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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러 가기 전에 정리할 것들

淸山에 2012. 4. 3. 17:21

 


 
 
 
투표하러 가기 전에 정리할 것들

김대중 고문
 

 
'대한민국 지키려면 어떻게?' 인물보다 '左·右이념' 중요
정치 반신불수 만들지 않도록 12월 대선 투표도 염두에 두길
기회주의·부패·패거리 정치, 이제는 걷어내 자존심 지켜야
 
 김대중 고문 4·11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정리할 단계에 왔다. 정리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우리는 이번 총선에 우리 지역에서 누가 출마했는지를 잠시 잊자. '인물' 위주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다. 이번 총선은 철저히 진영(陣營)의 논리로 치러지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정당 간의 싸움 같지만 내용은 보수 대 진보, 우파 대 좌파의 대결이다. 따라서 '인물'보다는 그 인물이 보수성향이냐 진보성향이냐가 중요하다. 자기가 보수성향이라면 보수 쪽 후보를 찍어야 하고, 진보 또는 좌파 쪽 성향이라고 생각한다면 좌파 후보를 찍으라는 것이다.
 
 같은 성향의 후보가 복수라면 그때는 '인물'과 '경력'을 고려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진영의 논리 못지않게 집단논리도 강세다. 우리 국회가 국회의원 개개인의 신념과 철학에 따라 표결하는 원칙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뽑은 지역출신 국회의원은 한 개의 숫자나 조직의 거수기에 불과하다. 정치집단의 이념과 노선, 정책과 철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풍토이기에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념'이고 인물이 아니라 정당이다.
 
대북정책, 안보문제에 관한 현격한 시각차이와 접근방식이 노정된 상황에서 유권자는 이념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친북(親北)·종북(從北)이 공공연하게 활동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나라'의 존재다. 헌법정신에 따른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어느 쪽이 충실한가를 따지는 것이 유권자 개개인의 몫이다. 보수·우파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 보수를 찍고, 진보·좌파의 방식이
좋다면 그에 따르는 것이다.
 
둘째로 투표소에 가기 전에 결정할 것은 7개월 뒤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정당을, 어느 후보를 선택할 것이냐를 총선과 연계시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국회는 국회고,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즉, "나는 국회의원으로는 어느 당의 ○이 좋지만 대통령은 반대당에서 나왔으면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견제이론을 내세워 국회를 한 정당이 장악했으면 청와대는 다른 정당에 주는 것을 주장한다.
 
대선이 먼저 치러지는 경우라면 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실제로 과거 우리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정치인은 이번 두 차례의 선거를 두고 "우리가 대선에서 이기려면 총선에서 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극히 위험한 사고다. 구(舊)한나라당이 과반이 넘는 170여석을 갖고도 여당의 의지가
실린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한 채 야당에 끌려다닌 것이 지난 4년 우리
국회의 지리멸렬상이었다.
 
'대통령 때리기'가 국회의 '유행'인 상황에서 소수당 대통령은 사실상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집단논리와 진영논리가 절대적인 오늘의 정치풍토로 미루어 다수당의 지원이 없는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나라는 정치 효율 면에서 그야말로 반신불수다.
 
그래서 이번 국회의원 투표소에 들어설 때 오는 12월의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지도 염두에 두어 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식물대통령으로 만들지 않고 우리 정치를 반신불수로 만들지 않으려거든 국회와 대통령을 일치시켜야 한다. 우리는 '여소야대'를 하기에는
너무 투쟁적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그 나라의 정치는 그 국민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말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이번 총선은 우리의 자화상이 된다. 그래서 우리 자화상을 업그레이드시킬 기회다.
 
우리는 지난 세월 우리 정치와 우리 국회를 수없이 질타하고 끊임없이 저주해왔다. 모두가 부나비처럼 정치에 이끌려가면서도 너도나도 정치를 동네북처럼 두들겨 팬 이율배반의
구조 속에 살았다. 우리 정치수준이 그랬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정치를 겪을 만큼 겪었고, 욕할 만큼 욕해왔다.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먹고살 만큼 됐고 정치문화 면에서도 보고 배울 만큼 배웠다. 우리는 이제 우리도 선진화에 걸맞은 정치를 할 때가 됐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회주의 정치, 부패 정치, 패거리 정치, 최루탄 국회, 쇠망치 국회, 점거농성 정치, 지역사업 따내기 정치, 앞잡이 정치 같은 구시대 정치환경과 풍토를 걷어낼 때가 됐다. 이것은 국회의원이나 정치권을 욕해서 시정될 일이 아니다. 유권자가, 국민이 투표로 엄하게 다스려서 그런 부정적 요소들이 발 못 붙이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