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가 고 이타미 준(伊丹潤 · 유동룡)
Architect ITAMI JUN, Itami Jun Architects
돌과 바람, 소리의 기억
Memory of stones, winds and sounds
기사제공 _ 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
흙, 나무, 철 등 토착적인 소재와 색과 빛을 기초로 한 건축의 미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칭송받던 건축가 이타미준 지난 6월 26일 향년 75세의 나이로 일본 도쿄에서 별세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2세로 태어나 무사시노공대를 나온 그였지만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2005)와 제 23회 무라노도고상(2010)의 수상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며, 한없는 건축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아끼지 않던 가운데 위암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뇌출혈로 쓰러져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고인의 생전 유언에 따라 장례는 미리 알리지 않고 도쿄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골은 화장을 한 뒤 그가 그토록 애정 어리게 여겼던 한국으로 돌아와 경남 거창의 선산에 묻혔다. 이후 지난 7월 19일 ITM 방배동사옥에서 고인의 추모행사가 마련되었다.
평소 한국인 후배를 위해 자신의 드로잉 200점을 따로 모아두었고, 한국의 국립미술관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열고 싶다며, 10년쯤 더 일에 몰두하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는 그의 소박한 소망은 이제 유언이 되어 버렸다. 이타미 준의 큰 딸이자 한국지사장을 맡고 있는 유이화 대표(건축가, ITM 건축연구소)는 이타미 건축자료관, 이타미 건축상, 이타미 문화재단을 만들어 달라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타미준 건축을 승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혼을 지닌 건축가로 평가되는 이타미준은 1937년 재일교포로 도쿄에서 태어나 무사시노공대를 졸업한다. 당시 조선인이란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던 시기, 재일동포 2세들은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늘 경계에 서있었기에 그는 이를 경계인이라 표현한다. 2개의 조국 사이에 2개의 정체성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는 귀화하지 않았고 귀화할 생각도 없는 당당한 한국인이었다.
경남 거창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고려 유금필 장군의 후예 무송 유씨 34대손으로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 자부심이 있었기에 대학시절까지 유동룡으로 이름을 쓰던 그였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사무실에 취직하기도 어렵던 때, 일본에서 건축사무소를 열면서 이타미준이란 상호를 쓰게 된다. 자신의 이름으로 관청에 등록하려고 하였지만 자신이 쓰던 유자가 없었고, 한국을 오갈 때 자주 이용하던 오사카 아타미공항에서 성을 따고 의형제이자 작곡가 고 길옥윤씨(요시야 준)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빌어 지은 것이다.
"40년 전 처음 찾은 아버지의 땅에서 조선민화처럼 은근한 정서를 느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대학시절 떠난 한국여행을 통해 조선민화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였고 건축사무소를 열면서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자연이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돌, 흙, 나무, 철 등의 재료를 통해, 혹은 토착적인 재료를 살리고, 가공은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소재의 존재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표현된 돌과 나무, 대나무 등의 자연 소재들은 지역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건축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채용한 것이다. 일본적이거나 한국적인데 한정짓지 않고 보다 넓고 근원적인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재일교포 2세로 도쿄에서 평생을 산 건축가이지만 자신의 건축 밑바탕에는 한국의 민화와 자연에서 배운 것이라고 밝힌다. 그런 연유로 건축가는 생전에 민화와 고가구, 도자기 등의 수집가로서 제법 조예가 깊었고 달항아리도 500점 이상 수집하였다.
이타미준은 지난 1997년 도쿄국제아트포럼의 일본 공간 전시회 오프닝 작가로 선정되었고, 그의 '먹의 공간, 물의 공간'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지난 2003년 세계적인 동양박물관인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첫 개인 초청전을 열게 된다.
‘이타미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라는 제목의 이 개인전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이자 국적을 초월하여 건축물을 예술로 승화시킨 국제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건축가”라는 찬사를 얻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2005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하며 “현대 건축에 현대 미술을 끌어 안았다”라고 평가되었다. 또한 금토동 주택으로 2001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제주 미술관 프로젝트로 2006김수근문화상, 2006아시아문화・환경상 ‘The 2nd International Summit on Asian Habitat’, SK기흥아펠바움으로 2008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제주도 방주교회로 2010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 BEST 7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건축가 이타미준의 명성은 일본 내에서도 입증되어, 지난 2010년 일본 최고 권위상인 '무라노 도고상' 첫 외국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동양적인 것은 대단히 독창적인 것으로 지역에 뿌리박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 가능한 건축을 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로 성장한 이타미준은 고국에 대한 애정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에 여러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지난 1982년 온양미술관을 비롯하여 1988년 서울 방배동에 한국지사로 ‘각인의 탑’을 설계하면서 제주 PINX 클럽하우스(1998), 포도호텔(2001), 학고재 미술관(2003), 제주 PINX 수・풍・석 미술관(2004), SK건설 판교 운중 아펠바움(2009), 쌍용건설 평창동 오보에힐스(2009), JDC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2010) 등 다수의 작품 활동을 심취하였다.
제주의 오름과 전통초가의 형태를 부드러운 지붕의 곡선으로 잘 표현한 포도호텔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마치 제주의 민가를 연결해 놓은 듯한 호텔은 토착성과 지역성을 건물의 형상에서나 재료 그리고 그 내부 공간에 표현하고 있다. 제주 PINX 수・풍・석 미술관은 자연과 기억을 연상시키는 바람의 공간, 하늘의 움직임을 수면에 투영시켜 무심을 얻고자 한 물의 공간, 사유이자 시적 환상을 통해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돌의 공간으로 명상할 수 있는 체험형 미술관을 통해 김수근 문화상을 받기도 하였다.
방주교회는 수풍석지 4개의 미술관과 연속되는 또 다른 건축물로서 하늘의 교회란 표현처럼 물 공간을 남기고 그 위에 하늘의 건축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건축가 이타미준은 JDC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 ‘도시건축 총괄건축가(Master Architect)’로 활동하면서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라는 자신의 건축에 대한 주제의식과 예술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2016년 완공 예정인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 설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던 중 세계 건축계의 소중한 별은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그가 생전에 보여주고자 하였던 한국에 대한 가슴시린 애정과 한국의 미를 담고자 한 그의 건축정신은 한국과 일본 곳곳에 남겨져 자연의 일부가 되어갈 것이다. 빛과 바람의 조용한 흐름을 타고 흙과 나무, 철 등으로 구현된 오롯한 삶의 건축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면면히 숨 쉬고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AN news
김용삼, 안정원 편집자 유이화 ITM 건축연구소 대표
자료 ITM Architects www.itmarch.com
고 이타미 준 ITAMI JUN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화가이다. 일본 동경 출생으로 무사시공업대학 건축학과 졸업하였다. 1968 JUN ITAMI ARCHITECT A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고, 2006 ITAMI JUN ARCHITECTS를 설립하였다.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제 23회 무라노도고상, 아시아문화・환경상,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 김수근문화상,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 Best 7 등을 수상하는 등 수 십 회의 전시회와 개인전 등을 개최하였다. 『건축가 이타미준』, 『돌과 바람의 소리』, 『한국의 공간』 등을 포함하여 12권의 저서가 있다.
기사제공 AN news 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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