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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않고 또 왔네
- 글 / 박 완 서 -
지난해보다 2주일이나 늦게 복수초가 피었다.
기다려도 안 피기에 눈이 안 오면 안 피는 꽃인 줄 알았다.
밖에 나갔다 오는데 저만치 땅바닥에 샛노랗게 빛나는 게 보였다.
순간 교복 단추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아이는 중학생이 되면
머리를 빡빡 깎고 금빛 단추가 달린 감색 교복을 입었다.
가뜩이나 볼품없는 교복을 엄마들은 내남직 없이 적어도 3년은 입힐
요량으로 넉넉한 걸로 사 입혔기 때문에 얻어 입은 것처럼
옷 따로 몸 따로 노는 건 틀림없이 신입생이었다.
궁핍한 시대였지만 금빛 단추만은 생뚱스러울 정도로 찬란하게 빛났다.
처음 중학생이 된 아들을 보는 나의 꿈도 그렇게 찬란하지 않았을까.
목을 조이는 호크 하나라도 안 잠그면 교문에서 걸릴 정도로 교칙이 엄할 때라,
나는 장난이 심한 내 아들이 단추를 떨어뜨려 혼날까봐
바느질이 허술한 새 교복의 단추부터 꼭꼭 다시 꿰매주곤 했다.
왕년의 그런 스트레스가 아니더라도 땅에 떨어진 금단추로 보일 정도로
복수초는 땅바닥에 붙어서 꽃 먼저 핀다.
노란 꽃이 밤에는 오므렸다가 낮에는 단추만 한 크기로 펴지기를
되풀이하는 사이에 줄기도 나오고 잎도 생겨난다.
그래봤댔자 잎도 줄기도 미미해서
애정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밟히기 알맞은 꽃이다.
복수초를 반기고 나서 역시 작은 봄꽃들이 있던 자리를 살펴보니
노루귀가 희미한 분홍색으로 피어있다.
그 조그만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순서를 잘 지키는지 모르겠다.
그 작고 미미한 것들이 땅속으로부터 지상으로 길을 내자
사방 군데서 아우성치듯 푸른 것들이 돋아나고 있다.
작은 것들은 위에서 내려앉은 것처럼 사뿐히 돋아나지만
큰 잎들은 제법 고투의 흔적이 보인다.
상사초 잎은 두껍고 딱딱한 땅에 쩍쩍 균열을 일으키며 솟아오른다.
상사초는 잎은 그렇게 실하고 건강하다.
그래도 제까짓 게 고작 풀인데 굳은 땅을 그렇게 갈라놓다니.
집 앞은 포장을 새로 한 지 얼마 안 되는 단단한 도로인데
지난해 겨우내 이웃 공사장으로 드나들던 굴착기.크레인 등
중장비 차의 무게로 바닥에 심한 균열이 생겼다.
위에서 찍어 누르는 엄청난 힘에 의해 생긴 균열을 볼 때마다
나는 건설의 파괴력에 진저리가 처지면서 살 맛이 다 없어지곤 했다.
그것은 아마 순식간에 깨부수고 건설하는 무자비한 기계의 힘에 대한
무기력증과 공포감에 다름아닐 것이다.
삶에 대한 그런 비관이 땅에 균열을 일으키며 밑에서 솟아오르는
씩씩한 녹색을 보자 씻은 듯이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솟는 걸 느꼈다.
그런 힘은 투지나 적의 따위의 힘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고 나누고 싶은 생명 본연의 원초적 활력일 것이다.
우리 마당에서 올해 봄 내 눈을 최초로 사로잡은 봄빛이 복수초였다면
처음 혀에 와닿은 봄맛은 돌나물이다.
돌나물은 아무 데서나 왕성하게 퍼져 그냥 놔두면 잔디고 뭐고 남아나지 않는다.
꽃도 피지만 마당에 그게 퍼지면
내가 좋아하는 채송화가 제대로 못 퍼지기 때문에
파릇파릇할 때 열심히 제거해서 양념장에 무쳐먹는다.
연하고 상큼한 맛 외엔 아무 맛도 없지만 몸에 좋거니 하고 먹는다.
몸에 좋다는 데 무슨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몇 해 전 암에 걸려 투병 중인,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이가
암에 좋다고 돌나물을 열심히 먹는다고 들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이는 암을 이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에 좋다는 음식은 일단 먹어놓고 보는 자신이 서글프다.
일전에는 아는 분이 우리 마당에 어떤 꽃들이 피는지 물었다.
나는 으스대며 100가지도 넘는 꽃이 있다고 말했다.
그건 누구한테나 그렇게 말하는 내 말버릇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아니다.
듣는 사람은 아마 백화난만한 꽃밭을 생각하겠지만
그것들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순서껏 차례차례 핀다.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는 목련부터
눈에 띄지도 않는 돌나물 꽃까지를 합쳐서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가짓수를 다 셀 수 있느냐 하면
그것들은 차례로 오고, 나는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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