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화폭의 예술

치바이스 齊白石(제백석) 작품 -1

淸山에 2017. 12. 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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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 齊白石(제백석) 작품 - 1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 '군룡입해도(郡龍入海圖)'

1억2천만위안(한화 약 202억원)에 경매낙찰! 치바이스 생애와 작품!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

 

근대기 중국화가들은 수천년간 사용해 온

'지, 필, 묵' 이라는 전통 요소에 서양의유화기법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로 고민했었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중국 근/현대회화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런보니엔(1840-1895),

우촹숴(1844-1927),

황빈홍(1865-1955),

치바이스(1864-1957),

쉬베이홍(1895-1953)'

등의 '중국 5대 화가' 들은 각자 독창석인 방식으로

중국화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작가들이다.

 

그 중,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 1860~1957)'

누구인가?

 

 

'치바이스'

'중국의 피카소' 로 불린다.

 

중국 개혁, 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시에서

지난 5월 15일 열린 선전문화산업박람교역회에서

치바이스의 '군룡입해도(郡龍入海圖)'

'1억2천만위안(한화 약 202억원)' 에 팔렸다.


'백하도(百蝦圖)' 라는 별칭이 있는 이 그림은

치바이스가 84세의 노년에 그린 작품으로,

123 마리의 새우가 무리를 이뤄 바닷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하여 그렸다.

 

특히,

치바이스는 작년 피카소(1위)에 이어,

그림 '경매시장 2위' 로 2009년

3위에서 2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치바이스 생애]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 1860~1957)'

는 가난한 빈농의 집에서 1860년 태어났으며, 그의 집은

집 근처 논 한 마지기에 의존해 다섯 식구가 살아가야 했고,

흉년이 들면 집안에 양식이 떨어져서 오랫동안 쓰지 않은

부엌 아궁이에서 개구리가 살 정도였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 중국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치바이스는 타고 난 재능은 있었지만, 정식으로 미술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시골뜨목수' 였다.

 

그러한 가난한 시골 목수

치바이스(齊白石)는 글공부에 목말랐고,

그의 손재주를 눈여겨 본 스승 '후친위안'

조각칼 대신 붓을 쥐어줬다.

 

스승은

“네 실력이면 그림 팔아서 글을 배울 수 있다.”

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스승의 말에 힘을 얻은
치바이스는 수 만 점의 그림을 그렸고,
결국 치바이스는

중국 근/현대 미술계의 '최고봉' 에 올랐다.

스승이 타계하자 제자는 회고했다.

그 어르신은 은사일 뿐만 아니라 내 평생의 지기였다.

길고 긴 이별을 고하니 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하며 치바이스는 스승의 영전에서
생전에 스승이 칭찬해준 자신의 작품 20여 점을 꺼내들었고
치바이스는 분향하듯 그 작품들을 불살랐다고 한다.

 

 

치바이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자기 주변의 것들을 그렸는데,
'소, 말, 돼지, 오리, 개구리, 새우, 어부, 어린아이'

 등이 그의 작품 속 소재가 되었다.

유명해진 다음에도 치바이스는

패거리에 가담하거나,

격식을 따지는 것을 싫어했으며,

부패한 권력자나 부자들이 그림을 사러 와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도적이 되기는 싫다.

차라리 장안에 굶어죽은 귀신이 추 하지 않다"

며 물리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남긴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란을 부귀라고 부러워 마소.

배와 귤의 단맛에는 떨어진다오."

이 시처럼 치바이스는 화려한 '모란' 보다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배, 귤' 같은 사람이었다.

[치바이스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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