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漢文 古史 漢詩

아흔아홉 번의 손길로 태어나는 작품, ‘붓’

淸山에 2011. 1. 14. 07:57
 

 

 
 
 
 
아흔아홉 번의 손길로 태어나는 작품, ‘붓’
 
 
 
▲ 붓의 부분 명칭. ⓒ
 
 
2006년 9월 15일 (금) 11:10   사이언스타임즈
아흔아홉 번의 손길로 태어나는 작품, ‘붓’
 
 
문방(文房)은 원래 중국에서 문학을 연구하던 관직 이름이었는데, 점차 선비들의 글방 또는 서재라는 뜻으로 정착됐다. 이곳에 갖춰두고 쓰는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칭한다. 중국 진나라 명필 왕희지는

 “종이는 진이요, 붓은 칼과 방패이며, 먹은 병사의 갑옷이요, 물 담긴 벼루는 성지이다”라고 하였다.

서예가 지성인의 척도가 되었던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문방사우를 가까이 하며 인격을 쌓으려 노력했다.

붓글씨는 군자의 덕목이기도 하려니와 심성을 바르게 잡는 수신의 방법이었다.

요즘은 붓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서예를 하는 이들 말고는 붓을 쓸 일이 거의 없기에 볼펜, 사인펜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이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이인훈(무형문화재 15호·모필장) 씨는 대구에서 전통 붓을 만드는 가업을 4대째 잇고 있다. “붓에는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동양의 붓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쓰이지만 서양의 펜은 강하면서도 약하게 쓰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붓을 통해 선비들은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문화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장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우리네 선비들의

정신을 가늘게나마 이어가고 있다.

붓은 인류가 일구어 온 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도구이다. 짐승의 털을 추려 모아서 원추형으로 묶어 붓촉을 만든 뒤, 대나무나 나무에 꽂아서 먹이나 채색을 찍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붓은 한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동양의 문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학창시절 국사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면 이 의창 다호리 붓이 철기시대에 한자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대목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밑줄 긋고 별표까지 쳐가며 ‘다호리 붓’을 외워두어야 했던 것에는 한자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 말고 또 한 가지, 요 물건들의 모양이 특별하다는 이유가 있었다. 다호리 붓은

중국의 붓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척 보면 우리 겨레의 솜씨로 만든 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창 다호리 붓은 묵칠의 방법이나 필관을 다듬어서 만든 방법, 그리고 붓촉을 실로 묶어서 필관 끝에 구멍을

뚫어 만든 점, 또한 붓촉이 붓자루 양쪽 끝에 모두 있다는 점이 특이하고 독창적이다.

본격적으로 붓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 초기에 시행된 문인을 우대하는 정책 덕택에 학문에 힘쓰는 사회 풍조가 조성되었다. 글을 쓸 일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붓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많아졌으리라. 고려시대의 붓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중국 기록에는 상당히 남아 있다. 황정견의 산곡문집(山谷文集)에서 전목부가 고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성성이 모필을 얻었는데 매우 진기하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붓의 명성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 붓을 만드는 장인에는 두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관에 속해 있는 필장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에서 붓을 만들어 팔아 생업을 이어가는 상인이었다. 공부하고 글 쓰는 것으로 인생의 팔 할을 보내던 사대부들이 늘어나면서 선비의 필수품인 붓 또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조선시대에 붓을 만들던 필장들은 꽤나 수입이 쏠쏠했을 것이다.

붓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붓촉이다. 붓에 달린 털 부분은 ‘초가리’라 일컫는데

 무슨 털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붓의 이름과 품질, 가격이 결정된다.

초가리의 재료는 동물성과 식물성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동물성은 족제비, 염소, 말, 개, 노루, 사슴, 여우, 토끼, 호랑이, 쥐 수염(쥐 수염 털로 만든 것은 서수필이라 하는데, 쥐 한 마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털은 8개 정도이므로 붓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200마리 정도가 필요하다. 중국의 왕희지가 가끔 서수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돼지, 살쾡이, 이리, 담비 등의 털과 사람의 머리카락 등이 있다. 특히 사람의 머리카락은 아기가 태어난 뒤 처음 깎아 준 머리카락(배냇머리)만을 이용한다. 어른의 머리카락은 끝이 잘려 나간 상태로 자라기 때문에 미용실에 한번도 다녀온 적이 없는 갓난아기의 머리카락만이 붓촉을 만드는 데 적당하다.

이러한 것은 짐승의 털도 마찬가지다. 식물성 재료로는 대나무, 칡 줄기 등이 있다.

붓으로 태어날 수 있는 털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먹을 머금되 일정한 양을 균일하게 발산할 수 있어야 하며 오래 사용해도 금방 닳아버리지 않도록 적당한 내구력을 지녀야 하고, 털끝이 갈라지지 않아야 하며 탄력과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털은 그리 많지 않다.

같은 염소의 털이라도 흑염소의 것은 너무 부드러운 데다 색깔이 검어 먹색과 구분이 가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다. 염소털 중에서는 입동에서 입춘 사이에 채취한 흰색 숫염소의 겨드랑이 털을 가장 좋은 상품으로 친다. 돼지털과 소털은 너무 강해서 다른 재료의 심소(붓의 중심부분에 넣는 털)에 넣어 균형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그나마 소의 털 중 모필로 사용되는 부위는 귓속 털 뿐이다. 흔하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개털 역시 붓에 이용될 수 있는 털은 털갈이를 끝내고 2개월 정도 지난 것이라 한다. 의창 다호리 유적 이후로 2천여 년 간 붓을 만들면서 터득한 ‘털 고르는 법’은 자연지리와 동물 생태의 정확한 파악을 바탕으로 한 장인의 노하우이다.

최상품의 털을 고르고 나면 기름기를 제거한 후 곱게 빗어 가지런히 모은다. 추려 모은 털의 끝을 마사(麻絲)로 감아 칠로 굳힌 다음 붓자루의 끝부분인 치죽(치죽은 붓촉과 붓자루의 연결부분을 말한다)에 아교로 붙여

붓촉을 만드는 것이다.

붓의 디자인을 크게 좌우하는 대(竹)는 주로 겨울에 벤 것을 쓴다. 황토흙과 쌀겨를 푼 물에 짚을 적셔 대나무를 골고루 잘 문지른 후 햇볕에 2~3개월 정도 건조시키면 대의 독특한 색깔이 나타난다. 이러한 작업을 거친

대를 한 토막씩 잘라 습기 없는 곳에 저장해 두었다가 붓을 만들 때 사용한다.

완성된 붓은 붓촉 부분을 해초풀(도박풀)을 끓여 식힌 물에 담가 둔다. 새 붓의 붓촉이 뾰족한 모양으로 단단하게 굳어져 있는 것은 바로 이 해초액 때문이다. 유통되는 과정에서 붓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초풀을 먹인다.

해초풀이란 우뭇가사리 또는 도박을 일컫는데, 특히 점력이 가장 우수한 도박은 도박속(Pachymeniopis elliptica YAMADA)에 속하는 해조식물로서 몸 아랫부분의 뒷면이 바위에 붙어 자란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도박으로

풀을 쑤어 흙 또는 석회에 섞어 벽에 흙과 회를 바르는 데나, 붓촉에 풀을 먹일 때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한 자루의 붓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99번의 손길이 간다는 말이 있다. 한 번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장인의 혼이 차곡차곡 담겨져 선비의 손에 다다를 즈음에는 그 자체로 묵직한 작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한 눈대중, 손대중은 장인이 붓 만들기에 바친 세월을 함께 겪으며 날카로워져 이제는 과학이라 말해도

될 만큼 정교해져 있다.

잘 쓰인 글씨에는 그것을 쓴 사람의 마음이 묻어 나온다고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고 강하게,

서예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우리네 옛 선비와 오늘날 서예가의 손끝은 붓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관심 & 배움 > 漢文 古史 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秋史 金正喜  (0) 2011.01.30
서예 작품감상  (0) 2011.01.14
사군자 그림이란 무엇인가?   (0) 2011.01.14
서예작품은 어떻게 감상하여야 하는가?  (0) 2011.01.14
탁본이란  (0) 201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