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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단결 못해 국제적 승인도, 국민 동의도 얻지 못했다

淸山에 2016. 8. 16. 15:03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임시정부는 단결 못해 국제적 승인도, 국민 동의도 얻지 못했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요즘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립됐으므로 그날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반헌법적 주장입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입니다.>
 
대한민국의 국정을 담당했었고, 대통령 후보에까지 나섰으며,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고 꿈꾸는 사람이 가진 역사관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참으로 큰 일"이라는 말 외는 달리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우리나라 지도자 배출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전반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지도자의 국가관과 역사관은 국가의 정체성, 공동체의 운명은 물론 후손들의 미래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필자가 올해 3월 <조선pub>에서 원로 헌법학자인 김철수(金哲洙ㆍ83) 서울대 명예교수를 인터뷰 한 내용 중에 건국 관련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김철수 교수 인터뷰 중 건국에 대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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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식.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가 넘치는 새 나라 건설을 다짐했다./조선DB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일이 될 수는 없어"
 

-새삼스럽게 건국일(建國日)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헌법학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1919년의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삼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뉘고 있습니다. 상해임시정부 건국일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주로 진보 세력인데 그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며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정통성이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건국의 주역으로 김구(金九)를 내세우고, 이승만(李承晩)을 분단의 원흉으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정통국가이고 북한 정권은 UN의 결의를 따르지 않고 소련의 지시에 따라 세워졌기 때문에 법적 정통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고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주장하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 되는지요.

 

“이념적 정통성으로 볼 때 우리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론(國家論)에 입각하여 실질적 건국으로 인정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토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있어야 하고, 주권이 있어야 하는데 임시정부는 이 중에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였습니다. 엄격하게 보자면 망명정부라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임시정부는 대동단결하지 못하여 국제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고, 국민들의 실질적인 동의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전후(戰後)에 국제적 승인을 받아 통치행위를 한 프랑스 드골 망명정부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이 중경(重慶)의 임시정부를 지원하지 않았나요.

 

“안타깝게도 중경 임시정부는 정부로서 승인을 얻지 못했고, 광복군이 참전하지 못해서 망명정부로서 무게를 갖지 못했습니다. 환국(還國) 후에는 임정의 법통을 살려 미군정에게 행정권 이양을 요청했지만, 미군정뿐 아니라 미 본국으로부터도 승인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국제법으로 국가로 인정이 안 되고, 국내법적으로도 국가의 구성요소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망명정부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국가의 건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파 쪽은 상해임시정부 건국설에 대해 ‘결국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기 위한 맥락에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설사 좌파들이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한다고 해도 이승만과 상해임시정부의 연결고리까지 끊을 수는 없습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해서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북한의 초대 내각은 민족반역자와 친일파를 많이 기용했지만, 이승만 정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제하에 일하던 공무원들을 건국 과정에서 참여시키기는 했지만, 그 자체를 놓고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식으로 매도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더구나 당시 공산당과 진보세력이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90%가 자유롭게 투표에 참여하여 건국을 이루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가 아니다"




-좌파들은 분단의 책임까지 이승만 대통령에게 덮어씌우고 있고, 이를 국사교과서를 통해 교묘하게 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는데요.

 

“명백한 것은 김일성이 대한민국 건국 2년 전에 이미 소련의 지시에 따라 우파인사를 숙청하고, 인민위원회를 만들고 실질적인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일당(一黨) 독재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행정권이양 요청을 거부하고 협력하지 않았으니 임정(臨政)의 법통성 계승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미소(美蘇) 공동위의 합의에 따른 것도 아니고, 유엔 결의에 위반하여 1948년 8월에 부정선거를 통해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웠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형식적인 것이고, 정통성을 상실했고, 주요 국가의 승인도 얻지 못했음으로 불법정부라 하겠습니다.”




-많은 젊은들이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북한은 오히려 초대 내각에 친일파를 많이 등용했지만, 우리는 헌법에 임정의 정신을 계승하기로 했고, 임정요인이 국회의장, 부통령, 국무총리, 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1950년 5ㆍ30 선거에서는 단선ㆍ단정(단독선거 단독정부)이라고 반대했던 정치인들까지 대거 선거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수립이 역사적 대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남북 대치나 긴장, 6ㆍ25가 없었으면 친일파 숙청과 민족정기 부활이 더욱 철저하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친일파 척결을 잘하지 못한 근본 이유는 긴장을 고조하고, 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들을 막기 위하여 일제의 경관이나 공무원을 쓰게 되었기에 그들의 죄책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해 주시면요.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여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고, 일본 어부를 체포하여 한국영토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좌파들 주장처럼 소위 ‘미국의 주구’ 노릇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항일독립투쟁을 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닌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더구나 단독정부라도 만들어서 북한과 소련이 기획한 남북한 공산화를 막았던 것은 그가 당시 냉전의 방향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 6ㆍ25 남침 이후에 미국과 유엔에 요청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한미(韓美)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외교에는 천재적이었지만 내정에는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가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이승만이 6ㆍ25 이전에 농지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라를 지켰다는 겁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