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
근대기 중국화가들은 수천년간 사용해 온
'지, 필, 묵' 이라는 전통 요소에 서양의유화기법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로 고민했었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중국 근/현대회화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런보니엔(1840-1895),
우촹숴(1844-1927),
황빈홍(1865-1955),
치바이스(1864-1957),
쉬베이홍(1895-1953)'
등의 '중국 5대 화가' 들은 각자 독창석인 방식으로
중국화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작가들이다.
그 중,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 1860~1957)'
누구인가?
'치바이스' 는
'중국의 피카소' 로 불린다.
중국 개혁, 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시에서
지난 5월 15일 열린 선전문화산업박람교역회에서
치바이스의 '군룡입해도(郡龍入海圖)' 가
'1억2천만위안(한화 약 202억원)' 에 팔렸다.
'백하도(百蝦圖)' 라는 별칭이 있는 이 그림은
치바이스가 84세의 노년에 그린 작품으로,
123 마리의 새우가 무리를 이뤄 바닷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하여 그렸다.
특히,
치바이스는 작년 피카소(1위)에 이어,
그림 '경매시장 2위' 로 2009년
3위에서 2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치바이스 생애]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 1860~1957)'
는 가난한 빈농의 집에서 1860년 태어났으며, 그의 집은
집 근처 논 한 마지기에 의존해 다섯 식구가 살아가야 했고,
흉년이 들면 집안에 양식이 떨어져서 오랫동안 쓰지 않은
부엌 아궁이에서 개구리가 살 정도였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 중국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치바이스는 타고 난 재능은 있었지만, 정식으로 미술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시골뜨기 목수' 였다.
그러한 가난한 시골 목수
치바이스(齊白石)는 글공부에 목말랐고,
그의 손재주를 눈여겨 본 스승 '후친위안' 은
조각칼 대신 붓을 쥐어줬다.
스승은
“네 실력이면 그림 팔아서 글을 배울 수 있다.”
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스승의 말에 힘을 얻은
치바이스는 수 만 점의 그림을 그렸고, 결국 치바이스는
중국 근/현대 미술계의 '최고봉' 에 올랐다.
스승이 타계하자 제자는 회고했다.
“그 어르신은 은사일 뿐만 아니라 내 평생의 지기였다.
길고 긴 이별을 고하니 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하며 치바이스는 스승의 영전에서
생전에 스승이 칭찬해준 자신의 작품 20여 점을 꺼내들었고
치바이스는 분향하듯 그 작품들을 불살랐다고 한다.
치바이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자기 주변의 것들을 그렸는데,
'소, 말, 돼지, 오리, 개구리, 새우, 어부, 어린아이'
등이 그의 작품 속 소재가 되었다.
유명해진 다음에도 치바이스는
패거리에 가담하거나,
격식을 따지는 것을 싫어했으며,
부패한 권력자나 부자들이 그림을 사러 와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도적이 되기는 싫다.
차라리 장안에 굶어죽은 귀신이 추 하지 않다"
며 물리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남긴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란을 부귀라고 부러워 마소.
배와 귤의 단맛에는 떨어진다오."
이 시처럼 치바이스는 화려한 '모란' 보다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배, 귤' 같은 사람이었다.
[치바이스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