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발상지
청라 언덕 & 동무 생각 찾아서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 선생(1901~1986년)이 마산 창신학교 교사 시절(1921~23년) 노산 이은상 선생과 교분을 쌓게 되었으며, 박태준 선생이 1911~1916년까지 계성학교에 다녔던 자신의 집(현 섬유회관 인근) 앞을 지나던 한 여고생을 잊지 못했던 짝사랑이 작곡의 동기가 됐다는 것이다. 동산은 그가 현재의 제일교회 옆 3·1운동 계단을 지나 등교하던 길이었다. 그 여학생은 한 송이 흰 백합 같은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박태준 선생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으며, 그녀는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고 한다. 이은상 선생이 이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써 줄 테니 곡을 붙여보라’고 박태준 선생에게 권유함으로 탄생한 것이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쓰고 있는데, 이 ‘청라’가 지금도 푸른 담쟁이로 뒤덮은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 일대의 언덕을 말한다고 한다. ‘동무생각’이 청년 박태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그 여고생이 당시의 신명여자학교(현 신명고) 학생이냐,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현 경북여고) 학생이냐 하는 논란도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경북여고 교화가 백합이었고, 경북여고 개교는 1926년인데 비해 신명여고 개교는 1907년으로 ‘동무생각’ 작곡 시기(1922년)보다 빠르기 때문에 신명여자학교가 맞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박태준 선생의 집과 신명여자학교의 등굣길은 일치한다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동무생각’ 3절에 나오는 가사 ‘서리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의 연못은 동산에 물을 대주던 ‘선황당 못’이라는 것도 이번에 밝혀졌다. 이 연못은 1923년 서문시장 확장과 함께 메워졌다.
박태준 선생의 집이 있었던 섬유회관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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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선생의 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신명학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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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학교에서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삼일운동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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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위에 있는 청라언덕의 청라(담쟁이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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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에 세워진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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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 언덕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때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새 같은 내 동무야 내가 네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없이 오는 눈발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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