 대통령인 동생에게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며 그를 추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잘 알았습니다 해 놓고는 선산 경찰서장에 명하여 형님댁에 경찰 보초를 배치해 외부인사의 출입을 감시케 했답니다. 어느 해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와 물난리가 났을 때 박 대통령은 잠 못이루고 비 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날을 꼬박 세웠더랍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회고담입니다. 또한 어느 해 가뭄으로 벼가 말라 죽을 때 기적 같은 비가 내려 논에 물이 고이자 박 대통령은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경기도 어느 시골마을로 내려가 물 고인 논에 털퍽 주저앉아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울었답니다. 당시 운전기사의 증언입니다. 미국으로부터 M16 자동소총을 구입 후 그쪽 담당자가 사례비를 들고 박 대통령을 찾아와 돈 봉투를 전하자 박 대통령은 그것을 돌려주며 이것으로 총을 더 주시오 했더랍니다. 나라는 가난하고 있는 건 사람 뿐. 공장을 짓고 도로를 내고 댐을 건설하려 해도 돈이 없어 독일에 차관을 얻는 댓가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송했습니다. 광부는 막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간호사는 시체를 닦는 일을 마다 않고 밤 낮을 모르고 일을 해 조국에 돈을 보내 왔습니다.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 했을 때 애국가를 부르다가 대통령과 그들은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합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육영수 여사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혹자는 그를 독재자라고 합니다. 독재자가 남긴 무슨 재물이 있습니까? 독재자가 남긴 집 한 칸이 있습니까? 민주화도 좋지만 우선 먹을 것이 더 급했던 시절이 아닙니까? 민주화 된 지금은 살기가 편해졌고 햇볕정책으로 북한 동포의 삶은 나아졌으며 그들이 만든 미사일과 핵폭탄은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길바닥에 드러누어 사사건건 반대하던 전직 어느 대통령. 그는 노벨평화상도 받았지만 그는 저 하늘에서 그 때의 일을 잘 했다고 자부할런지요? 그는 컨벤션센타 도서관 평화재단 등 그를 기리는 기념물과 재단 그리고 동상이 많은데 나라를 절대빈곤에서 구원하고 국가의 안보를 지켜 낸 민족 영도자를 아직도 독재자로 평가하는 이 나라는 과연 국가가 맞습니까? 33년 전 박 대통령의 장례식을 오늘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연도의 시민들이 한결같이 우는 모습에 저도 그만 그들과 함께 울고 또 울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33년을 참았다 터진 울음이었습니다. 다부진 얼굴에 카랑카랑 하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쳐 그의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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