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손길
님이 사랑은 강철을 녹이는 물보다도 뜨거운데
님이 손길은 너무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서늘한 것도 보고 찬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님의 손길같이 찬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국화 핀 서리 아침에 떨어진 잎새를 울리고
오는, 가을 바람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달이 작고 별에 뽈나는 밤에, 얼음 위에 쌓인 눈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나의 작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은
님의 손길이 아니고는 끄는 수가 없습니다
님이 손길의 온도를 측량할만한 한란계는
나의 가슴밖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님의 사랑은 불보다도 뜨거워서, 근심 (山)을 태우고 한(恨)바다를 말리는데
님의 손길은 너무도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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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얼굴
님의 얼굴이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어여쁘다는 말은 인간 사람의 얼굴에 대한 말이요
님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을 만치 어여쁜 까닭입니다
자연은 어찌하여 그렇게 어여쁜 님을 인간으로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연의 가운데에는 님의 짝이 될 만한 무엇이 없는
까닭입니다
님의 입술 같은 연꽃이 어디 있어요
님의 살빛 같은 백옥이 어디 있어요
봄 호수에서 님의 눈결 같은 잔물결을 보았습니까
아침볕에서 님의 미소 같은 방향을 들었습니까
천국의 음악은 님의 노래의 반향입니다
아름다운 별들은 님의 눈빛의 화현입니다
아아, 나의 님은 그림자여요
님은 님의 그림자밖에는 비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님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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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으 s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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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려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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