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기여히 가셨더이까
산천도 울고 초목도 떨던 그날
서기 이천팔년 이월 십일 오후 여덟시사십분
하늘은 울울했고 바람은 소소했더이다.
육백년 세월의 유구한 숨결을 안고 이나라 수도 한 복판에
독야청청(獨夜靑靑) 지켜섰던
당신 님 숭례(崇禮)여 무엇을 지키려 자신을 불태웠더이까?
어디하나 온전한데 없는 이 나라에 무슨 가르침 주려 그리 했더이까?
그래도 내 조국이니 어찌 버릴손가
애국애족하라는 무언훈도(無言訓導)였더이까?
제 배 채우는데 급급하여 백성을 외면하는
위정자들에게 내리는 살신경언(殺身警言) 이 였더이까?
오호라 통재(痛哉)라~
민족의 영욕을 묵묵히 지켜보며 이름없는 민초(民草)와 운명을 같이했던
당신 님 숭례여 그대 이땅에 세워질때
조선의 한양은 무악(武岳)과 인왕(仁王)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백악현무(白岳玄武),인왕백호(仁王白虎),
낙산청룡(駱山靑龍)을 지리(地理)로 삼은후에
4문1루(四門一樓)을 세우고 시경(詩經)에서
그 아름다운 뜻을 취하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오행(五行)에 배정하여 이름을 정하니
인(仁)은 동방이니 동대문(東大門)에 배속시켜 흥인지문(興仁之門)이 되고
의(義)는 서방이니 서대문(西大門)에 배속시켜 돈의문(敦義門)이 되고
예(禮)는 남방이니 남대문(南大門)에 배속시켜 숭례문(崇禮門)이 되고
지(智)는 북방이니 북대문(北大門)에 배속시켜 소지문(炤智門)이 되고
중앙은 신(信)이니 종로 한가운데 루(樓)를 세워
보신각(普信閣)으로 명한고로
이때가 태조7년으로 년대가 1398년이니 헤아려보면
그대 님의 보령(寶齡) 610세가 되더이다
그 긴긴 세월동안 만고풍상 모진 시련에도
그대 숭례의 우뚝함은 흔들리지 않았더이다
경복궁이 임란(壬亂)으로 송두리채 잿더미가 된후 273년을
호공(虎公)이 출몰하는 공궐(空闕)로
변했을 적에도, 병자호란 삭풍이 강화까지 몰아칠 적에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6.25의 화마속에서도
이웃 광화문은 무참히 파괴되었으나
홀로 원형이 훼손되지않았으니
그대 숭례야 말로 민족의 흥망성쇠를 몸으로
기억하는 혼(魂)이요 얼굴이었더이다.
http://cafe.daum.net/kyo1055/IsHS/262?docid=4199345270&q=%BC%FE%B7%CA%B9%AE%20%BA%B9%BF%F8%BD%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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