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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6 혁명으로 이룬 한국 근대화는 우리 民族史의 기적”

淸山에 2011. 5. 17. 16:40

 

   

 

 

   
 
“5ㆍ16 혁명으로 이룬 한국 근대화는 우리 民族史의 기적”
 
“李承晩 대통령부터 현재까지 독재는 한 번도 없었다”
趙成豪(조갑제닷컴)
 
 

 

 

 

초원(대금연주) 

 


 

 

5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충정로1가 문화일보홀에서 열린 ‘제172회 趙甲濟 기자의 現代史 강좌’에서 趙甲濟(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5ㆍ16 혁명 50주년을 맞아 ‘박정희는 독재자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趙甲濟 대표는 5ㆍ16 혁명 이후 국민정서에 대해 말했다.
 
 “5ㆍ16 혁명 직후 美 방첩대에서 서울 시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와 1991년 美 하버드 대학에서 修學(수학)하던 서진규 씨의 여론조사에서 약 60%의 사람들이 5ㆍ16 혁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張俊河(장준하) 씨는 월간《사상계》에 ‘5ㆍ16 혁명과 민족의 진로’라는 글을 써 혁명의 당위성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5ㆍ16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趙 대표는 “5ㆍ16 혁명 주도세력은 민족주의를 기치로 내건 이집트의 나세르, 터키의 케말 파샤 혁명을 가슴에 새겼다. 그들은 역사의 大勢(대세)를 타 民心(민심)과 軍心(군심)이 얻을 수 있었고 결국 피를 흘리지 않고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明治유신,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중국의 文化대혁명은 많은 피를 흘린 혁명이었다. 우리나라는 最少(최소)의 희생으로 最大(최대)의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趙 대표는 “5ㆍ16 혁명은 방법론적으로는 쿠데타라고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론 혁명이 맞다. 우리 민족사 2000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趙 대표는 “1952년부터 1960년까지 약 1만 1000여명의 軍 장교들이 미국 등지에서 유학을 했다. 이들은 선진국에서 각종 군사학ㆍ학문ㆍ기술 등을 배워 국가 엘리트로 養成(양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이 유학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와 부정과 부패를 목격하고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改革의지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趙 대표는 ‘안보’, ‘복지’, ‘자유’가 민주주의의 세 가지 조건이라며 “張勉(장면) 정부는 자유는 보장해 주었지만, 안보가 흔들렸고 국민들을 먹이고 살리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4ㆍ19 혁명과 5ㆍ16 혁명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4ㆍ19 혁명 당시 국민들이 원했던 ‘인간답게 살자’는 염원을 5ㆍ16 혁명으로 실천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朴正熙를 비롯한 5ㆍ16 혁명 주도세력은 지역ㆍ계급의 이기주의를 뛰어넘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며 國益(국익)을 위해 헌신했던 국가엘리트”라고 평가했다.
 
 趙 대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9.5%였다며 “한국은 富의 분배가 가장 잘 이뤄진 국가 중 하나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도성장은 균형성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朴正熙는 독재자인가”라는 질문에 “1963년 5대, 1967년 6대, 1971년 7대 대통령에 直選制(직선제)로 당선되었던 사람이 박정희이므로 독재자라 할 수 없다. 그가 강조했던 것 역시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했다. 趙 대표는 “維新(유신) 이후 朴 대통령의 통치를 독재라고 할 수 있지만 독재의 질이 김정일, 스탈린 등과 다르므로 ‘권위주의 정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여느 독재자와 달리 政敵(정적)을 제거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군사정권’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는다.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대통령 모두 전역 한 뒤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고 반박했다.
 
 趙 대표는 “반드시 독재가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그 나라의 역사적ㆍ문화적ㆍ사회적 조건이 안될 때 독재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朴正熙 대통령 시절 독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전체적 방향은 민주화로 향해 나아갔다. 그 당시도 선거의 자유, 언론의 자유, 私有재산권은 보장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李承晩 대통령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독재는 한 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날 강좌는 약 400여명이 넘는 청중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다음 강좌는 5월23일 월요일 오후 2시 문화일보홀에서 ‘좌파는 왜 분열과 선동의 선수들인가?’라는 주제로 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