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뇌에서 척수로 내려가는 부위에서 실처럼 가는 프리모관(바늘로 들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프리모관은 투명하고 가늘어 염색하기 전에는 보기 어렵다.
“40년 넘게 면역학을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림프관에 또 다른 관(管)이 있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한 뒤 너무나 놀랐어요.”
미국 인디애나 의대에서 세계적인 면역학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다 1999년 국내에 영입된 국립암센터 권병세(64) 박사의 말이다.
림프관은 그의 ‘연구 마당’이나 다름없었기에 그 놀라움이 더 컸다.
그가 본 것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經絡)의 실체였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국가석학’이기도 하다.
토끼의 뇌구조와 프리모 관찰 부위
프리모 관에 있는 초소형 세포 ‘산알(왼쪽)’. 두 개로 분열하는 과정(오른쪽). 일반 세포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경락 연구를 10년째 해오고 있는 서울대 소광섭(융합기술원 수석연구원) 명예교수 등 국내 연구자들은 경락을 ‘프리모(Primo)’라고 다시 이름을 짓고,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 오고 있었다.
권 박사는 “국내 경락 연구자들이 그렇게 대단한 연구 성과를 올려놓고도 이름이 덜 알려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바람에 제대로 조명을 못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인체에는 혈액이 도는 혈액순환계와 면역세포의 순환계인 림프계가 있다. 경락의 실체가 국제적으로 공인되면 제3의 순환계가 된다. 그러면 세계 의학교과서와 질병치료 방법을 다시 써야 한다.
권 박사를 비롯한 국내 경락 연구자들은 13일 대덕연구단지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소광섭 명예교수, 삼성서울병원 박정의 교수, 성균관대 서민아 교수, 이병천 KAIST 초빙교수, 한국한의학연구원 류연희 박사 등이 발표에 나선다.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락=60년 대 초 전 세계 과학계는 북한에서 나온 획기적인 연구 성과에 발칵 뒤집혔다.
당시 북한 경락연구소 김봉한(평양의대 교수) 소장이 1961~65년 혈액순환계와 림프계에 이어 제3의 순환계 ‘경락계(經絡系)’가 있다는 논문 5편을 잇따라 발표했다. AFP통신은 62년 2월 13일 “영국의 윌리엄 하비(W. Harvey)가 17세기 초 혈액순환계(혈관계)를 처음 발견한 것에 비견할 만한 엄청난 연구 성과”라고 전 세계에 타전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그 논문을 받아 들고 확인 작업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김봉한 교수가 그 방법을 기술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 교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돼 버렸다.
그 이후 2002년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소광섭(현재 66세) 교수가 경락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40년 가까이 관련 논문은 한 편도 발표되지 않았다. 소 교수가 2008년까지 잇따라 연구 성과를 발표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물리학을 하던 과학자가 왠 경락이냐’며 시큰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