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72) 사이렌과 종 울리며 캠페인 벌인 '시(時)의 기념일'
김영철 발행일 : 2011.10.26 / 여론/독자 A3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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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10일 정오, 경성부 내 모든 교회와 사찰에선 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렸다. 공장에선 긴 기적을, 관공서에선 '싸이렌'을 울렸다. 일본에선 이미 치른 경험이 있지만, 조선에선 처음인 '시간' 관념을 드높이기 위한 '시의 기념일' 행사를 알리는 소리였다.
조선일보 1921년 6월 8일자 사회면 머리기사는 일본에서 치르는 '시간 존중을 대선전'하는 취지를, "장래에 일층 시간을 존중히 하고 정각을 려행(勵行)코자 함"이라고 밝히면서, 행사 계획과 내용을 자세히 전했다. 특히 '선전문'에 실린 시간관념의 '5대 요건' 전문을 싣고 "아침에 긔침하는 시간을 일정하게 정하고, 식사를 마치는 시간을 정하야 반다시 려행하며 매일 운동 시간을 정하야 둘 일.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근무와 휴식 시간을 구별하고, 약속한 시간을 준수할 일.… 시간 준수에는 정확한 시계가 필요하니, 정확한 시간을 맞추려면 오포(午砲·정오에 울리는 대포 소리)로 맞추거나, 전신국 정거장 시계를 표준할 일" 등을 소개했다. 특히 '오포 소리는 삼정(三町·약 327m) 거리에 1초씩 지연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기도는 이 선전문을 '전차와 자동차 등에 첨부하고, 배달하는 각 신문 지면에도 끼워' 돌리도록 했다.(6월 9일자) 경성부는 처음 '시간 선전'을 한 뒤 "자금 이후로는 매년 행하야, 아조 경성에 년중행사로 삼을 의향"임을 밝혔다.(6월 10일자) 이후 '시간 기념일'은 연중행사로 치러졌고,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삐라' 배부와 정확한 시간을 맞추도록 시보나 사이렌을 울리고, 사람 통행이 많은 곳에서 통행자의 시계를 무료로 조절해 주거나 수선해주는 '써-비스' 행사가 단골로 치러졌다.(1933년 6월 6일자)
오랫동안 '닭 울음 소리'나 '태양의 위치', 달의 뜨고 지는 '때'로 읽혔던 조선의 '시간'은,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4월 1일부터 칙령 제5호에 따라 동경 127도30분을 '대한국 표준시'로 정하면서, 비로소 '세계 시간' 속에 편입됐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총독부는 "1912년 1월 1일부터 한국 표준시를 일본 동경 표준시(동경 135도)에 맞춰 오전 11시 30분을 정오로 개정"했다.
'시 기념일'까지 만들어 "시간에도 소비절약의 정신을 집중하자!"(1939년 6월 7일자) "시간을 아껴 써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1939년 6월 11일자) "시간을 직힙시다, 일분의 착오로 승패의 길" 같은 훈화나 구호가 강조되면서, '시간은 금'을 넘어 '시간은 생명'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1940년 6월 11일자) 조선의 두루뭉술한 시간은 점점 정확한 기계 시계에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광복 9년 뒤인 1954년 4월 21일 춘분을 기해 시간을 30분 늦추면서 '대한국 표준시'를 되찾기도 했으나 '5·16' 후 군사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8월 10일 0시를 기해 표준시를 동경 표준시로 바꿨다. "경도 15도에 따라 한 시간 차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한 국제 관례에 따른 것"으로,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