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모험이라도 떠나는 양 카메라 들고 왔었더랬지"
김효인 기자 이메일hyoink@chosun.com
61년 만에 한국 찾은 영국참전용사 존 토마스씨 "여기 이 아이 둘은 모두 킴(kim)이었어. 이 아이들을 먹이는 게(feed)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지."
26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 설머리에서 열린 '임진강 격전 제6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존 토마스(80)씨는 품에서 한국 소년들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웃음 지었다.
그는 "61년 만에 처음 사진 찍은 장소에 돌아왔다"면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낡은 사진들을 펼쳐놓았다.
토마스씨는 1951년 10월 19살의 나이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다른 모든 병사들처럼 나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14살부터 군에 입대해 생활해 오던 토마스씨는 참전 당시 아버지의 유품인 낡은 캐논 카메라 한 대와 필름 100여장을 챙겼다. 그는 "그땐 아직 어린애였다. 모험이라도 떠나는 줄 알고 카메라를 가져왔으니까. 한 달도 안 돼 그게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왼쪽부터)임진각 격전 6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존 토마스, 6·25전쟁 당시 수로를 뚫는 기계를 배경으로 촬영한 20대의 토마스. /존 토마스 제공
"주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같이 부치려고 사진을 찍었다"는 그의 말처럼 토마스씨가 찍은 사진에는 전쟁의 참상보다 전쟁 이면의 삶이 담겨 있다. 부대를 관리하던 한국인 '하우스보이(House boy)'들의 모습, 위문공연을 온 영국 코미디언들의 모습,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을 축하하며 운동경기를 하는 모습 등. 토마스씨는 사진 이면에 등장인물과 날짜를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그는 막사 인근에서 동료들과 장난치는 사진을 가리키며 "이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맥주가 정말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맥주 탈환 작전'을 벌였다. 누군가가 맥주라며 가지고 왔는데, 아주 재미있는(funny) 맛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막걸리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공병으로 일했던 그는 주로 수로를 파고 다리를 놓는 등 전장의 후방에서 6.25를 겪었다. 6.25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후크 고지 전투' 등에 참가했던 그는 24개월간 한국에서 생활하며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전쟁은 끔찍했지만 어린 소년들이 계속 정신 차릴 수 있게 해줬던 것은 동료들과의 교류였다"면서 "한국 소년들도 우리를 웃음 짓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왼쪽부터)엘리자베스여왕 대관식을 축하하며 운동경기를 하는 모습, 유명 영국 코미디언들이 영국 파병 군인을 위해 위문공연을 하는 모습. /존 토마스 제공
귀국 후 토마스씨는 4년간 피부병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몸도 아팠지만, 지금까지도 가끔 악몽을 꿀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컸다"고 했다.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손주 다섯을 볼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그의 쌍둥이 손주들이 한국을 여행했다.
그는 "애들이 돌아와서 나에게, '할아버지가 말하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완전히 달라요. 한 번 보러 가보세요'라고 했다"며 6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토마스씨는 "한국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정말로 내가 처음 와서 본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다른 나라다.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44명의 영국군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이 참석해 설마리 전투 전사자들의 넋을 기렸으며, 현지 학생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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