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마 규스케(本間九介)라는 일본인이 있다. 1901년 결성된 일본 極右 조직 흑룡회(黑龍會)의 회원이었던 혼마는 대륙경영(?)의 뜻을 품고 1893년 朝鮮 땅을 밟았다. 혼마는 부산에 머물면서 한양, 중부지방을 정탐하고 행상을 하며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돌아다녔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1894년 4월17일~6월16일까지 ‘二六新報’에 朝鮮 정탐 내용을 연재했다. 혼마는 154편의 글을 하나로 묶어 같은 해 7월1일 조선잡기(朝鮮雜記)를 간행했다. 이 책에는 朝鮮을 정탐 온 일본인이 보고 느낀 여러 풍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朝鮮雜記에 묘사되어 있는 19세기 조선-조선인의 이미지는 부패, 불결, 나태, 무사태평(無事泰平)이다. 혼마가 기록한 118년 전 朝鮮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출처: 일본인의『조선정탐록 조선잡기』, 저자: 혼마 규스케, 역자: 최혜주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무사태평>
《우리나라(일본) 목수라면 반나절 걸려 할 수 있는 일을 조선 목수는 3~4일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작업의 태평함에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이다. 조선 사람은 담배를 매우 좋아한다. 3척이나 되는 담뱃대를 걸어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 일을 쉬거나 침묵하는 사이에도 손에서 놓는 일이 없다...(중략) 조선에 오래 체재한 구연수(具然壽)라는 자가 일찍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인민이 긴 담뱃대를 가지고 길을 가면서 피우고 있는 중에는 도저히 국운이 다시 일어날 희망이 없다” 이것은 지당한 말이다. 생각하니 긴 담뱃대를 아끼는 국민에게 진취적 기성(氣性)이 없는 것은 고금만국(古今萬國)이 동일하다.》
<官人은 모두 盜賊>
《관리가 인민을 괴롭히는 것은 사도(私盜)보다 심하다. 무엇 때문에 이들 관리를 죽이고 국가의 해를 제거할 것을 도모하지 않는가...(중략) 지금의 (조선) 관리는 도적이 아닌 자가 없고, 가령 한 몸을 희생하여 관리 한 명을 죽여도 그 뒤를 계승하는 관리 역시 도적이 되는 것이다...(중략) 조선인들은 이렇게 참담한 지옥에 살아도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공동정신>
《무슨 사업에서든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그 사업을 성사시키는 따위의 일은 조선 사람에게 바랄 수 없다. 도로가 수리되어 있지 않고 위생적이지 못한 것도, 공동 정신이 부족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익이 있는 사업이라도 개개인이 소자본을 가지고,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도모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안동포(安東布), 화문석, 쥘부채, 부채 등의 특이하고 우수한 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은 항상 수요가 많은 것에 따라오지 못한다. 널리 해외에 판로를 열려는 희망이 없으며, 상공업은 여전히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빈약한 것도 공동정신이 없는 것에 기인한 것이다.》
<양반>
《양반이 소일하는 모양은 실로 한가해 보인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만 담뱃대를 물고 방에 누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재산가(財産家)의 대부분은 양반이다. 이것은 대개 관리가 되어 서민으로부터 난폭하게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속담에 말하기를 관리가 되면 3대가 앉아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큰 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지방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大臣이 된 자도 지방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한다.》
<종교>
《조선 사람이 숭배하는 유교를 보면 이것 역시 거의 이름뿐이다. 각 군현(郡縣)에 공자묘를 세워서 때로 석전(釋奠)하는 예를 행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중략) 주자(朱子) 이외에는 중요한 것을 내놓지 못하고, 주자 이외에 영웅호걸의 유자(儒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없다. 그들(조선인)이 숭상하는 바는 유교이지만, 그 표상은 허례를 일삼는 것이고 실체인 도덕의 원천을 연구하는 바가 없다...(중략) 도사(道士)라는 자가 있어 깊은 산과 계곡에 거하며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고, 이슬을 먹고 새우를 먹으며 스스로 신선(神仙)이라고 칭하지만 이들도 길흉과 회한을 말하며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는 간계한 무리일 뿐이다.》
혼마 규스케는 이외에도 朝鮮 사람들의 事大主義 근성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선의 선비가 지나(支那, 中國)를 항상 중화(中華)라고 말하고 스스로를 소화(小華)라고 부른다. 조선 사람이 나에게 고국을 물으면 나는 항상 대화(大華)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나의 오만함을 꾸짖는다. 그러나 오만하여 자랑하는 것과 비루하여 주눅이 드는 것 중에 어는 것이 나은가?”
혼마는 당시 淸나라가 이미 동양의 맹주로서 위신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朝鮮人들이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事大主義에 빠졌다고 본 것이다. 그는 朝鮮의 장래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도와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나라에 먹힐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혼마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잡는 방법은 전쟁을 통해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華夷질서를 재편하고,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혼마가 속했던 黑龍會라는 단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美군정의 명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그러나 1961년 단체 설립자인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 사후 25주년을 계기로 ‘그의 사상을 계승하고 보급한다’는 취지에 따라 다이토주쿠(大東塾) 숙장 가게야마 마사하루(影山正治) 등이 중심이 되어 ‘흑룡구락부’가 재결성되어 黑龍會의 계보를 잇고 있다.
적지 않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은 朝鮮과 다르기 때문에 또 다시 나라를 주변국가에 빼앗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중국은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核무장한 북한은 대한민국을 인질로 삼고 있다.
일본은 어떨까? 이명박 前 대통령이 독도에 발을 들여놓으니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사람들이 소위 ‘대한민국 주도의 自由統一을 지지한다’는 일본의 어느 단체였다.
歷史는 늘 변곡점(變曲點)을 찍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역사의 變曲點에 있다. 우리가 처한 국가안보 상황이 진정 복잡하고, 우리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 되고 있다. 국제 정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냉철한 戰略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밋빛 미래를 말하고 싶지만 국제정치란 본래 더럽고, 추악한 것이다. 어떠한 善意도 장래 동북아시아에서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발생하게 될 熱戰의 양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불과 1세기 전 우리는 잘못해서 나라를 잃어 버렸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