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앞에는 해태상 두 개가 있는데 그 해태상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휴식처(?)로 잘 이용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원래 이렇게 아이들이 놀 수 없었는데, 왕조가 몰락하면서 놀이터처럼 이용 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9234040516E4DC026)
![](https://t1.daumcdn.net/cfile/blog/0124AC40516E4DC02D)
육조거리에 있던 관청들은 일제침략기 때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가 생기면서 모두 철거되었고 그 일대도 한국전쟁과 산업화 등을 겪으며 모두 사라져 알다시피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6조거리 관청의 모습을 제대로 알기가 힘든데, 철거되기 직전 1920년쯤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822E640516E4DC130)
육조거리 외각에는 민간인들이 빼곡히 모여 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조선 최고의 거리다보니 거리 근처엔 기와집이 대다수이고
외각으로 갈 수록 초가집 비율이 많아집니다.
사람은 서울로 가고 말은 제주도로 가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닐정도로 민가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47D8E41516E4DC201)
1902년에 찍은 육조거리 모습. 왼쪽 가운데쯤에 광화문이 보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4640541516E4DC330)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niobe0502/150090894781
당시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보여주는 미니어쳐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기 전까지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왕들은 경복궁에 있는 걸 상당히 싫어했습니다.
거의 모든 임금이 경복궁이 아닌 다른 궁에서 거처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경복궁이 이 중앙관청과 가장 밀접하게 있던 궁이다보니 집무에 너무 시달려 거처하길 싫어했던 게 아닌가..하는 망상도 해봅니다.
현대에 많은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보며 도심 한 가운데에 궁궐이 떡하니 있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사실 저도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도심 중심가 대다수의 건물이 예전에 쓰였던 건물 그대로이며 고층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섞여 경복궁만 아니라 광화문 앞 육조거리가 지금까지 남아있어 과거의 문화를 현대에도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으면..하는 건 너무 욕심이려나요? 흐흐
출처 : Pgr21.com 글쓴이 : sungs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