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맞은 5·16 <下>… 영원한 2인자]
우린, 가진 것 다 불살랐다 朴대통령이 변하기도 했지만 '좋은 나라' 일념은 계속됐어
입력 : 2011.05.14 03:01 / 수정 : 2011.05.14 10:27
아지트 - 청계천에 '상수'라는 술집이 거꾸로 읽으면 수상이야 후르시초프 6시라고 하면 상수에서 6시 만나잔 소리야
장면 총리 체포조 - 박종규가 특수부대 이끌고 반도호텔로 잡으러 갔는데 수도원으로 도망갔더군
근대화 자부심 - 민족중흥·조국 근대화 그런 말 자체가 없을 때 우리가 처음으로 사용했지 그걸로 근대화 기조 닦았어
영원한 2인자 - 찬스 여러 번 있었지만 난 별로 할 생각 없었어 악역 맡겠다는 생각뿐…
5·16의 주역이었던 김종필(85) 전 총리는 지난 8일·12일 두 차례 인터뷰를 마치면서 "나 스스로 5·16을 평가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우리는 가진 것을 다 불살랐다. 그것으로 조국 근대화의 기조를 닦았다"고 했다.―5·16 직전 청파동 집은 안전했나요?
"전날 헌병대가 불시에 찾아왔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계획 서류를 압수하려고. 나는 밖에서 혁명동지들을 만나고 있어서 몰랐어요. 우리 집사람이 서류를 천장에다 감추려 했는데, 사다리가 없으니까 뭘 놓고 올라갔다 떨어지고 올라갔다 떨어지고…. 밖에서는 헌병들이 막 문을 두드리고 있고요. 겨우 올려놓고 문 열어줬지."
―헌병들이 못 찾아냈군요?
"형식적으로 찾는 척 했대요. 그때 분위기가 그랬어요. '(군사혁명 하는데) 방해되는 일은 하지 말자'고 무언중에 그랬어요."
―김종필 중령이 만든 혁명공약을 박정희 소장은 손 안 댔습니까?
"초안 그대로 글자 하나 고치지 않았어요. 나중에 하나 추가됐는데, 제6항입니다.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내용 말입니다. 난 내키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이 버마식 군부 통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어요. 군부가 물러났다가 민간정부가 시원치 않으면 다시 나오는 게 버마식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