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숫자가 아니다 의지·민심으로 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2011.05.13 01:53 / 수정 2011.05.13 02:04
5·16 50년 … JP ‘3700명의 레볼루션’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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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은 한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건국의 사명을 완수한 이승만 시대의 바통이 박정희 시대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박정희의 5·16세력은 산업화와 자주국방을 내걸고 한국 사회의 변혁을 주도했다. 5·16 50주년을 나흘 앞둔 12일 당시 박정희 육군 소장을 도와 거사를 성공시킨 김종필(JP·85·사진) 전 총리를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만났다. 역사의 무게가 쌓여도 ‘혁명가의 시선’은 그때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 3700명밖에 안 되는 소수 병력으로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습니까. 20개 사단을 가진 1군에서 반격작전을 폈다면 실패했을 텐데요.
“이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을 때(※1979년 10월 26일) 청와대 박승규 민정수석이 내게 울면서 전화해 빨리 들어오라는 거야. ‘큰일 났구나’ 하고 들어갔는데… 세상에, 거기서 내가 놀란 게 그렇게 삼엄했던 청와대에 아무도 없더라고. 다 뚫렸어. 3700명이 적은 숫자야? 혁명은 숫자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해.”
12일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만난 김종필 전 총리. [변선구 기자]
-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5월 16일 새벽 한 시, 두 시쯤인가 한강 다리를 건널 때지. 그 직전에 6관구사령부에 있던 박정희 소장에게 장도영 참모총장이 ‘그만두고 돌아가라’고 야단했는데 그때 박 소장이 흔들렸으면 다 끝났어. 박 대통령은 장도영 총장한테 단호한 의지로 ‘우린 행동 개시했습니다’라고 밝혔지. 6군단 포병단이 서울로 진격하고 해병대가 들어오고 그러고 있었거든. 난 종로에서 혁명공약을 인쇄하고 있었고.”
- 5·16은 혁명입니까, 쿠데타입니까.
“내가 격동기를 헤쳐왔는데…. 5·16을 쿠데타니 레볼루션(혁명)이니 막 얘기하는데 뭐, (언성을 높이며) 쿠데타라고 하면 자기가 올라가는 거야? 쿠데타는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 변란을 일으키는 거고, 레볼루션은 민심을 기초로 아래에서 일어나 권력을 바꾸는 거야. 그렇게 따진다면 5·16은 레볼루션이오.” 대담=전영기 편집국장
-아래 계층 출신 하급장교들이 권력을 바꿨다는 뜻인가요.
“아니. 5·16은 서민층이 지지한 혁명이란 얘기야. 서민은 지지했어. 상층에 있던 사람들은 반대했어. 일반 서민들이 은연중에 세상의 변혁을 원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혁명한다는 소문이 좌악 퍼져도 어쩌지 못했던 거요.”
-거사 소문이 퍼졌는데도 장면 정권이 막지 못한 건 미스터리입니다.
“장면 총리는 소문에 신경도 안 쓴 거 같았어. 그때 이런 얘기가 이후락(※장면 국무총리실 직속 정보위원회 실장)씨 같은 사람 귀에 왜 안 들어갔겠어. 다 듣고 있어도 설마 그러랴, 하는 정도의 인식이었겠지. 이한림 1군 사령관은 보고를 받고 혁명군을 칠 준비를 했어. 그런데 우리가 먼저 가서 잡아왔지. 민심이 우리 편이었어. 아, 저 윤보선 대통령도 5·16 보고를 받고 ‘올 게 왔구나’ 첫마디가 그거였어. 현직 대통령이 올게 왔구나 했으면 알 만하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