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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영원히 귀국하셨네요 우리 아버지

淸山에 2014. 2. 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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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영원히 귀국하셨네요 우리 아버지
 김미리 기자 

입력 : 2014.02.06 03:01

 

 

[在日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회고전]

딸인 건축가 유이화씨, 생전 작업실 그대로 옮겨와
"책상엔 늘 韓日·日韓 사전… 모국어 잊지 않으려 애쓰셨죠"

 
 


	재일교포 건축가 故이타미 준과 그의 딸 유이화씨 사진

 재일교포 건축가 故이타미 준과 그의 딸 유이화씨.  


아버지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도쿄 세타가야의 아틀리에 책상에 한일·일한사전을 올려뒀다. 재일교포지만 모국어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버지가 세상과 작별하기 사흘 전까지 매달렸던 스케치 옆엔 까만 자가 있었다. 20년 전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딸이 첫 아르바이트비로 사준 선물이었다. '고국'과 '딸'. 재일교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본명 유동룡·1937~2011)이 평생 가슴에 품어온 두 화두였다.

 

2011년 6월 26일, 이타미 준이 세상 떴을 때 모습 그대로 2년 반 동안 멈춰 있던 그의 도쿄 아틀리에가 고국에서 재현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에서다. 모형·서예·소품 등 500여 점도 함께 전시됐다.

 

"2년 반을 그대로 남겨뒀다가 귀국 이사 전문업체를 통해 다 실어 왔어요. 도쿄 사무실을 완전히 정리했죠. 우리 아버지, 이제 진짜 귀국하셨네요." 4일 전시회장에서 만난 건축가 유이화(41·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씨가 헛헛하게 웃었다. 이타미 준이 생전에 "자식, 애인,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뮤즈"라고 말했던 딸이다. 초등학교 때 한국에 온 이화씨는 아버지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됐다. 부녀가 각각 도쿄와 서울을 거점으로 협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에 전시된 이타미 준의 책상. 2011년 6월 26일, 그가 세상을 떴을 때 도쿄 아틀리에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왼쪽으로 그가 평생 끼고 살았던 한일·일한 사전이 보인다. 죽기 사흘 전까지 작업했던 스케치 오른쪽으로 딸 유이화씨가 선물했던 까만 자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에 전시된 이타미 준의 책상. 2011년 6월 26일, 그가 세상을 떴을 때 도쿄 아틀리에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왼쪽으로 그가 평생 끼고 살았던 한일·일한 사전이 보인다. 죽기 사흘 전까지 작업했던 스케치 오른쪽으로 딸 유이화씨가 선물했던 까만 자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에 전시된 이타미 준의 책상. 2011년 6월 26일, 그가 세상을 떴을 때 도쿄 아틀리에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왼쪽으로 그가 평생 끼고 살았던 한일·일한 사전이 보인다. 죽기 사흘 전까지 작업했던 스케치 오른쪽으로 딸 유이화씨가 선물했던 까만 자가 있다. /허영한 기자 


이화씨는 "'경계인'으로서 아버지가 느꼈던 고뇌가 관람객에게 전달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타미 준은 한국 국적, 한국 이름을 고수했다. "데뷔작인 '먹의 집'(1975)을 발표하는데 저희 성에 쓰는 유(庾)자가 일본 한자에 없었대요. 활동명이 필요했죠. 아버지가 처음 한국 갈 때 이용했던 이타미(伊丹) 공항에, 호형호제하던 길옥윤 선생님의 마지막 한자 윤(潤·일본 발음 준)을 합치셨대요." 서울에서 열린 이타미 준의 결혼식에선 길옥윤 반주에 맞춰 패티김이 축가를 불렀다.

 

아버지는 딸이 완벽한 한국인으로 크길 바랐다. "오죽하면 이화여대 들어가 조신하게 자라 좋은 한국 신랑 만났으면 해서, 제 이름을 이화로 지으셨다잖아요.(결국 딸은 이대에 들어갔고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초등학교 2학년, 서툰 아비의 한국어를 추월했을 때부터 딸은 건축 현장을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입이 됐다. 그러길 서른 해, 아버지의 걸어 다니는 건축철학집이 됐다.

 

"조선 백자를 보면 눈이 한없이 들어간다 하셨어요. 그 '한없는 깊이'를 아버지는 자연의 건축에 담으셨어요.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물·바람·돌 같은 자연을 공간 안에 컬렉트하신다고 말씀하셨죠." 이타미 준은 "건축은 사람과 자연이 소통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다리일 뿐"이라고 했다.



	'포도호텔' 사진
 

'포도호텔' 사진   

 '포도호텔'. /사진가 준초이 제공 

 

딸은 아버지를 당신 건축의 시작이었던 고국산천에 돌려 드렸다. 아버지 유해의 절반은 할아버지의 고향 경남 거창에, 절반은 아버지가 '제2의 고향'이라 말했던 제주 바다에 뿌렸다. 인터넷 뒤져 한국식으로 제사상도 차렸다.

"아버지는 늘 대지 앞에 겸손하라고 하셨어요. 땅의 문맥을 추출해 사람의 온기를 담아 '감동'을 주는 건축. 이타미 준 건축의 요체지요." 그녀 뒤로, 이타미 준 책상에 올려진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일생연소(一生燃燒), 일생감동(一生感動), 일생불오(一生不悟).' 한평생 불태우고, 한평생 감동해도, 한평생 깨닫지 못한다. 전시 7월 27일까지.  (02)2188-6000

☞이타미 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무사시공업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1968년 처음 고국에 왔다가 한국 고건축에 매료됐다.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를 받았고, 일본 무라노 도고상,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조선의 민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의 건축 소재이자 주제인 ‘물, 바람, 돌’은 ‘제2의 고향’ 제주에서 절정에 이른다. ‘수풍석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사진> 등이 제주에 지은 대표작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고 이타미 준(伊丹潤 · 유동룡)

Architect ITAMI JUN, Itami Jun Architects

돌과 바람, 소리의 기억

 

 

 

Memory of stones, winds and sounds

기사제공 _ 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

 

흙, 나무, 철 등 토착적인 소재와 색과 빛을 기초로 한 건축의 미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칭송받던 건축가 이타미준 지난 6월 26일 향년 75세의 나이로 일본 도쿄에서 별세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2세로 태어나 무사시노공대를 나온 그였지만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2005)와 제 23회 무라노도고상(2010)의 수상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며, 한없는 건축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아끼지 않던 가운데 위암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뇌출혈로 쓰러져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고인의 생전 유언에 따라 장례는 미리 알리지 않고 도쿄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골은 화장을 한 뒤 그가 그토록 애정 어리게 여겼던 한국으로 돌아와 경남 거창의 선산에 묻혔다. 이후 지난 7월 19일 ITM 방배동사옥에서 고인의 추모행사가 마련되었다.

 

평소 한국인 후배를 위해 자신의 드로잉 200점을 따로 모아두었고, 한국의 국립미술관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열고 싶다며, 10년쯤 더 일에 몰두하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는 그의 소박한 소망은 이제 유언이 되어 버렸다. 이타미 준의 큰 딸이자 한국지사장을 맡고 있는 유이화 대표(건축가, ITM 건축연구소)는 이타미 건축자료관, 이타미 건축상, 이타미 문화재단을 만들어 달라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타미준 건축을 승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혼을 지닌 건축가로 평가되는 이타미준은 1937년 재일교포로 도쿄에서 태어나 무사시노공대를 졸업한다. 당시 조선인이란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던 시기, 재일동포 2세들은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늘 경계에 서있었기에 그는 이를 경계인이라 표현한다. 2개의 조국 사이에 2개의 정체성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는 귀화하지 않았고 귀화할 생각도 없는 당당한 한국인이었다.

 

경남 거창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고려 유금필 장군의 후예 무송 유씨 34대손으로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 자부심이 있었기에 대학시절까지 유동룡으로 이름을 쓰던 그였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사무실에 취직하기도 어렵던 때, 일본에서 건축사무소를 열면서 이타미준이란 상호를 쓰게 된다. 자신의 이름으로 관청에 등록하려고 하였지만 자신이 쓰던 유자가 없었고, 한국을 오갈 때 자주 이용하던 오사카 아타미공항에서 성을 따고 의형제이자 작곡가 고 길옥윤씨(요시야 준)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빌어 지은 것이다.

 

"40년 전 처음 찾은 아버지의 땅에서 조선민화처럼 은근한 정서를 느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대학시절 떠난 한국여행을 통해 조선민화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였고 건축사무소를 열면서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자연이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돌, 흙, 나무, 철 등의 재료를 통해, 혹은 토착적인 재료를 살리고, 가공은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소재의 존재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표현된 돌과 나무, 대나무 등의 자연 소재들은 지역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건축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채용한 것이다. 일본적이거나 한국적인데 한정짓지 않고 보다 넓고 근원적인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재일교포 2세로 도쿄에서 평생을 산 건축가이지만 자신의 건축 밑바탕에는 한국의 민화와 자연에서 배운 것이라고 밝힌다. 그런 연유로 건축가는 생전에 민화와 고가구, 도자기 등의 수집가로서 제법 조예가 깊었고 달항아리도 500점 이상 수집하였다.

 

이타미준은 지난 1997년 도쿄국제아트포럼의 일본 공간 전시회 오프닝 작가로 선정되었고, 그의 '먹의 공간, 물의 공간'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지난 2003년 세계적인 동양박물관인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첫 개인 초청전을 열게 된다.

 

‘이타미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라는 제목의 이 개인전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이자 국적을 초월하여 건축물을 예술로 승화시킨 국제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건축가”라는 찬사를 얻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2005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하며 “현대 건축에 현대 미술을 끌어 안았다”라고 평가되었다. 또한 금토동 주택으로 2001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제주 미술관 프로젝트로 2006김수근문화상, 2006아시아문화・환경상 ‘The 2nd International Summit on Asian Habitat’, SK기흥아펠바움으로 2008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제주도 방주교회로 2010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 BEST 7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건축가 이타미준의 명성은 일본 내에서도 입증되어, 지난 2010년 일본 최고 권위상인 '무라노 도고상' 첫 외국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동양적인 것은 대단히 독창적인 것으로 지역에 뿌리박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 가능한 건축을 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로 성장한 이타미준은 고국에 대한 애정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에 여러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지난 1982년 온양미술관을 비롯하여 1988년 서울 방배동에 한국지사로 ‘각인의 탑’을 설계하면서 제주 PINX 클럽하우스(1998), 포도호텔(2001), 학고재 미술관(2003), 제주 PINX 수・풍・석 미술관(2004), SK건설 판교 운중 아펠바움(2009), 쌍용건설 평창동 오보에힐스(2009), JDC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2010) 등 다수의 작품 활동을 심취하였다.

 

제주의 오름과 전통초가의 형태를 부드러운 지붕의 곡선으로 잘 표현한 포도호텔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마치 제주의 민가를 연결해 놓은 듯한 호텔은 토착성과 지역성을 건물의 형상에서나 재료 그리고 그 내부 공간에 표현하고 있다. 제주 PINX 수・풍・석 미술관은 자연과 기억을 연상시키는 바람의 공간, 하늘의 움직임을 수면에 투영시켜 무심을 얻고자 한 물의 공간, 사유이자 시적 환상을 통해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돌의 공간으로 명상할 수 있는 체험형 미술관을 통해 김수근 문화상을 받기도 하였다.

 

 방주교회는 수풍석지 4개의 미술관과 연속되는 또 다른 건축물로서 하늘의 교회란 표현처럼 물 공간을 남기고 그 위에 하늘의 건축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건축가 이타미준은 JDC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 ‘도시건축 총괄건축가(Master Architect)’로 활동하면서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라는 자신의 건축에 대한 주제의식과 예술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2016년 완공 예정인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 설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던 중 세계 건축계의 소중한 별은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그가 생전에 보여주고자 하였던 한국에 대한 가슴시린 애정과 한국의 미를 담고자 한 그의 건축정신은 한국과 일본 곳곳에 남겨져 자연의 일부가 되어갈 것이다. 빛과 바람의 조용한 흐름을 타고 흙과 나무, 철 등으로 구현된 오롯한 삶의 건축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면면히 숨 쉬고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AN news


김용삼, 안정원 편집자 유이화 ITM 건축연구소 대표

자료 ITM Architects www.itmarch.com

 


고 이타미 준 ITAMI JUN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화가이다. 일본 동경 출생으로 무사시공업대학 건축학과 졸업하였다. 1968 JUN ITAMI ARCHITECT A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고, 2006 ITAMI JUN ARCHITECTS를 설립하였다.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제 23회 무라노도고상, 아시아문화・환경상,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 김수근문화상,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 Best 7 등을 수상하는 등 수 십 회의 전시회와 개인전 등을 개최하였다. 『건축가 이타미준』, 『돌과 바람의 소리』, 『한국의 공간』 등을 포함하여 12권의 저서가 있다.

 

 







기사제공  AN news 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


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는 건축과 디자인, 아트, 문화를 중심으로 AN Architecture & Design, art, culture Newspaper, AN Design Culture Journal, AN Design Membership Magazine, AN Design Award, AN Architecture Forum, AN Agent, AN Press 등의 다채로운 건축디자인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건축 디자인전문가를 중심에 두고 신문과 저널의 언론매체를 통해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대중적인 확산과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계 건축계의 별,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 타계


‘현대 건축에 현대 미술을 끌어 안았다’는 평을 받아 온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준(사진)이 지난 26일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이타미 준(伊丹潤, 한국명: 유동룡)은 지난 2003년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었고,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 국적을 초월하여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슈발리에)을 수여받았다.


국내에서는 2001년 12월에 완공한 제주 포도호텔로 한국 건축계에 충격을 준 데 이어 ‘JDC 제주국제영어교육도시 도시건축 총괄건축가(Master Architect)’로 활동하며 대지로부터 얻어진 돌, 흙, 나무, 철 등 토착적인 소재와 색, 빛을 기초로 한 예술적 건축물을 남겼다.


제주 포도호텔  

 

제주 방주교회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라는 이타미의 건축관은 그의 건축에 대한 주제의식과 예술적 감각을 잘 압축하고 있다.
이타미 준의 큰 딸이자 한국지사장을 맡고 있는 유이화 소장(건축가, ITM 건축연구소)은 고인의 유지를 받아 고인이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승계할 계획이다. 고인에 대한 추모행사는 지난 7월 19일(화) 방배동 사옥에서 진행되었다.

문의  ITM건축연구소  02-588-2678

 

 

포루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토 드 모라'  2011 프리츠커 상 수상


2011 프리츠커 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에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토 드 모라(Eduardo Souto de Moura)가 선정되었다. 포르투갈 건축가의 수상은 1992년 알바로 시자(Alvaro Siza) 이후 두 번째이다.

 

 

에두아르두 소토 드 모라는 학창시절 알바로 시자와 5년간 일한 경험이 있으며, 1980년부터 자신의 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6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의 작품은 주택부터 영화관, 상업시설, 호텔, 미술관, 지하철역사까지 다양하며, 포르투갈을 비롯한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세계 곳곳에 위치한다. 그는 현재 오포르투 대학교(University of Oporto)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 외에도 미국의 하버드, 스위스 취리히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 등에 객원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팔럼보 심사위원장은 “소토 드 모라는 30년동안 전통 건축의 흔적이 담긴 현대 건축물을 설계해 왔다. 또한 그의 건물 외관은 힘과 겸손, 허세와 절묘함, 강한 권위와 안락함같은 상반된 특성이 공존한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Braga Stadium

 

 

Brugo Tower

 

 

Cinema House for Manoel de Oliveira


 

House in 'Bom Jesus'

 

1979년부터 시작된 프리츠커 상은 시카고에 기반을 둔 하얏트 재단(The Hyatt Foundation)이 주최하는 것으로 매년 재능있는 건축가를 선정해 수상한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십만달러와 메달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오는 6월 2일(목) 워싱턴 D.C. 앤드류 멜론 오디토리움(Andrew W.Mellon Auditorium)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문의 하얏트 재단 www.pritzkerpriz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