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朴正熙 照明

5·16의 성공을 도운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淸山에 2011. 5. 14. 13:33

 

 

 

 

5·16의 성공을 도운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게 역사의 大勢 아니었을까?

趙甲濟   

 

 

 

 

 
三國志보다 더 흥미진진한 亂世의 실록-결정적 순간의 결정적 행동이 역사를 움직였다!
 
 <책을 쓰면서 새삼 감탄한 것은 박정희의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운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다. 張都暎(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쿠데타 모의를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張勉(장면) 총리가 정보를 듣고 그에게 수사를 지시하여도 “사실무근이다”고 허위보고를 하였다. 張勉은 새벽에 총성을 듣고 수도원으로 피신, 軍 통수권을 포기하였다. 尹潽善(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 쿠데타를 반기면서,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의 진압 건의를 거절하는 한편 한동안 대통령직에 머물면서 軍政(군정)이 안정되도록 도왔다.
  미국의 케네디 정부는 매그루더의 강경론에 브레이크를 밟고, 곧 군사혁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뒤 경제개발에 매진하도록 유도한다. 서울시민들의 60%가 쿠데타를 지지하였다. 지식인층의 여론을 주도하던 ‘思想界’의 張俊河(장준하)도 혁명을 지지하였다. 중학교 3학년생이던 나도, 50대 초반의 아버지도 ‘군사혁명 환영’이었다. 1년 전 李承晩(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던 학생들은 아무도 군사혁명을 반대하여 일어나지 않았다. 상당수 軍장교들은 모의가 진행 중인 것을 알고도 고발은커녕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民心과 軍心의 거대한 흐름이 혁명을 성공시킨 근원적인 힘이었다. 이를 ‘역사의 大勢’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박정희는 민족의 念願(염원)을 “우리도 잘 살아 보세”란 말로 요약하였다. 고려 武臣亂(무신란) 이후 791년 만에 처음 등장한 武人정권은 기업인과 과학 기술자를 밀어주었다. 그 50년 뒤 한국은 ‘삶의 질’ 랭킹에서 스위스, 프랑스, 영국을 앞질러 세계12등으로 올랐다(UNDP). ‘역사의 大勢’를 타고 질주한 결과이다>
(《漢江의 새벽》著者 머리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