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허리 끊긴 ‘조선 봉수’ 다시 이어질까

淸山에 2014. 10. 23. 09:24


 




허리 끊긴 ‘조선 봉수’ 다시 이어질까
김상운 기자

입력 2014-10-23 03:00:00 수정 2014-10-23 08:47:18




문화재청, 남북 공동 조사-유네스코 등재 추진



20일 찾은 경기 고양시 독산봉수. 돌로 쌓은 75m 둘레의 원형 ‘방호벽’이 보인다. 방호벽 오른쪽 우거진 수풀 속에 횃불을 올린 ‘연조’가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3《 남북으로 나뉜 조선시대 봉수(烽燧·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비상연락수단)를 120년 만에 복원해 하나로 잇는다. 문화재청은 조만간 북한에 봉수를 공동 조사하는 사업을 제안하기로 했다. 북한이 수락하면 봉수를 남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동 등재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외침을 막는 통신망이던 봉수가 남북 화해를 가져올 메신저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휴전선으로 허리가 끊긴 조선시대 봉수(烽燧)가 120년 만에 하나로 이어진다. 문화재청은 조선 봉수를 남북이 함께 조사해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봉수를 남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달 중 열리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통해 북한 내 봉수에 대한 공동 조사를 북측에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2004년 남북 역사학자들이 세운 민간 학술단체다. 협의회는 이달 중 평양 인근 고구려 고분에 대한 공동 조사를 논의한다. 》




앞서 협의회는 5·24 대북 제재조치로 2011년 12월 중단된 개성 ‘만월대(고려왕궁 터)’ 공동 발굴조사를 올 7월 전격 재개한 바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색된 남북 관계에도 불구하고 만월대 발굴 재개 등 최근 남북의 문화 교류는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봉수 공동 조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화재청은 북한이 공동 조사를 받아들일 경우 봉수의 원형 복원과 함께 남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동 등재하는 것까지 진행할 방침이다. 세계문화유산 남북 공동 등재는 아직 전례가 없다. 그동안 북한과의 문화재 공동 조사는 2006년 고구려 고분군 보존과 2007년 만월대 발굴에 있었으며 봉수가 성사되면 세 번째다.


봉수는 외적의 침입 등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횃불과 연기를 피워 중앙에 알린 통신수단. 1894년 고종 칙령에 의해 봉수제가 폐지된 지 올해로 120년이 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봉수가 크게 훼손됐다. 개성 송악산 봉수의 경우 미군 폭격으로 부서진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현재 남북에 1200여 개의 봉수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학계는 북한에 650여 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총 5개 노선으로 구성된 조선 봉수는 전국을 실핏줄처럼 잇고 있었다.


20일 찾은 경기 고양시 독산(禿山)봉수는 여전히 휴전선을 향해 열려 있었다. 독산봉수는 평안도 강계에서 시작되는 3로(路) 봉수 중 하나로 파주 도라산 다음의 77번째 봉수였다. 이 불의 릴레이가 세 번만 더 진행되면 종착지인 한양 목멱산(현 서울 남산)에 이르게 된다. 독산 정상에 오르자 1.2m 높이의 돌무더기(석축)들이 75m 둘레의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봉수의 연대와 연조(煙槽·아궁이) 등을 보호하기 위해 돌로 쌓은 방호벽이다. 석축 사방에는 동서남북으로 돌계단이 놓여진 네 개의 진입로가 뚜렷하게 보였다. 봉화 전문가인 김주홍 LH공사 박사는 “14세기 초반 조선 초기 내지(內地) 봉수의 원형이 이처럼 거의 그대로 보존된 곳은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을 피워 올린 연조는 방호벽 외곽의 수풀에 파묻혀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굴뚝은 이미 사라진 채 둥그런 돌무더기 5개가 2m 간격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김주홍 박사는 “단일 유형의 문화유산으로 남북에 걸쳐 1000여 개가 남아 있는 것은 봉수가 유일하다”며 “봉수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국가 기간통신망이자 국가방위 수단으로 중요성이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고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