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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태국 전통음료를 ‘레드 불’로 재창조 한 해 50억 병 파는 게 오스트리아 스타일

淸山에 2013. 9. 22. 17:38

 

 

 

 

 

 

무명의 태국 전통음료를 ‘레드 불’로 재창조 한 해 50억 병 파는 게 오스트리아 스타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09.22 01:42 / 수정 2013.09.22 10:38
조현 오스트리아 대사 기고
 
 

 

 

조현 대사

 

 

1979년 외교부에 들어가 주유엔 차석대사, 다자외교조정관을 거쳐 2011년 3월부터 주오스트리아 대사 겸 빈 주재 국제기구 대사로 근무하고 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 컬럼비아대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수려한 알프스 경관, 합스부르크 왕궁의 유적,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은 매년 1500만 명의 관광객을 오스트리아로 부른다. 이는 오스트리아 인구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그렇다고 해서 오스트리아가 관광 덕으로 잘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조업 분야 첨단 기술 강국이자, 수출주도형 국가다. 특히 자동차·IT 장비·제약 부문은 그 매출액 중 수출 비율이 80%가 넘는다.

 

 포스코는 1970년대 오스트리아의 철강회사 뵈스트알피네(Voestalpine)와 기술 제휴를 통해 세계 제일의 제철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빈 공과대학 출신의 카플란이 개발한 카플란 터빈은 지금도 전 세계 수력발전에 사용되고 있다. 독일차 BMW 부품 중 10%는 오스트리아 제품이다. 특히 디젤 엔진과 소음 제거 등 특수 부품은 거의 다 오스트리아산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들은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이들 상당수가 소규모 가족경영 기업의 형태인데, 대부분이 특정 분야의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대대로 기술 전수와 연구개발(R&D ) 투자를 통해 기업을 유지, 발전시켜 나간다. 단기이익 창출보다는 장기이익과 기업의 생명력 유지에 관심이 높은 가족기업들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문화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한편, 불경기가 와도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여 노조 측과도 신뢰에 기반을 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정부는 직계 가족 간 기업 승계 시 기존의 기술면허를 자동으로 인정해 주고 상속세를 면제하는 등 각종 제도적 혜택을 통해 가족기업을 지원한다. 이러한 가족기업은 오스트리아식 신뢰 경제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듯 작지만 강한 경쟁력을 가진 오스트리아 경제는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2013년 현재 4.7%대로 EU 내 최저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EU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수출도 계속 최고치를 경신하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슘페터의‘기업가 정신’과‘혁신’개념이 모태


오스트리아 창조경제는 1919년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을 지냈던 조셉 슘페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과 ‘혁신’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경영학에 도입한 혁신의 아버지로서 이미 1942년 기업가 정신에 바탕을 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임을 주창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 50억 병 이상 팔린다는 오스트리아의 레드 불(Red Bull)의 사례를 보자. 어느 오스트리아 기업인이 태국 출장 중에 마신 전통음료 덕에 시차와 피로가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 기업인은 음료를 즐기는 데 멈추지 않고 오스트리아의 브랜드 기획력과 마케팅 실력을 결합시켜 레드 불을 창조해냈다. 무명의 태국 전통음료가 세계 굴지의 스포츠 음료로 거듭나게 된 것이야말로 수평적 융합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아이디어를 손쉽게 창업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오스트리아 창업 지원 시스템은 우리의 기업은행 격인 기업지원서비스(AWS)와 상공회의소(WKO)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전자가 금융지원을 전담하고, 후자가 창업에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한다. 창업지원기금 중 이민자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오스트리아통합기금(Austria Integration Fund)이 있는데, 우리도 탈북민이나 다문화가정 지원을 위해 유사한 제도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혁신 지도’라는 게 제공된다. 이 자료는 경제부와 교통혁신기술부가 손을 잡고 만든 것으로, 오스트리아 각 도시별로 창업자나 기업가들이 기술과 경영의 혁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대학·연구소·공공기관을 안내하는 정보가 지도 형태로 나와 있다.

 

 최근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교수를 빈에서 만났다. 전신마비의 이 교수가 쓰고 있는 컴퓨터 마우스가 오스트리아 라이프툴(LIFEtool)사 제품이다. 그는 이 회사의 ‘인테그라 마우스’라는 신제품의 홍보 팸플릿에 모델로 나온다고 한다. 이번 제품은 한 대학과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한 것인데, 이것은 오스트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업-대학 간, 대학-연구소 간 지식과 기술의 공동개발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오스트리아식 창조경제에 있어서 중소기업들의 파격적인 R&D 투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10대 R&D 투자기업 목록을 보면 전체 매출의 2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이 흔하다. 2012년 GDP 대비 2.8% 수준인 86억 유로를 R&D 분야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전년도에 비해 대폭 증가한 수치다.

 

 최근 빈의 일간지인 비너차이퉁(Wiener Zeitung) 기자로부터 ‘I was stupid’, 즉 ‘나는 바보였다’라는 제목의 세미나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험 정신을 갖춘 기업인을 기르기 위해 이런 세미나를 열고, 자신의 실패 경험을 진지하게 토론한다고 한다. 이렇듯 모험 정신을 육성하는 문화가 튼튼한 창업 지원 시스템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발휘한다.

 

 여기서 잠시 오스트리아에 없는 우리의 장점을 생각해 본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나오는 담대함과 역동성이 아닐까. 한국을 다녀오는 오스트리아 경제인들도 한목소리로 역동적인 우리 경제가 부럽다고 한다. 작년에 한국의 게임산업 업계와 협의차 서울을 방문하고 온 빈 상공회의소 브리지트 양크 회장은 “글로벌 경영 노하우를 가진 한국의 대기업과 오스트리아의 탄탄한 중소기업이 협력을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직은 서로 탐색을 하는 단계이지만, 우리 기업들이 높은 기술력을 가진 오스트리아 중소기업들과 협력한다면 또 다른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좀 다른 경우이지만, 빈의 한 한국 기업인은 독일어권에서 유명한 셰프 김소희씨의 식당 브랜드 ‘킴코흐트’의 명성에 착안해 한국산 주방용품에 킴코흐트 마크를 붙여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판매를 추진 중이다. 창조경제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편집자=중앙SUNDAY는 오스트리아 특집을 취재하며 조현 대사에게 기고를 요청했다.

 

 

조현 대사 hcho79@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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