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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日학교 입학하며 혈서까지 쓴건 일종의 유행

淸山에 2012. 4. 3. 05:53

 

 


 
 
 
"박정희, 日학교 입학하며 혈서까지 쓴건 일종의 유행"
[중앙일보]

 

 


박정희가 권력을 추구한 건, 가난의 기억 때문
이정식 경희대 석좌교수
영어판 『박정희 평전』 출간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가 『박정희 평전』
(영어명 Park Chunghee)을 냈다. 지난해 11월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현대사 특강에 참석한 이 교수의 모습. 그의 뒤 배경은 이 교수가 강연자료로 쓴 사진이다.
6·25전쟁 발발 일주일 전 미 국무장관 덜레스(안경 쓴 외국인)
일행이 의정부 북방 38선 접경에서 북쪽을 살피고 있다.
[사진 경희대]
 
이정식(81)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가 미국 아마존닷컴(amazon.com)에서 『박정희 평전(사진)』(영어명 Park Chunghee)을 출간했다. 박정희(1917~79) 전 대통령이 태어나던 20세기 초반부터 1961년 5·16군사쿠데타 발생까지의
현대사를 ‘인간 박정희’를 중심으로 재조명했다.
 
 이 교수는 역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로 70년대 이미 세계 학계에 필명을 날렸다.
주변의 권유로 4년 전부터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한국·중국·일본에 남아 있는 박 전
대통령 관련 장소도 답사했다. 일주일 후에는 전자책도 나올 예정이다.
 
 -총선·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책이 나왔다.
 
 

 “난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다. 몇 년간 질질 끌다가 이제 편집이 끝났다. 나는 박 전 대통령에게 신세 진 일이 하나도 없다. 1950년대부터 미국에 거주하며 오히려 유신에 반대했다. 박 대통령 비판으로 유명한 잡지 ‘사상계(思想界)’ 미국 통신원도 지냈다. 유신이 시작한 72년부터 9년 동안 한국을 찾지도 않았다.”
 
 -어떤 점에 역점을 두었나.
 
 “그의 부친 박성빈의 시대로부터 5·16쿠데타까지의 한국과 주변국 역사를 살펴보고, 어떤 상황 또는 이벤트가 인간 박정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점에 주목했다.”
 
 -책의 부제인 ‘From Poverty to Power(가난에서 권력으로)’는 어떤 의미인지.
 
 “가난이 권력을 추구하게 만들었다는 말인데, 박정희는 빈곤이 자기의 스승이었다고 했다. 산꼭대기에 놓인 그의 생가를 가보면 그 말 뜻을 직감할 수 있다. 부친 박성빈은 양반집 장남으로 과거를 준비하다 동학에 가입해 사형을 당할 뻔했다. 그 일로 가문에서 쫓겨났고 처가의 묘지기로 전락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머리가 좋아 대구사범에 입학하지만 식대를 못내 매년 40여 일씩 결석했다. 초등학교에서 1등 하던 학생이 대구사범 70명 중 69등으로 졸업한 배경이다. 이런 가난의 기억이 그의 앞날을 좌우했다.”
 
 -대구사범 졸업 후 보통학교 교사가 돼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만주군 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다녔을까.
 
 “어릴 때 꿈이 장교가 되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나폴레옹과 이순신 전기도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다 대구사범 동창들이 하나 둘씩 일본유학을 떠나는데 자신은 가난한 처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군관학교에 가면 장교도 되고 고등교육도 받는 일석이조로
생각했다고 본다.”
 
 -민족을 배신한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만군 사관학교에 입학한 해가 1940년이다. 당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일본의 동양제패를 의심하는 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비밀문서를 보면 일본에 비협조적이던 한국인 대부분이 협조적으로 변했다고 되어 있는 시기다. 23세의 박정희 역시 이런 분위기에 잠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입학원서와 함께 혈서까지 썼는데.
 
 “1939년과 1940년 당시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한 혈서 제출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혈서를 쓴 한국 청년이 39년 첫 해엔 45명, 다음 해 40년에는 168명이었다. 그의 군관학교 입학이 혈서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일본을 적대시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그의 부친이 동학에 연루돼 묘지기로 연명하는 형편에서, 조선왕조가 계속됐다면 박정희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일본은 그에게 교육을 시켜주었고, 장교가 될 기회를 주었다.”
 
 -박 전 대통령을 상당히 옹호하고 있다.
 
 “그렇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청년 박정희의 심정과 행동을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옳았다 글렀다 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나 역시 일제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 당시 인물에 대한 이해가 우선 앞서는 건 사실이다.”
 
 -남로당원으로 활동한 경력은.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의지해 왔던 셋째 형이 광복 직후 미군 치하의 경찰 총에 죽은 이후였다. 당시 한국 사람 대부분은 미군정에 실망했고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형의 친구였던 이재복 목사가 남로당 군사책임자로 있으면서 박정희 대위를 끌어드렸다. 미군정하에서 남로당은 불법단체가 아닌 합법단체였다.”
 
 -61년 쿠데타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는 당시 올 것이 왔다는 심정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너무나 노쇠했기에 주변의 인물들에게 좌지우지 되었고, 4·19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 지도자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회는 더할 나위 없이 혼란했다. 장준하씨와 김준엽 교수가 주도하던 잡지 ‘사상계 ’가 5·16을 지지한 건 그런 배경에서였다.”
 
 
◆이정식=1931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한국 독립운동사와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 33년 만주로 이주해 성장기를 보냈고, 48년 북한으로 귀환했다가 1·4후퇴 때 남하했다.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 UC버클리 대학원에서 ‘운명적 스승’ 스칼라피노 교수를 만났다. 『한국의 민족주의운동사』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와 함께 이승만·서재필·여운형 등 주요 현대사 인물 평전을 펴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친은 산꼭대기 묘지기로 전락했다

전병근 기자
이메일bkjeon@chosun.com
 

 
[영문판 '박정희 평전' 쓴 美펜실베이니아大 명예교수 이정식]

 

 


"우등생 박정희, 졸업은 꼴찌… 양반집 장남인 부친은 묘지기
수수께끼 너무 많은 인물… 내면 형성과정 밀착 추적
사회모순에 대한 유년기 분노, 경제발전으로 이어진 건 행운"
 "박정희 치하에서 어용 학자가 되기 싫어 미국으로 온 내가
그의 평전을 쓰다니 참 아이러니지요."
 
한국 현대정치사 연구의 대가인 이정식(81)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석좌교수)가 박정희 평전을 냈다. 영문으로 된 357쪽 '박정희:가난에서 권력으로(From Poverty to Power)'는 지난달 29일 아마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본지와의 이메일·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출생부터 5·16 쿠데타 때까지 인간 박정희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으며 그의 인생관·역사관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박정희에 대해 "그의 (근대화) 성취는 높이 평가하지만 독재는 혐오한다"고 전제하고, 책을 통해 1961년 그의 쿠데타와 근대화 노력을 낳은 사고체계를 다각도로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의 영감을 일찍이 사회 모순과 가난을 겪어야 했던 어린 시절과 교육에서 찾았다. 박정희가 쿠데타 2년 후인 1963년 "반만년 역사는 퇴화와 조잡과 침체의 연속사였다. (…) 이 모든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는 차라리 불살라버려야 옳은 것"이라고 한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봤다. 그는 "그의 어린 시절 분노가 씨앗이 되어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21세기 한국에 행운이었다"며 그의 목표는 잘못된 과거 청산뿐만 아니라 구체제가 길러온 민족성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썼다.
―책을 내게 된 계기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독립운동, 공산주의운동, 만주 항일운동 등을 연구하면서 서재필·김규식·이승만·여운형 등의 전기도 집필했다. 박정희에 대해선 지금까지 여러분이 귀중한 자료를 많이 발굴해놨지만 그의 생애에는 아직도 수수께끼가 너무나 많다. 양반집 장남이었던 박정희의 부친이 선산군 상모동 산꼭대기 묘지기로 전락한 것부터가 그렇다. 구미보통학교 일등생이었던 박정희는 왜 대구사범 졸업생 70명 중 69등을 했나? 왜 친일파라는 규탄을 받았고, 빨갱이로 몰려 고문당하고 종신형을 받아야 했나…. 나는 새로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그의 생가, 3년간 교사로 일했던 문경, 1년 이상 지낸 내몽골 바로 밑 열하, 일본 사관학교 자리도 가봤다. 그러다 보니 4년이 걸렸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책은 박정희의 내면을 조명했다. 옹호론으로 비칠 수 있는데.
"나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했다. 동시에 박정희가 닉슨의 데탕트정책과 북한의 대결정책 틈바구니에서 탈출구를 모색한 것이라고 했다가 박정희 옹호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육영수 여사 추도사를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적도 있다. 그래도 인간 박정희를 이해하려면 성장 과정과 내면 동기를 알아야 한다. 나는 박정희뿐만 아니라 이승만·김일성도 같은 안목으로 연구를 해 왔다. 그게 학자의 길이다. 많은 비판과 비난도 각오한다. 지금은 비난받아도 50년 후 독자들이 어떻게 평가해줄까 하는 것이 관심사다."
 
―박정희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내가 박정희의 폭정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아내는 '당신이라면 더 심한 폭정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랬을지 모른다. 인간을 평가하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나는 평가보다 자료 수집과 정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선거를 앞두고 출간된 시점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좀 더 일찍 원고를 마무리했으면 오해를 면했을 텐데 질질 끌다 보니 세월이 지나가 버렸다. 오해를 받더라도 할 수 없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같은 수정주의 사관으로 공부한 386세대는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그런 시각이 전교조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전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래 인간이란 먼저 받은 지식을 기본으로 삼게 마련이고 웬만한 일 없이는 그걸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이제는 종교나 신앙이 돼버린 듯하다."
 
―한국 정치인들을 오래 연구해왔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이라고 보나?
"이승만이 축적했던 지식과 국제적 감각, 박정희가 가졌던 기백과 추진력, 여기에 더해 온유하면서 카리스마를 한몸에 담은 리더가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완벽한 사람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비전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장단점을 잘 알고, 단점을 메워 줄 수 있는 훌륭한 보필자들을 이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