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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자기 칼부터 깨끗해야[중앙시평]

淸山에 2013. 9. 18. 19:54

 

 

 

 

 

 

[중앙시평]

검찰은 자기 칼부터 깨끗해야
[중앙일보] 입력 2013.09.18 00:00 / 수정 2013.09.18 00:00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검찰은 칼을 휘두르도록 허가받은 대표적인 조직이다. 그 칼은 너무나 날카로워 사람들이 죽기도 한다. 기소나 재판이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죽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였던 노무현도, 재벌 기업인이었던 정몽헌도 검찰의 칼을 받다가 죽었다. 자살한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무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검찰이 비슷한 대가를 치른 적은 없다. 가장 심한 경우에도 검사는 옷을 벗으면 그뿐이다.

 

 사회가 검찰에 대해 치명적인 문책을 하지 않는 건 검찰의 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론도, 국세청도, 감사원도, 국정원도 있지만 검찰이야말로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칼이다. 잘못을 저지른 이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조직은 검찰밖에 없다. 검찰의 칼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그런 칼을 남에게 겨누려면 칼이 바르고 깨끗해야 할 것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 점에서 흔들리고 있다.

 

 검찰의 칼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채 총장은 생생히 경험한 적이 있다. 2004년 2월 그는 서울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였다. 특수2부는 안상영 부산시장을 수사했다. 버스회사 업자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안 시장은 새벽에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졌다. 측근들을 취재한 월간조선은 안 시장이 서울지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보도했다.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부산에서 서울로 이송됐고, 포승줄 차림으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야 했으며, 추운 겨울날 구치감 독방에서 7시간이나 기다리고도 조사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이 수사 자체를 잘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채동욱 검사는 그때 중요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검찰이 칼만 겨눠도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그럼에도 국민이 그런 칼을 준 건 오직 사실만을 파헤치라는 명령이라는 걸, 그리고 검찰이 당당해지려면 칼은 바르고 깨끗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채 총장의 칼은 과연 그런가.

 

 그가 지휘한 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팀에는 진재선 검사가 있었다. 그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소장을 작성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현직 검사로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회진보연대’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낸 사실이 있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이란 칼로 대공수사를 진행하는 정보기관이다. 보안법 폐지에 동조하는 검사가 보안법을 사수하는 국정원을 수사한다면 이는 공정한 것인가. 그가 아무리 공정하게 해도 전력 때문에 시비를 피할 수 없다.

 

 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는 검찰이 성역 없는 검찰권을 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채 총장은 치밀해야 했다. 공정성 시비를 부를 수 있는 요소는 철저히 없애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검찰은 재판 단계에서 진 검사를 제외했다. 진 검사를 둘러싼 공정성 시비를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닐까.

 

 사건 수사팀은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경찰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경찰 분석팀이 인터넷 댓글을 조사하는 걸 찍은 동영상을 증거물로 내놓았다. 그런데 동영상 녹취록의 일부가 짜깁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사실(fact)을 목숨처럼 움켜쥐어야 하는 조직이다. 그런 검찰이 증거물을 변조하는 건 스스로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검찰총장은 마땅히 국민에게 사과하고 관련자를 감찰해야 한다. 검찰의 칼을 지키기 위해 칼날에 흠집을 낸 검사들을 문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 총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사팀을 두둔했다.

 

 2010년 채 총장은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단장을 맡았다. 어느 업자가 10여 년 동안 수많은 검사에게 술과 성 접대를 제공했다고 폭로한 사건이다. 임 여인은 아들의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이라고 적은 논란의 여인이다. 그에 따르면 채 검사는 오랜 세월 ‘후배들과 함께’ 임 여인의 술집을 애용했다. 월급쟁이 검사 채동욱은 무슨 돈으로 ‘후배들 술자리’를 주관했는가. 혹시 스폰서가 있었던 건 아닌가. 이런 상식적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떳떳이 진상조사를 자청해야 할 것이다.

 

 채 총장은 지금 법무부 감찰을 거부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제소(提訴)하지도, 유전자 검사를 추진하지도 않고 있다. 그는 왜 주저하나. 타인에게는 그렇게 거세게 칼을 휘두른 사람이 정작 자신에게 다가오는 칼날은 왜 피하나. 왜 당당히 막아내지 못하나. 검찰총장은 검투사의 총사령관이다. 그가 도피하면 검투사들의 칼날이 무뎌진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